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발견 / 최광현 지음 / 부키 펴냄, 2014년

[라포르시안] 최근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는 장면을 지켜보다 흉기로 아버지를 찔러 죽음에 이르게 한 11살 소년의 사건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폭력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나, 11살에 불과한 소년이 흉기로 아버지를 찌르게 된 상황에 대한 심층적인 조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굳이 이 사건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가정폭력이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가정폭력은 폭력의 주체와 대상이 모두 가족구성원이 되는 아동학대, 남편학대, 아내학대, 존속학대 등 모든 가족 사이에서 일어나는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문제행위가 포함됩니다. 가정폭력은 아동기에 이미 씨가 뿌려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동기에 폭력을 직접 경험하거나 보고 자라면 공격행위와 자기를 합리화하는 기술을 습득하며 그런 행위에 대하여 죄의식을 느끼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혹자는 가정폭력의 당사자가 정신질환, 인성적 결함, 알코올과 약물남용 등과 같은 개인의 비정상적 속성으로 일어난다고 설명하지만, 모든 경우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특히 성격적, 정신적 특성으로 생기는 가정폭력의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합니다.

폭력으로까지 발전되는 것은 아니지만 가족끼리도 서로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경우와 상쇄되어 드러나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때로는 마음의 상처로 남기도 합니다. 이렇게 상처로 남을 수도 있는 심리적 부담을 덜어내는 방법을 찾는 것은 중요할 것 같습니다. 가족은 자신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입니다. 가족심리치유 전문가 최광현 교수의 <가족의 발견>은 우리가 미처 모르는 사이에 가족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점과 그렇게 생긴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독일 본대학교에서 가족상담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특히 상처를 안고 있는 가족을 치료하는 분야를 전공하였습니다. 학위를 받고서 본대학병원에서 임상상담사로 일하였고, 루르(Ruhr)가족치료센터의 가족치료사로 활발히 활동하면서 내담자들의 가족이 안고 있는 갈등과 아픔을 목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가족치료는 가족들 사이에 있었던 갈등으로 인한 상처를 잊게 하거나 애써 무시하도록 이끄는 것이 아니라, ‘의미 전환’, ‘재구성’, ‘긍정적 피드백’이라고 부르는 치료기법, 즉 심리적 상처를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를 이끌어내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힘든 일을 많이 겪을 수 있는데, 때로는 마음에 상처로 남을 수 있는 충격적인 상황도 있습니다. 심리적 외상(psychotic trauma)를 겪으면,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기전이 작동하게 되는데, 아무래도 세상과 다른 사람을 볼 때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거나 부정적인 경향을 가지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 거듭되면 세상에 대한 부정적 관점이 견고해지면서 타인과의 사이에 벽을 쌓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준 기억을 없애주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해줄 수 있다면 완벽한 치료가 될 것입니다. 신경과학자들은 최근 “전기경련요법(ECT: electroconvulsive therapy)을 사용하여 불편한 사건에 대한 기억을 선택적으로 교란해 떠오르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라포르시안 2013년 12월 28일자 기사. “불편하고 아픈 기억만 골라서 지워드립니다”). 하지만 아직은 실용화 단계까지 이른 것은 아닙니다.

심리적 외상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심리학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심리적 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어주는 것으로 치유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회피하지 않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해준다. 사고의 틀을 바꾸어,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각으로 자신의 상처를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트라우마는 회복될 수 있다.(13쪽)”라고 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가족과의 소통과 공감이 큰 힘이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가족 역시 아픔과 고통을 안겨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가족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우리가 기댈 수 있는 마지막 보루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중 한 장면 갈무리.

<가족의 발견>은 모두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착한 사람은 행복하기가 어렵다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를 제1부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제2부 ‘상처받은 가족’에서는 화목하게 보이는 가족들이라도  다양한 형태로 심리적 외상을 주고받는다는 점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3부 ‘가족의 발견’에서는 가족들이 왜, 어떠한 방식으로 심리적 외상을 주고받는지, 그 과정에서 가족의 역할은 무엇인가를 깨닫고 가족 안에서의 내 자리를 찾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마지막 제4부에서는 가족들을 보듬어 서로에게 힘이 되는 길을 찾습니다.

저자는 주제와 관련된 자신의 상담사례를 인용하거나, 사례에 잘 맞는 심리학분야의 논문을 이끌어 와서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합니다.

첫 번째 주제 착한사람 콤플렉스에서는 모두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을 서울올림픽에서 있었던 일화를 소개합니다. 당시 요트 남자 470급에 출전한 캐나다의 로런스 르뮤 선수는 갑자기 불어온 강풍에 밀려 싱가포르 선수들이 바다에 빠지자 곧바로 뛰어들어 구해냈다고 합니다. 상황이 생겼을 때 르뮤 선수는 2위를 달리고 있어 메달 획득이 유력하였고, 경기장에는 안전요원이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싱가포르 선수들은 구조될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르뮤 선수의 행동은 위대한 스포츠 정신의 표상으로 칭송을 받아 마땅합니다. 올림픽경기의 정신 또한 그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올림픽경기가 국가 간 경쟁으로 변질되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본다면 캐나다선수단이나 국민들 입장에서는 아쉬웠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저자는 진단합니다.

