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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료윤리 근간 ‘뉘른베르크 강령’, 나치 전범 단죄에서 나왔다보건의료인들 “굴욕적 위안부 합의 규탄”…인류 보편적 가치 ‘인간 존중’ 정신마저 훼손

[라포르시안]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연구의 윤리원칙으로 적용되는 '헬싱키 선언'은 '뉘른베르크 강령'을 수정 보완해서 만든 것이다.

뉘른베르크 강령은 ▲실험 대상이 되는 사람의 자발적인 동의(voluntary consent)는 절대 필수적 ▲실험은 다른 연구방법·수단에 의해서는 얻을 수 없는 사회적 이익을 위해 유익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하며 ▲실험을 할 때는 모든 불필요한 신체적·정신적 고통과 침해를 피해야 하고 ▲실험으로 인해 감수해야 하는 위험의 정도나 그로 인해 해결되는 문제의 인도주의적 중요성 정도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담고 있다.

이 강령이 만들어진 계기가 바로 뉘른베르크 나치전범재판이었다ㅣ.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일부 의사와 과학자들이 나치 독일 편에서 유대인을 상대로 고문과 살인이라 불러도 무관할 만큼 잔혹한 인체실험을 저질렀다. 내과의사이자 나치 독일 친위대 장교였던 요제프 멩겔레가 저지른 '쌍둥이 실험'처럼.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45부터 1946년 사이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나치전범재판에서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유대인을 대상으로 잔인한 인체시험을 저지른 의사와 의료행정가 등이 법의 심판을 받았다.

나치전범재판을 계기로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와 실험에서 윤리 및 법적 개념을 충족시키기 위해 지켜야 할 10가지 기본 원칙을 담은 '뉘른베르크 강령'이 1947년 제정됐다.

17년 뒤인 1964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제 18회 세계의사회(WMA) 총회에서 뉘른베르크 강령을 수정 보완해서 만든 '헬싱키 선언'이 나왔다. 헬싱키 선언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연구의 가장 중요안 윤리원칙이다.

오늘날 생명의료윤리의 근간이 된 뉘른베르크 강령은 잔혹한 전쟁범죄를 단죄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셈이다.

나치 전범과 달리 일본 전범을 처벌하기 위해 열린 도쿄재판에서는 위안부 문제나 731부대가 저지른 생체실험 등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단죄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수십 년이 흐르고, 1990년대 초반 피해자들의 증언이 나오고 일본 법원에 재판이 제기되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됐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국제적·법적 책임을 회피해 왔다.

지난 28일 한국과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발표했다. 주요 합의 내용은 ▲일본 아베 총리의 사죄와 반성의 마음 표명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단을 한국 정부가 설립하고, 일본 정부에서 10억엔 정도 출연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의 이 문제에 대한 상호 비난 중단 등의다.

이런 합의 결과를 놓고 당사자인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시민사회의 반발이 거세다. 일본군 위안부 합의가 굴욕적인 협상이라는 규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이런 식으로 일본군 위안부라는 반인륜적 전쟁범죄가 제대로 단죄되지 않고 넘어간다면 인류의 고귀한 생명을 지켜내고 인권을 증진시키는 데 걸림돌이 될 것이란 우려도 높다.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지난 12월 29일 성명을 내고 "(한일 정부가 발표한 일본군 위안부 합의는)기존 논의에서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한 반역사적이고, 기만적인 협상에 불과하다"며 "또한 한미일 군사 동맹의 강화를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동아시아 평화를 위협하는 협상일 뿐"이라고 성토했다.

반인륜 범죄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단죄하지 않고 넘어가면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간 존중'마저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2차대전 후 독일 전범을 다룬 뉘른베르크 재판에서는 생체실험과 같은 잔혹한 ‘반인륜 범죄’가 법적으로 단죄되었고 인류는 최초로 뉘른베르크 강령이라는 생명의료윤리의 근간을 마련했다"며 "일본의 도쿄 전범재판에서는 서방 연합국에 대한 전쟁 행위와 관련된 범죄만 재판에 넘겨졌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물론 731부대에서 자행된 생체실험과 세균전 등 반인륜적 범죄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 문제는 결코 민족적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며, 인류의 고귀한 생명을 지켜내고 인권을 증진시키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풀어야 역사적 과제"라며 "그렇기에 보건의료인들은 이번 굴욕적 협상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동아시아 평화는 지켜져야 하고 이번 한일 굴욕 협상은 폐기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일 협상의 이면에 중국과 동아시아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의 압력이 작용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굴욕협상의 이면에는 미국의 ‘한일관계 정상화’ 압력이 깔려있다. 미국은 동아시아 패권을 위해 한·미·일 군사동맹을 강화해왔고, 공개적으로 한일관계 개선을 주문하기까지 했다"며 "이러한 한미일 동맹강화가 오늘의 굴욕적 한일 협상의 진정한 배경"이라고 주장했다.

이들 단체는 "보건의료인으로서 동아시아의 군사적 긴장 고조를 반대하며 진정한 평화를 원한다. 전쟁은 인간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최대의 위협이기 때문"이라며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선 전쟁범죄가 이번 협상처럼 끝나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전국보건의료노조도 지난 12월 31일 성명을 내고 "한일외교장관 회담을 통해 위안부 문제에 합의했다고 발표했지만 이 합의는 참담하고 씻을 수 없는 굴욕적 합의"라고 비난했다.

보건의료노조는 "한국 측이 얻은 것이라고는 일본정부의 형식적인 사과와 10억엔 정도의 출연금이 전부인 반면 가장 강조된 것은 더 이상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한국은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더 이상 이 문제를 제기하기 않기로 했으며,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이런 점 때문에 한국 정부가 돈을 받고 민족의 자존감과 역사의 정의를 팔아치웠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고 지적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우리 민족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가장 극심한 고통을 받았던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먼저 일본제국주의에 면죄부를 준 것과 다를 바 없다"며 "우리가 요구한 것은 일본의 진정한 사과와 반성이고 다시는 이런 제국주의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양심의 소리"라고 강조했다.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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