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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주사기 재사용 사태가 근절되려면노환규(전 대한의사협회장)

[라포르시안] 주사기 재사용으로 인해 C형 간염을 집단으로 발생시킨 다나의원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제천과 원주에서 또 다시 C형 간염의 집단감염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 원인이 주사기 재사용으로 인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연속으로 일어나자 의료계도 뭐라 말하기 어려운 허탈에 빠졌다. 극소수의 비양심적 의사들로 인해 전체 의료계가 도매금으로 매도당하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의사협회는 파장이 확대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서서 ‘면허취소’등 강경한 처벌방침을 밝혔다. 그런데 의협의 이러한 조치에 다수의 일선 의사들이 반발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주사기 재사용 같은 일들은 대체 왜 일어나는 것일까? 그리고 일선 의사들은 전체 의사를 욕먹이고 있는 비윤리적 의사에게 엄벌을 요구하는 의협의 조치에 왜 반발하는 것일까? 재발을 막자면 어떤 조치가 이뤄져야 하는 걸까? 주사기 재사용 사태의 일차적 원인은 논란의 여지 없이 '개인적 비양심'이다. 사실 어느 집단에나 극단적으로 비윤리적인 소수의 구성원들이 있다. 의료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이를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윤리를 상실한 의료인의 비윤리적 행위는 곧바로 타인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사기 재사용과 같은 지극히 비상식적이고 비윤리적 행위를 저지른 의료인에 대해 엄중한 처벌을 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엄중한 처벌만으로 이 문제가 해결될까? 그렇지 않다. 주사기 재사용 사태에 숨겨진 또 다른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연속되고 있는 비상식적이고 믿기 어려운 주사기 재사용이라는 사태의 근본 원인을 찾아 들어가면 개인의 비양심 뒤에 정부의 책임이 숨어 있다고 주장한다.

1977년 의료보험이 시작된 이래 40년째 원가 이하의 보험수가를 강요하는 건강보험제도가 의료공급자에게 윤리와 비윤리의 경계선에서 고민하도록 몰아넣고 있다는 것이다. 그 한 예를 들어보자. 위내시경 시 조직생검에 필요한 일회용 겸자((Biopsy Forcep)의 비용을 지급하지 않았던 것이 그 비근한 예다. 재료비를 포함해서 정부에서 책정한 행위료는 약 8,400원인데 한 번 쓰고 버려야 하는 1회용 겸자 비용만 2만3,000원이었다. 정부가 재료비도 주지 않으니 의사는 검사를 할수록 손해가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의사가 1회용 겸자를 한 번 쓰고 버리겠는가. 대다수 의사들이 재사용 해서 써야했고 그것이 언론에 고발되어 방송되었다. 이 글을 읽는 비의료인은 “환자에게서 따로 받고 재사용을 안하면 되지 않겠는가” 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겠지만 그것은 정부가 불법으로 규정해 놓았다. 의사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였고, 그런 상태에서 1회용 겸자의 재사용은 오랜 기간 관례화 되었다. 결국 소화기내과 의사들이 검사 거부를 논의하는 등 수년간 강력히 항의한 끝에 비로소 지난해 8월 겸자 비용의 원가를 지급하도록 비용 현실화가 이뤄졌다. 이렇듯 1회용 물품을 규정대로 1회만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제도가, 그리고 진료에 소요되는 원가도 지불하지 않는 정부가 의사들로 하여금 “제도가 우리를 이렇게 원칙을 위반하도록 강요하고 있으니 원칙 위반은 정부의 책임이지 우리의 책임이 아니다. 의사들은 어쩔 수 없지 않는가”라는 윤리적 면탈의 여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윤리와 비윤리의 경계선에 서서 고민하는 일이 반복됨에 따라 엄격해야 할 의사들의 윤리적 기준이 점차로 허물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의료계에서는 건강보험수가가 원가의 80%에도 못 미친다고 주장하고 있고, 정부도 원가에 못미치는 90% 수준임을 인정하고 있다.)

이번 주사기 재사용 사태가 벌어지자 적지 않은 의사들이 1,000원 내외로 낮은 주사비용을 문제 삼았다. 100ml 이하의 정맥내 점적주사비용은 950원에 불과하고 근육주사 비용은 1,130원이다. 여기에는 주사기를 비롯해 주사바늘·수액세트·소독액·소독솜·간호사인건비 등이 모두 포함돼 있다. 어느 의사는 그 원인에 대해 조심스럽게 다른 원인이 있을 수 있다고 분석을 했다. 통증 치료를 받는 환자의 경우 진료 첫 달에는 3회까지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이후 한 달이 지나면 월 1회만 보험이 적용된다. 즉, 두 달째부터는 월에 한 번을 넘어가는 진료는 진료비를 아예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프다고 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거의 다 주사를 요구하는 것이 현실이다. 일부 의사들은 진료비로 1,500원 정도를 비급여로 받기도 하지만 이것도 불법이다. 따라서 대다수 의사들은 울며겨자먹기로 그냥 주사를 놓아주고 건강보험공단에 청구도 못하는 실정이다. 청구를 해봐야 심사삭감(진료비 지급거절)을 당할 것이 뻔하고 진료 건수 대비 주사비율이 높아져 경고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공짜로 주사를 놔줘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주사기 값이라도 아끼려고 재사용을 한 것 같다는 분석이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대한민국 헌법 10조에서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권리다.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손실을 거부할 권리를 포함한다. 즉 손실을 거부할 권리는 헌법에 의해 보장받은 권리다. 이 권리는 의사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의사에게도 마찬가지로 해당된다. 그러나 정부는 지금도 원가 이하의 건강보험수가를 의사들에게 강요하고 있고, 의사들은 편법과 불법을 동원해서 이를 극복해왔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주사기의 재사용은 있을 수 없는 일을 넘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의사들의 마음에는 허탈이나 자괴감, 그리고 뼈저린 반성 외에 정부를 향한 분노가 내재되어 있다. 정부는 1회용 의료기를 재사용하는 경우 엄중한 처벌에 내리는 법제도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1회용 의료기 재사용을 정부가 강요하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 해결 없이 처벌만을 강화하는 대책이 얼마나 효력을 볼 수 있을까 의문이다. 건강보험제도가 합리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정부가 의사들에게 비윤리를 강요하는 상황이 바뀌지 않는 한, 제도가 만들어내는 의사들의 분노가 사라지지 않는 한, 아무리 윤리교육을 강화하고 아무리 엄한 처벌을 하더라도 재앙이라 할 수 있는 믿기 어려운 일부 의사들의 부도덕한 일탈행위는 앞으로 근절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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