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펴냄, 2010년

[라포르시안] 구랍 28일 한일 양국의 오랜 현안이었던 위안부 문제에 대한 협상이 타결되었습니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위안부를 강제동원한 사실이 없기 때문에 위안부 문제에 대하여 책임을 질 일이 없다고 발뺌을 해왔던 것인데, 이날 일본의 기시다 외상은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은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라고 밝혔으며, “아베 내각총리대신은 일본국 내각 총리대신으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한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라고 해서 달라진 모습을 보였습니다.<연합뉴스 2015년 12월 28일자 기사>

군위안부는 과거에 정신대(挺身隊)라고 불렀는데 노동력을 착취당한 근로정신대와 성적 착취를 당한 종군위안부를 포괄하던 명칭입니다. 일제는 여성을 전쟁에 징용하기 위하여 ‘여자 근로동원 촉진에 관한 건’을 결정하고 ‘여자근로정신대’를 편성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한일합병 이후 조선의 여성을 일본으로 팔아넘겨 매춘행위를 시키는 일이 흔했다고 합니다. 1932년 상하이 사변(上海事變) 무렵 일본군이 민간여성을 강간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오카무라 야스지(岡村) 중장은 나가사키(長崎)의 지사에게 군대위안부 유치를 요청하였다고 합니다. 민간의 원성을 잠재울 뿐만 아니라 성병의 위험을 방지하는 효과를 노린 셈입니다. 나아가 일본군부는 유교적 윤리교육이 이어온 조선의 여성들에는 성병의 위험이 없을 것이라고 보아 미혼의 조선 여성이 종군위안부로 적절하다는 판단을 하였다고 합니다.

