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빅데이터 활용한 ‘KNHI 아틀라스’ 구축 추진…의료자원 분배·건강형평성 문제에도 활용

[라포르시안] 미국 '다트머스 의료정책 및 임상진료 연구소'(Dartmouth Institute for Health Policy and Clinical Practices)는 1993년부터 20년 이상 메디케어(Medicare) 자료와 지리정보시스템(GIS)을 연계해 지역별 의료이용 정보를 분석하는 '다트머스 아틀라스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다.

다트머스 아틀라스에는 특정 지역의 기본적인 의료자원 정보부터 개별병원에 관한 정보와 의료질 평가 자료, 질환별 지역내 사망률과 재입원율, 의료비용 등 방대한 의료데이터가 세부 항목별로 지리정보와 연계·구축돼 있다. 지도상의 특정 위치를 클릭하면 곧바로 관련 의료데이터를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다트머스 아틀란스 홈페이지 바로가기

다트머스 아틀라스는 지도상의 지리공간정보를 환자의 의료이용 빈도와 결합해 시각화 한 일종의 '헬스맵(국가보건의료지도, Health Map)'이다. 의료취약지를 한 눈에 살펴 볼 수 있고, 개별 지역에 제공되는 의료서비스의 질을 가늠하는 지표로도 쓰인다.

이렇게 구축된 헬스맵은 의료자원의 효율적인 분배와 활용을 위한 보건의료정책 생성에 활용되고, 보다 효과적인 의료전달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정책 수립의 근거를 제시하는 데 유용한 도구로 정평이 나 있다. 

▲ 이미지 출처: 다트머스 아틀란스(Dartmouth Atlas of Health Care)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다트머스 아틀란스는 수년 전부터 어린이와 관련된 의료데이터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은 어린이 인구 천명당 지역별 편도선 수술 건수를 보여주는 데이터.

건강보험 빅데이터와 공간정보 빅데이터 결합한 '의료이용지도(KNHI-Atlas)' 구축 추진

국내에서 '한국판 다트머스 아틀라스' 구축 시도가 이뤄지고 있어 관심이 쏠린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보험 빅데이터와 국토교통부의 공간정보 빅데이터를 융합해 '환자의료이용지도(KNHI-Atlas)'를 구축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한국판 아틀라스는 의료자원의 과잉공급과 수도권 대형병원의 환자 집중 현상, 응급·분만 등 의료취약지 해소 방안 마련과 효율적인 의료전달체계 확립 등을 위한 보건의료 정책 수립에 활용하는 데 그 목표를 두고 있다.

구축 방식은 다트머스 아틀라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건강보험 빅데이터에 담긴 가입자들의 보험료, 진료내역, 의료기관 정보 등을 공간정보와 매칭해 환자의료이용지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의료이용지도 구축 작업은 서울대의대 의료관리학연구소와 국립중앙의료원, 분당서울대병원, 보건산업진흥원, 보건사회연구원, KAIST 등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동으로 추진하는 중이다.

건보공단은 지난 15일 ‘의료이용지도 활용 방안’모색을 위한 심포지엄을 열고 지금까지의 연구수행 결과를 공개하고 향후 의료이용지도 발전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의료이용지도 연구 책임을 맡은 서울대의대 김윤 교수는 "이번 연구는 환자의 의료이용행태를 고려한 의료이용지도를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의료자원 공급 적정화 및 효과적인 의료전달체계 구축의 정책적 근거를 마련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고 설명하며 지금까지 도출해 낸 연구성과를 소개했다.

의료이용지도를 구축하는 데 있어서 가장 먼저 전제돼야 하는 게 바로 지도상에 '의료생활권역'을 설정하는 일이다. 참고로 다트머스 아틀라스는 미국의 전 지역을 300개가 넘는 '병원 서비스 지역'으로 구분해 놓았다.

