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한의학, 이상곤 지음, (사이언스 북스 펴냄)
이번 주에는 한의학에 관한 책을 소개합니다. 한방 안이비인후과를 전공했다는 이상곤 박사님이 쓰신 <낮은 한의학>입니다. 한의학에 대한 관심은 많지만 한의학을 깊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상세하게 언급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의료계와 한의계의 갈등이 첨예한 시기라서 조심스럽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낮은 한의학>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 가운데 의료계의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보아 같이 논의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상곤 박사는 한의학을 감싸고 있는 신비적 아우라를 걷어내 그 뿌리를 보여주고 싶어 글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작고 분명한 목표에 예리한 솜씨를 보이는 현대의학보다, 몸의 지혜를 전체적인 관점에서 접근해가는 한의학적 가치를 드러내는데 일조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도 적었습니다. 그런 집필의도를 살리기 위하여 한의학적 사유의 본질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일화에 인문학적 깊이를 더하려 했다고 합니다.

완독을 한 느낌을 일단 정리해 보면, 이상곤 박사님의 주장대로 한의학이 의학으로서 자리매김을 해오기까지 수많은 임상사례의 성공과 실패를 바탕으로 발전해왔기 때문에 한의학은 아직 정교하지는 않았지만, 그 옛날의 수준으로 본다면 나름대로는 과학적 접근이었다는 평가를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의학이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며 검증되지 않은 비과학적 술수라고 치부되는 시각에 억울하다는 생각을 갖고 계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의학 이론 가운데는 요즈음의 판단기준으로 볼 때 비과학적인 것들도 일부 있는 것 같습니다.)

이상곤 박사님이 집필의도를 제대로 살리기 위하여 인용하고 있는 자료의 방대함에 먼저 경의를 표합니다. 동서양의 고금문헌을 섭렵하고 이들을 적절하게 인용하여 매끄러운 논리로 연결하여 독자로 하여금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또한 한의학 뿐 아니라 현대의학의 이론까지도 인용하여 환자의 병증을 설명하는데 있어 공통분모를 찾으려는 노력에 놀라게 됩니다.

우리나라 한의과대학에서는 현대의학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기초의학과 임상의학의 이론을 공부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배정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상곤 박사님이 <낮은 한의학> 곳곳에서 현대의학의 이론을 인용하여 환자 사례의 병증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 이해되는 점이기도 합니다.

“소의는 병을 고치고 중의는 인간을 고치며 대의는 사회를 고친다(小醫 治病 中醫 治人 大醫 治國)”는 옛말이 있습니다만, 환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병을 잘 고치는 의사 만나기를 가장 원할 것 같습니다. 명의는 운도 따라줘야 하겠지만, 당연히 많은 공부와 다양한 사례를 경험함으로써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 그에 합당한 치료방법을 적용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서도 전문의 과정을 수련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렇습니다. 한의과대학에서 공부하는 정도의 짧은 현대의학의 지식수준으로 환자의 병증을 논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상곤 박사가 곳곳에서 인용하고 있는 현대의학의 이론들이 때로는 무리하다 싶게 해석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간단한 예를 들면, 조선 성종대왕께서 붕어하시는 과정을 보면, 성종 25년 12월 22일 “이질로 편찮은 데다 부종을 앓았다.”는 병세가 처음 기록되었는데, 의관 송흠은 ‘성상의 몸이 매우 야위셨고 맥이 급하게 뛰며, 허리 밑에 종기가 있고 호흡이 불규칙적이고 입술이 건조하다’고 보고했다고 합니다.

성종께서는 소갈병(당뇨)을 앓았는데 특별하게 손도 써보지 못하고 24일 붕어하셨다는 것입니다. 성종대왕의 병증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붕어하신 것은 지병인 당뇨에 생기기 쉬운 종기에서 빠르게 증식한 황색포도상구균이 어느 시점에 혈관으로 침입하여 패혈증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입니다. 패혈증으로 발전하면 강력한 항생제를 무기로 하고 있는 현대의학으로도 아직 구명할 확률이 크지 않은 형편입니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종기는 “억울한 일을 당해 마음이 상하거나 소갈이 오래되면 반드시 옹저나 정창이 생긴다.(112쪽)”고 하였고, 난경에 따르면 ‘신수(腎水; 신장의 혈액이라 설명함)가 부족해서 생기는데 신수가 고갈되면 혈장이 줄고 혈구만 남아 피부 밑에 쌓여 응고된 것이 적취(종기)’라는 되어 있는데, 이상곤 박사는 ‘서양의학의 설명과 대동소이하다’(86쪽)고 적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의학에서 설명하는 종기는 피부를 깨끗하게 관리하지 않아 모공의 입구가 막히게 되면 세균이 증식하면서 화농성 염증을 일으켜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황색포도상구균이 가장 흔한 원인균입니다. 종기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여 종기에서 증식하던 세균이 혈관으로 침입하게 되면 패혈증으로 발전하여 사망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저자는 세종대왕께서 고통을 받으셨다는 풍질이 현대의학에서 사용하는 강직성 척추염이라고 단정하고, 세종대왕의 병증 모두를 강직성 척추염으로 설명하려 들고 있습니다. 강직성 척추염은 일종의 면역체계의 이상으로 생기는 면역관련 질환으로 다양한 증상을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상곤 박사가 강직성척추염의 근막증후군으로 설명하고 있는 세종대왕의 통증은 섬유근통증후군의 가능성도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으며, 세종대왕의 시력이 감퇴되어 실명에 이르게 된 것을 강직성척추염의 후유증으로 설명하는 것보다 당뇨병의 합병증으로 많이 나타나는 당뇨병성 망막증으로 설명하는 것이 적절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문헌으로 기록되어 있는 과거인물의 질병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자료가 제한적이라서 쉽지 않다는 것을 참고하셔야 할 듯합니다.