일본군이 개입하여 치밀하게 추진되었다는 증거로 인용되는 ‘제2차 특별요원 진출에 관한 조회(1942년 5월 발송)’에 따르면 29~35명의 병사 당 1명의 위안부를 두는 것으로 하고 지역별로 할당하여 동원토록 했다는 것입니다. 태평양전쟁기간 중 일본군은 미얀마, 트랙 섬, 필리핀, 테니안 섬, 마리아 군도, 수마트라, 셀레베스, 인도네시아, 오키나와(沖縄) 등지에서 위안소를 운영하였고, 동원된 정신대의 전체규모는 17만~20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조선 여성이 80% 정도를 차지하였을 것이라고 합니다.(다음백과사전, ‘정신대’편 참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먼저 짚어본 것은 2010년에 노벨상을 수상한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를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작품은 페루 육군이 운영하였던 군 위안부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작가는 서문에서 “아마존 수비대원들의 성적 욕망을 해소하기 위하여 페루 군부가 조직했던 ‘특별봉사대’라는 소설의 이야기는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5쪽)”라고 전제하고, “1958년과 1962년에 아마존 지역을 방문하면서 너무나 확장되고 왜곡된 나머지 잔혹하고 처참한 우스개 꼴이 되고 만 특별봉사대의 존재에 관해 알게 되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주 진지한 어조로 사건을 말하려다가 이 이야기가 익살과 농담과 웃음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는 1956년 8월 창설된 특별봉사대가 1958년 12월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으로 1959년 폐지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시기적으로 보면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일본군이 군위안소를 운영하였다는 사실을 페루 군부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착상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일본이 점령지의 여성을 강제로 동원하였던 것과는 달리 페루 군부가 직업여성을 활용한 시설을 운용한 것도 역시 일본에서 배웠을 수도 있겠습니다. 일본은 청일전쟁 때에도 일본여성으로 구성된 위안소를 설치했다는 것입니다. 일본인 위안부는 선불을 받았으며 돈을 갚으면 그만 둘 수 있었다고 합니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페루 리마에 있는 육군병참사령부에서는 아마존 지역의 수비대가 저지르는 끔찍한 만행을 중단시키기 위한 특별대책을 수립하고 그 책임자로 판탈레온 판토하 대위를 이키토스에 보내기로 결정합니다. 판토하 대위를 책임자로 선정한 것은 ‘천부적인 조직력, 정확하고 엄밀한 질서 의식, 행정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효율적이고 진정한 감화력으로 연대 행정을 이끌었다’라고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야기의 전체를 통하여 판토하 대위에 대한 이런 평가가 아주 정확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페루 육군의 고민을 해결할 적임자였다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아마존 수비대가 일으키고 있는 문제는 주둔 지역의 민간 여성들을 겁탈하는 일이 잦다는 것입니다. 1년도 채 안 되는 사이에 43명의 여성이 임신을 할 정도라고 하니 얼마나 많은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지 가늠조차 어려울 지경이었던 모양입니다. 당연히 지역주민의 분노가 끓어올랐을 터이나 지역 군부대의 조처라는 것이 사건을 저지른 병사와 피해를 입은 여성을 강제로 결혼시키는 정도였던 것입니다. 물론 처벌도 하고 경고도 했다고는 하지만 그 수위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사실 군부대를 운용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엄정한 군기를 유지하는 일입니다. 특히 지역민과 마찰을 빚는 일은 절대적으로 피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군기를 엄정하게 하는데 있어 지위의 고하를 따지지 않은 사례로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를 들기도 합니다. 보리가 한참 자랄 무렵 허도로 출정하게 된 조조는 “농작물을 해치는 자가 있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목을 베겠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군인들의 행패로 백성들이 죽어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조조였고, 민심을 잃으면 전투에서 승리를 얻을 수 없다는 것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보리밭을 따라 행군을 하던 중, 조조의 말이 갑자기 날아오른 꿩에 놀라 날뛰면서 밭으로 뛰어들어 보리를 밟았습니다. 바로 칼을 뽑은 조조는 “내 스스로 목을 베어 군령의 준엄함을 보이겠노라!”면서 자신의 목을 찌르려고 하였습니다. 곁에 있던 참모들이 놀란 가운데 곽가가 “춘추의 법은 귀인에게는 해당치 않는다”라며 설득하였고, 조조는 못이기는 체하면서 자신의 목 대신 상투를 장대에 걸었습니다. 이에 곽가는 “승상이 보리밭을 침범해 마땅히 참수해야 하지만 특별히 머리털을 자르는 것으로 대신하니 그대들은 더욱 조심하라!”라고 해서 병사들로 하여금 군령의 엄중함을 깨닫게 했다는 것이며, 백성들은 조조를 우러러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페루의 육군도 군기와 군령의 엄정함을 보였더라면 병사들이 일탈된 행동을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의 성적 욕망을 해결해주기 위하여 ‘수비대와 국경 및 인근 초소를 위한 특별봉사대(줄여서 수국초특)’를 창설키로 했던 것입니다. 판토하대위는 군인신분을 감추고 마치 민간이 운영하는 것처럼 위장하고, 창녀를 고용하여 아마존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부대의 요청에 따라서 공급하기 시작합니다. 이키토스에는 이미 성매매를 업으로 삼는 업소나 개인적으로 성매매를 하는 세탁부라는 이름의 여성들이 있었던 것을 보면 수국초특에 필요한 인적자원을 확보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밀림에 흩어져 있는 부대에 수국초특 대원들을 보내기 위해서는 수송수단이 필요했고, 해군에서는 병원선으로 사용되던 군함 파치테아를, 그리고 공군에서는 카탈리나 수상비행기 ‘레케나’호를 제공하여 수국초특에서 업무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하지만, 이름을 각각 ‘이브’와 ‘델릴라’로 바꾸어 배와 비행기가 군소속이라는 사실을 감추었습니다. 결국 수국초특은 페루 육군의 병참사령부가 창녀들을 모아 운영한 군위안부 조직이었던 것입니다.