르뮤 선수는 평소에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지나치지 못하는 착한 사마리아인이었다고 합니다. 저자의 경험으로 보면 심리상담실을 찾아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착한 사마리아인이라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착한 어린이가 되라고 배워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학교를 떠나는 순간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금세 배우게 되고 갈등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내 안에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가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누르고 타인에게 나를 맞추려는 노력은 자신의 내면에서 커다란 긴장과 갈등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러한 긴장이 임계점을 넘어설 때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더 참아야 했던 것 아니냐고 따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사람마다 임계점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조금 더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 것에 대하여 수치심과 죄책감으로 인하여 심리적 상처를 받게 됩니다. 이러한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저자의 조언은 수치심이나 죄책감이라는 감정은 ‘현재의 것이 아니라 과거의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감정이 오히려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이 없다면 과거의 경험은 언제까지도 고통으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 단계로는 스스로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물론 용서가 쉽지 않습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는 일보다도 스스로를 용서하는 일은 더 어렵습니다. 그리고는 상처가 된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의 고통은 사실 기억을 되새기기 때문에 치유되지 않는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되새기는 일은 좁은 시각으로 사건을 들여다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 나오는 “새의 시각으로 보면 그대를 괴롭히던 많은 쓸데없는 것들이 지워 진다”라는 대목을 기억하라고 권합니다. 하늘 높이 떠서 세상을 넓게 보는 새처럼 시야를 넓혀서 문제를 조망하게 되면 고민하던 문제가 별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 이미지 출처: EBS 뉴스(NEWS) '헬리콥터형 부모가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 중에서

외견상으로 보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은 가정에 의외로 문제가 숨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드러내놓고 표현을 하지 않아서 가족의 구성원이 서로에게 주는 고통과 상처의 원인과 결과를 인식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우리의 기성세대가 가지고 있는 ‘돈만 벌어오는 가장’, ‘중독’, ‘무기력’이라는 3종 세트가 가족에게 아픔과 상처를 안기는 중요한 원인이라고 합니다. 특히 가족 안에서 건강한 아버지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두 가지 유형을 들었습니다. 첫 번째는 가족을 지나치게 통제하고 간섭하는 아버지이고 두 번째는 가족에게 무관심하고 무신경하고 방관하는 아버지입니다. 사실 두 유형은 아버지의 역할에서 극단에 해당하는 양 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유형을 조화시켜 중용을 지키는 것이 가장 좋은 아버지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합니다.

요즈음 ‘헬리콥터 부모’라는 신조어가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저 역시 헬리콥터 아버지가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문제는 자상한 차원을 넘어서는 부모 탓에 자녀들이 불편한 모든 것을 부모에게 의존하여 해결하려는 경향까지도 생기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자녀의 회사 일까지도 도와주는 부모도 있다고 합니다. 듣기로는 간호사로 일하는 딸이 힘들까봐 어머니가 보내준 도우미가 병원 일을 거들어준 사례도 있었다고 합니다. 과보호는 오히려 자녀를 망치는 길이기도 합니다. 장성해서 독립할 나이가 되면 둥지를 떠나보내는 것이 자녀를 위한 길입니다. 빈 둥지만 남더라도 말입니다.

가족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소통이라고 합니다. 저의 선친께서는 ‘대화효’를 강조하셨습니다. 화제가 무엇이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효라는 것입니다. 선친께서도 제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자주 물으시기도 했지만, 물으시는 일 이외에도 보고들은 이야기를 전해드리기도 했던 것입니다. 평소에는 지켜보시는 편이었지만, 문제라고 보신 상황이 생기면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해결방안을 같이 고민하시기도 하는 중용에 가까운 위치를 잘 지키셨던 것입니다.

가정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독일 상담가 에바 마리아 추어호르스트의 말을 새기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가족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열심히 일하고, 마음을 열고, 상대에게 베풀고, 용서하는 것이다. 이 네 가지를 실천하면서 산다면 그동안 서로 치열하게 싸웠던 자신들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고 갈등의 플로우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268쪽)” 서로 간에 갈등을 빚는 일은 줄을 마주 당기는 것과 같습니다. 줄을 마주 당기다 보면 팽팽해지는데, 어느 쪽에서 느슨하게 풀어주지 않으면 결국은 줄이 끊어지면서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끌려가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밀고 당기는 지혜를 발휘하라는 것입니다. 대립과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면 다음에는 양보와 화합의 선순환으로 들어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전 [북소리]에서 스티브 아얀의 <심리학에 속지 마라>를 소개하면서 심리학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가족의 발견>에서는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고, 행복의 처방전을 나누어주고, 스스로 삶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으며, 마음속 깊은 바닥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는 확신을 안겨주는 등, 심리학 관련 책들이 범하기 쉬운 일반적인 접근방식과는 다른 면이 있다고 보았기에 [북소리]에서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누구나 드러내기 어려운 저자 자신과 가족의 이야기를 사례로 들고 있는 점도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일 심리학자 이름트라우트 타르는 “가족 안에는 태초부터 내려오는 신뢰가 존재한다.(277쪽)”라고 했다는데, 사실 현대에 들어서면서 대가족이 해체되고 핵가족화되면서 가족들 사이의 연대가 많이 희석된 것 같습니다. 먼 곳에 있는 가족보다는 가까운 이웃이 더 낫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그래도 혈족이라는 말이 공연히 나온 것은 아닐 것입니다.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새기는 좋은 책읽기였습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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