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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의료는 산업인가, 복지인가?
  • 김상기 편집국 부국장
  • 승인 2015.12.18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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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르시안] '기대수명'. 0세 출생자가 향후 생존할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생존년수를 말한다. 2013년에 태어난 출생아의 기대수명을 81.9년이다. 통계청이 작년 말 발표한 '2013년 생명표'에 따르면 2013년에 태어난 출생아 중에서 남자의 기대수명은 78.5년, 여자는 85.1년이었다. 이런 기대수명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보다 남자는 1.0년, 여자는 2.2년 더 높은 수준이라고 한다. 

평균값에는 언제나 함정이 있다. 산술적으로는 딱 떨어지지만 그 집단의 구성원에게 제각각 대입해보면 뭔가 현실적이지 못할 때가 많다. 많은 직장인이 평균 임금 통계를 보면서 느끼는 괴리감과 비슷하다. 심지어 불가능한 평균값도 있다. 주사위를 던졌을 때 나오는 눈은 1부터 6까지 여섯 개의 숫자 중 하나다. 주사위를 여섯 번 던졌을 때 나오는 주사위 눈의 평균값은 3.5가 된다. 하지만 3.5는 주사위를 던졌을 때 나올 수 없는 평균값이다. 

2013년을 기준으로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이 81.9년이라고 하지만 5,022만명(2013년 기준) 제각각의 기대수명은 엄청난 편자를 보일게 뻔하다. 사고나 중증질환으로 인한 갑작스런 생의 마감을 제외하더라도 또다른 변수가 있다. 바로 사는 동네와 소득 수준이다. 최근의 한 연구에 따르면 사는 곳과 경제적 수준에 따라 평균 기대수명이 최대 15세까지 차이가 났다.

서울대 의과대학 강영호 교수가 2009년부터 2014년까지 건강보험 가입자 및 의료급여 수급자의 보험료 자료와 사망신고자료를 이용해 우리나라 광역시·도와 시·군·구의 소득수준별 기대여명 차이를 분석했다. 그랬더니 강원도 화천군의 하위 소득 20%의 출생시 기대수명은 71.0세로 전국적으로 가장 낮았다. 서울시 서초구 상위 소득 20%의 출생시 기대수명은 86.2세로 가장 높았다. 두 집단의 기대수명 차이는 15.2세 달했다.

이런 결과가 도출된 원인이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강원도 화천군과 서울시 서초구의 분포한 의료자원의 불균형, 소득 수준에 따른 미충족 의료비율 격차 등이 영향을 미쳤을 거다. 문제는 이런 건강 불평등이 점점 심화되고 고착화 되고 있다는 점이다. 도시와 수도권 중심의 의료자원 분포, 전체적으로 고소득층에 집중된 의료이용 양상이 건강 불평등을 불러오고 있다. 의료이용 양극화로 인한 지역별, 소득별 건강 불평등의 양상이 사회문제화로 표출될 지경에 이르렀다.

'송파 세모녀 자살사건'은 단적인 예다. 아버지의 질병 치료 과정에서 생긴 '재난적 의료비'로 인해 메디컬푸어'(Medical Poor)로 전락했고, 큰 딸과 어머니에게 질병은 마지막 생존수단마저 사라지게 만들었다. 세모녀에게 의료는 질병치료 그 이상의 의미다. 이들에게 적극적인 의료보장 혜택이 주어졌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지 모른다.    

지난 메르스 사태 때는 또 어땠나. 메르스 의심증상을 보였음에도 정상적으로 출근하다 뒤늦게 확진판정을 받은 노동자도 있었다. 어느 대형병원의 이송요원으로 근무하다 메르스에 감염된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는 스스로 메스르 의심증상을 자각했지만 이를 숨기고 9일 간 근무를 지속했다. 그가 그렇게 했던 건 일자리 상실에 대한 우려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점점 심해지는 건강불평등, 송파 세모녀 사건, 감염병에 취약한 노동환경은 모두 부실한 의료보장체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질병으로 소득을 상실할 경우 바로 절대빈곤층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가 만들어냈다. 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하면서 상병수당(업무상 질병 외 일반적인 질병 및 부상으로 치료를 받는 동안 상실되는 소득 또는 임금을 현금수당으로 보전해 주는 급여)조차 없는 나라에서 말해 뭣하나. 의료보험제도를 운영하는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상병수당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사회보험으로 의료보장제도를 가장 먼저 도입한 유럽국가에서 의료보험의 원래 기능은 소득 안정이었다. 질병으로 인해 상실된 소득을 보상하는 질병수당이 먼저 시행됐다. 의료비 보장은 그 이후에 생겼다. 우리하나의 국민건강보험법에도 상병수당 관련 규정이 들어 있다. 하지만 시행되지 않고 있다. 

가난하고 아픈 이들에게 우리나라의 병원은 '하얀 정글'이나 마찬가지다. 당뇨병을 앓으면서도 단돈 몇만 원이 없어 병원을 다니지 못하다가 결국 합병증으로 소변줄을 달고, 최소한의 생계수단마저 잃게 된 사람에게 의료시스템은 그 자체로 약육강식의 정글과 다를 바 없다. 취약한 의료보장제도가 그렇게 만들었다. 의료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 의료보장은 가장 강력한 복지수단이자 가장 수익률이 높은 투자다. 질병으로 경제활동 능력을 상실한 사람이 적절한 의료를 제공받아 다시 직장으로 복귀했을 때와 그렇지 못할 때를 비교해보면 명확해진다. 환자 본인과 간병으로 인한 가족의 소득상실까지 감안하면 적극적인 의료보장만큼 수익률이 높은 투자도 없다.

그래서 묻고 싶다. 의료는 복지인가, 산업인가. 정진엽 보건복지부장관은 지난 12월 17일 국회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 '의료서비스산업' 육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 의료 해외진출, 외국인환자 유치,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같은 정책을 적극 추진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박근혜 정부에서 '보건복지부 = 의료산업 육성 = 새 일자리 창출'이란 등식이 거의 굳어졌다. 이렇게 일자리 걱정을 많이 하는 복지부가 질병으로 직장을 잃거나, 아픈 가족을 돌보기 위해 직장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정책엔 관심이 없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진심으로 걱정된다. 이렇게 '비의료적'인 정책이 남발되고, 민간병원은 외화벌이를 위해 해외로 나가거나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는 데 골몰하고, 의료인들은 산업역군처럼 해외진출로 등 떠밀리는 이런 상황이 지속 되도 괜찮을까 싶다. 머지않아 닥쳐올 상황을 생각하니 끔찍하다.

김상기 편집국 부국장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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