그밖에도 오줌이 독성을 가지고 있다(88쪽), 부신에서 성호르몬이 분비된다(93쪽), 말라리아의 치사율이 소아를 제외하면 별로 높지 않았다(98쪽), 생물이 적당한 영양분과 온도와 습도를 제공할 때에만 바이러스의 서식지가 된다(161쪽), 젖꼭지가 젖을 만드는 기관이다(195쪽), 비장이 위장과 더불어 소화계의 부분이다(204쪽), 현대의학의 관점에서 보는 면역이 체온을 높이는 방식과 점액을 분비하여 방어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211쪽), 등등 곳곳에서 현대의학의 이론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듯한 인용을 보게 되는데 이를 읽은 독자들이 왜곡된 의학지식을 기억하게 될까 우려되는 점입니다.

독일의사 요한 아담 쿨무스가 지은 <해부학도감>을 최초로 번역하여 <해체신서>라는 이름으로 일본에 소개한 일본의 의사들이 한의학을 연마하였기 때문에 일본의 근대화에 한의사가 기여했다고 설명한 부분도 적절해 보이지 않습니다. 일본의사들이 처음 일본의 전통의학을 공부한 것은 옳은 것입니다. 하지만 네덜란드에서 들어온 서양의학을 접하고서 그 우수성에 착안하여 일본에서 활용할 목적으로 서양의학을 다시 공부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번역도 가능하였을 것이고, 그때쯤에는 전통의학을 버렸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뿐만 아니라 유네스코 자문위원들이 “동의보감은 독창적이면서 아직도 여러 방면에서 서양의학보다 우수하다고 인정받고 있다.(223쪽)”고 인용 것도 지나친 감이 없지 않습니다. 동의보감의 우수성을 강조하려는 뜻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정도를 넘어 곡학아세(曲學阿世)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이 들게 됩니다.

저자는 연전에 유행하여 방역당국을 긴장하게 만들었던 신종플루에 관해서도 치료제로 각광받고 있는 타미플루가 한약재 대회향으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대회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회향에 함유된 시킴산이라는 성분을 토대로 하여 합성된 것이라고 해야 옳을 것 같습니다. 이상곤 박사는 무서운 신종플루가 유행한다면 (타미플루가) 전 국민의 5퍼센트에도 돌아가기 어렵고, 내성이나 부작용이 걱정되는 상황이며, 신종플루 백신도 사후약방문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균형을 추구하는 한의학적 지혜를 우선 빌려볼 것을 권하고 있는데, 이처럼 대담한 보건의료정책을 권할 수 있는 용기는 지나친 것 아닐까요?

솔직하게 말씀드려 한의학의 이론을 집대성한 장중경이 6할의 일가친척을 전염병으로 잃은 뒤, 전염병관리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상한론>을 완성했다고 합니다만, 전통의학에서 천연두, 콜레라 등과 같은 전염병을 사전에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방법을 정립했다면,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전염병으로 엄청난 숫자의 백성들이 죽음을 당하고서야 물러났다는 역사적 기록은 과연 무엇이란 말입니까? 대체적으로 보면 자연면역을 획득한 사람들이 늘어 전염병의 확산이 스스로 수그러들 때까지 환자들을 고립시키는 수동적 대응방식으로 전염병의 확산을 필사적으로 막았다는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만, 전통의학의 묘방이 전염병환자 발생을 차단하거나 확산을 차단했다는 기록을 읽은 기억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정리를 해보면, 이상곤 박사는 <낮은 한의학>에서 여러 차례 한의학의 우수성과 현대의학의 한계를 강조하면서 상호보완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현대과학은 위대하다. 그러나 결코 완전하지 않다. 앞으로도 보완해야 할 것도 많고, 새로 밝혀낼 여지도 많은 것이다. 그러므로 서양의학에 대한 과신과 맹신은 어리석은 일이다. 한의학이 근대 이후 서양의학이 여러 분야에서 이룬 성과를 받아 안으면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것처럼, 질병과 그 원인 자체를 도려내는 데 몰두하는 서양의학은 전체의 균형을 생각하며 종합적인 효과를 노리는 한의학의 논리에서 분명 배울 것이 있을 것이다.(130쪽)”라고 적은 것은 인간을 종합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한의학을 중심으로 하여 현대의학에서 발전시켜온 이론을 접목하는 것이 좋겠다는 주장으로 이해됩니다.

사실 현대의학의 뿌리가 된 서양의학도 근대 이전에는 동양의 전통의학과 비교해서 크게 다른 것도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병리학을 필두로 하여 약리학, 생리학 등 기초의학이 물리학, 화학 등과 같은 과학분야가 발전하면서 이룬 성과들을 받아들여 과학화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오늘날의 현대의학이 성립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을 이해한다면 이상곤 박사가 <낮은 한의학>에서 주장하는 요지가 적절하고 타당한 것인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관심있는 독자들의 판단을 기대합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