1956년 8월 창설된 수국초특은 아마존 수비대의 열렬한 반응과 병사들이 민간 여성을 대상으로 일어나던 겁탈사건이 사라지면서 규모를 확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문제의 발단은 수국초특이 군부대만을 지원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오지의 일반주민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를 거절한데서 시작되었습니다. 결국 오지의 주민 몇 사람이 수국초특 소속의 여성을 태우고 수비대로 향하는 배를 납치하고 대원들을 겁탈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상황을 받고 출동한 군부대와 교전하는 과정에서 수국초특 소속의 여성 미스 브라질- 판토하 대위의 아내가 남편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고 이키토스를 떠난 뒤에 연인관계로 발전하였던 것입니다-이 수비대의 총격을 받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판토하 대위는 휘하의 장병을 차출하여 미스 브라질의 장례식에서 의전을 갖추도록 하였을 뿐 아니라 자신도 그동안 감추었던 신분을 공개하여 육군 대위의 정복을 입고서 추도사를 낭독하였습니다. 결국 비밀리에 운영하던 수국초특이 군 조직임이 드러나면서 페루 군부가 곤경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비밀리라고는 하지만 외면적으로는 민간사업체가 군부와 독점적 사업을 해온 것으로 위장되어있던 수국초특이 사실은 군이 운영하던 시설이었음이 드러난 것입니다. 판토하 대위가 그와 같은 선택을 한 것은 수국초특이라는 조직이 결국은 군에 소속되어 있으므로 미스 브라질은 군인에 걸맞는 대우를 받아 마땅하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일종의 순국이 되는 셈입니다.

하지만 군 고위층은 기밀을 유지해야 할 사안을 나서서 공개한 판토하 대위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대위에게 전역을 종용합니다. 하지만 뼈 속까지 군인인 판토하 대위는 어떠한 처분을 받더라도 전역은 불가하다고 버티게 됩니다. 생각 같아서는 미스 브라질이 교전 중에 아군의 총탄에 희생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상황은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만, 판토하대위는 군의 위상을 고려하여 이 또한 묻기로 한 것 같습니다. 결국 판토하대위는 한직이라고 할 수 있는 티티카카호 부근에 있는 포마타 수비대로 전출되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됩니다. 판토하 대위로서는 다행스러운 처분인 셈이고, 더욱 다행인 것은 기밀유지를 위하여 가족들에게까지 맡게 된 업무에 대하여 설명하지 않은 까닭에 헤어졌던 아내와 포마타 수비대에서 재회하게 된 것입니다.

판토하 대위가 창설한 수국초특이 아마존 수비대의 뜨거운 호응을 받아가며 조직을 늘려 가는데, 이를 먹잇감으로 여기고 달려드는 군상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는 것은 한편으로는 역겨우면서도 이야기에 양념을 더하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은 광대한 아마존지역의 특성에 따라 인기를 끌고 있는 라디오 아마존의 ‘신치의 소리’를 진행하는 헤르만 라우다노 로살레스입니다. 일명 신치라고 부르는 로살레스는 판토하 대위를 찾아와 사업을 보호해주겠다는 명목으로 돈을 요구합니다. 첫 만남에서는 단칼에 거절했지만, 수국초특이 군부대의 지원을 받아가면서 매춘사업을 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방송이 나가면서 대위는 어쩔 수 없이 타협을 하고, 주머니를 털어 신치가 요구하는 돈을 제공합니다.

수국초특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지만, 판토하 대위를 곤경에 빠트린 것은 외국인 프란치스코 형제가 설립한 ‘방주의 형제단’이라는 신흥종교입니다. 처음에는 작은 동물들을 십자가에 못 박고 흘린 피를 받아 몸에 바르는 행위로 신도들을 끌어 모으다가 나중에는 어린 아이를 그리고 어른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탈적인 행동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죽은 이를 성자로 숭배하도록 이끄는 사이비 종교집단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스페인 사람들이 라틴아메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천주교를 전파하는 과정에서 토착신앙과 결합하는 과정이 있었던 것은 지역적 특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를 읽으면서 저는 바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금방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오랫동안 화제가 되면서도 이 작품이 주목받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페루의 수국초특은 군이 개입하여 설치 운영하고는 있다고 하지만 성매매여성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였기 때문에 일본군 위안부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보았기 때문일까요?

이 작품의 독특한 구성은 다양한 장면들을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은 가운데 섞여 있는 점입니다. 장면의 전환이 갑작스럽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야 이야기의 맥락을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겉다르고 속다른 페루 군부의 위선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실 군기문제를 엉뚱한 방향에서 해결해보겠다는 발상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지만, 그나마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오랫동안 화제가 된 탓인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제 자신이 못마땅하기도 합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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