연구팀은 우선 인구수와 의료수요의 자체충족률, 접근성 등을 기반으로 의료이용지도의 기능과 목적에 접합한 '의료생활권'을 검토하는 작업을 수행하고, 향후 관련 연구에 표준적인 의료생활권 도출 방법론을 제시할 계획이다.

병상공급이 의료이용과 사망률에 미친 영향은?응급·분만환자의 '골든타임' 실정적으로 접근 

심포지엄에서는 세부과제로 진행된 ▲병상공급이 의료이용과 사망률에 미친 영향 ▲중증질환 의료이용행태(심뇌혈관질환과 암) ▲만성·경증질환 의용이용행태(당뇨병)▲공공의료 효율적 자원 배치 방안(응급 및 분만에서 적정 시간의 실증적 근거 도출) 등의 연구결과를 소개해 관심을 모았다.

병상공급이 의료이용과 사망률에 미친 영향을 파악한 세부과제는 인구 1000명당 병상수, 500병상 이상 종합병원 병상 구성비, 인구 1,000명당 입원건수, 자체충족률(권역내 입원건수/권역주민 전체 입원건수), 입원환자 중증도 보정 사망률 등의 지표와 지리정보를 연계해 분석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분석 결과, 지역내 병상수가 증가할수록 인구 10000명당 입원건수가 증가(설명력 65.5%)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의료시장의 특성이 확인된 것이다.

눈에 띄는 결과는 권역내에 '500병상 종합병원 병상 비율'에 따라서 의료이용량과 질에 큰 격차를 보인다는 점이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500병상 종합병원 병상 비율이 20% 이하일 경우 20% 이상인 경우와 비교해 입원건수를 더 많이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왔다. 

병상공급량의 증가는 의료서비스의 자체충족률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500병상 이상 종합병원의 구성비에 따라 자체중촉률 증가 수준이 달라졌다.

500병상 이상 종합병원이 없는 권역에서는 병상공급량에 따라 자체충족률이 크게 달라졌지만 500병상 이상 종합병원 병상 비율이 20% 이상일 경우 병상공급량이 적어도 자체충족률을 80% 수준에서 고르게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이미지 출처: 의료이용지도 구축 관련 서울의대 의료관리학연구소 컨소시움의 연구결과 발표자료 중에서.

500병원 이상 종합병원의 병상 구성비는 사망률과도 연관성을 보였다.

500병상 이상 종합병원 병상 구성비가 20% 이상인 지역의 사망률(1.025)과 500병상 이상 종합병원 병상이 없는 곳의 사망률(1.235)은 20%의 격차를 보였다.

연구팀은 이런 분석 결과를 토대로 "500병상 미만 종합병원의 병상공급은 부적절한 입원의료이용을 증가시키면서도 자체중족률을 그다지 개선하지 못하고, 입원환자 사망률은 전혀 낮추지 못한다"며 "500병상 이상 종합병원이 없는 지역은 입원의료취약지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기준으로 할 때 우리나라의 입원의료취약지는 전체 57개 의료생활권 중 27개(47.4%)에 달하며, 취약지에 거주하는 인구는 총 760만명으로 집계됐다. 전 국토의 약 절반이 입원의료취약지에 해당한다는 의미다.

김윤 교수는 "이러한 분석 결과는 의료이용 결과의 형평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최근 10여년 간 우리나라의 병상 증가는 대부분 500병상 미만 병원급이 주도했고, 특히 100`300병상 규모 병원이 전체적인 병상 증가를 주도했다. 민간병원 중심의 이러한 병상 공급구조에 대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의료이용지도 연구를 통해 응급 및 분만환자 발생 상황에서 사망률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골든타임'의 기준시간에 대한 실증적인 접근도 이뤄졌다. 연구팀이 진행한 세부과제 중 '공공의료 효율적 자원 배치 방안(응급 및 분만에서 적정 시간의 실증적 근거 도출)' 연구를 통해서다.

연구팀은  2006∼2014년에 권역응급의료센터 등에서 응급 진료를 받은 44만5,548명의 환자 데이터를 분석했다.

신속한 진단과 처치 시간에 따라 사망률에 큰 영향을 받는 '응급의료민감질환' 13개를 선정하고 응급진료를 받은 환자 데이터와 연계해 분석한 결과, 질환이 발생한 때부터 의료기관에 도착하기까지의 이송 시간이 최소 60분, 최대 70분이 넘으면 사망률이 급격히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이미지 출처: 의료이용지도 구축 관련 서울의대 의료관리학연구소 컨소시움의 연구결과 발표자료 중에서.

분만 환자의 골든타임도 도출해 냈다. 연구팀이 2013년 한해 동안 분만 경험이 있는 임산부 환자 37만1,341명의 의료정보와 지리정보를 연계해 분석한 결과, 산전진찰을 위한 적정시간은 60분으로 나왔다. 연구팀은 현재 30분으로 설정된 산전진찰 취약지 적정시간을 60분으로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분만의 경우 태반 조기박리나 출혈 등 급작스러운 이상으로 인한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산모가 적어도 60분 이내에 산부인과 응급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연구결과를 더 정교하게 보완하면 의료취약지역을 선정하고, 효율적인 의료자원 배치를 위한 정책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응급과 분만환자에 대한 골든타임 분석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권역응급의료센터 확충 사업, 분만취약지 지원사업의 정책적 근거를 제시하는 데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의료이용지도에 '아틀라스'가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 발표된 의료이용지도 연구과제 결과를 놓고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힘들다. 아직 시작단계이기 때문이다. 다트머스 아틀라스는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메디케어 영역의 방대한 의료데이터를 지리정보와 연계해 쌓았다. 다트머스 아틀라스에 구축된 의료데이터의 규모가 100TB를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단이 추진하고 있는 의료이용지도는 이제 막 구축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데이터의 해석이나 분석결과에 대한 '역인과성(reverse causality)' 등의 문제가 제기됐다.

예를 들어 '병상공급이 의료이용과 사망률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세부과제에서 500병상 이상 종합병원 병상 비율이 어떻게 지역내 사망률과 의료이용량 증감에 영향에 미치는가에 대한 구체적 요인분석이 없는 상태에서 결과만 보여주면 엉뚱한 해석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세부과제 연구결과 발표 후 진행된 토론에서 건국대 의과대학 이건세 교수는 "500병상 이상 종합병원이 없는 지역에서는 그 이하 규모의 병원이 늘수록 부적절한 의료이용만 초래하고, 사망률 감소 등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식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며 "또한 의료이용지도가 구축되더라도 우리나라처럼 민간 중심의 의료공급체계에서 정부가 얼마나 병상수급에 개입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의료이용지도 구축을 위한 연구자료 수집이나 분석 단계에서 교란변수 통제가 적절하게 이뤄졌는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연구팀이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주이용 의료기관(병원급, 종합병원급, 상급종합병원급)의 유형이 예방가능한 입원율이 의원급 대비 지나치게 높은 것으로 나왔다. 이 결과를 놓고 이용환자의 중증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거나 다른 교란요인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도영경 교수는 "의료이용지도 구축은 그동안 산발적으로 진행된 지역간 의료이용 변이 연구를 갈무리하고 나아갈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며 "다만 분석결과를 보면 교란변수 통제 등을 고려하면 인과성 문제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해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료이용에 관한 아틀라스인데 지리적 정보의 시각화가 더 보강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건세 교수는 "'한국판 다트머스 아틀라스'라고 기대했는데 아틀라스가 보이지 않는다"며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기 위해서는 시공간 자료의 적절한 시각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구책임을 맡은 김윤 교수<오른쪽 사진>는 "이번에 발표된 연구결과는 인과성에 근거해 해석한 것이 아니다"며 "앞으로 의료이용 아틀라스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의료이용지도의 중장기 발전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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