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약국 / 니나 게오르게 지음 / 김인순 옮김 / 박하 펴냄, 2015년

[라포르시안] 지난달에 떠난 발칸여행지 가운데 두브로브니크에서는 프란체스코수도원에 붙어 있는 약국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최초의 약국이라고 했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환자들은 진료를 받은 병원에서 약을 타갔던 것인데, 약을 다루는 부서가 병원 밖으로 독립되어 나간 셈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약국에서는 약만을 팔았는데, 오늘날의 약국은 약 이외에도 건강기능식품이나 일상생활에 필요한 보건의료품목들까지 다루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담배를 파는 약국도 있습니다. 금연에 도움을 주는 물품도 팔고 담배도 파는 이중성이 지적되고 있어서인지 최근에 약사회가 중심이 되어 약국에서는 담배를 팔지 않도록 하자는 운동도 전개된다고 합니다.

약국이라고 하는 명칭이 특정한 분야를 상징한다고 보면 의약품이 아닌 것을 팔면서 약국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있을까요? 지구상의 생물들처럼 세상사 역시 진화하고 있는 것이라면 진화된 형태의 약국이 등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막상 이런 곳이 생긴다면 약사단체가 펄쩍 뛸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종이약국>이라는 이름의 소설을 읽고 여러분들에게 소개하려다보니 이런 엉뚱한 생각이 떠오른 것입니다. 종이약국은 무엇을 파는 곳일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책을 파는 서점입니다. ‘약’하면 신체적 질병을 치료하는 알약, 물약처럼 먹는 약도 있지만, 바르거나 붙이는 약도 있습니다. 정신적 질병도 알약이나 물약으로 치료할 수도 있지만, 요즈음은 심리치료 등과 같이 비약물적 치료도 있습니다.

그리고 보니 독서를 통한 질병치료가 전혀 새로운 생각은 아닌 것 같습니다. 3년 전 쯤 [북소리]에서도  <암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독서치료, 바로가기>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독서치료(bibliotherapy)’라는 용어는 1916년 사무엘 맥코드 크로더스(Samuel AcChord Crothers)가 처음 사용했고, 미국도서관협회에서는 1966년 “정신의학 분야에서 치료적인 보조수단으로서 선정된 독서 자료를 이용하는 것, 개인적인 문제와 직접 관련이 있는 책을 읽음으로써 해결책을 안내하는 것”이라고 독서치료를 정의한 바 있습니다.

<종이약국>은 독서치료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독서치료에 관한 자격증을 따서, 개인적인 치료공간을 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파리의 센강에 띄운 배에 열고 있는 <종이약국>의 주인 페르뒤씨가 바로 주인공입니다. 종이약국은 샹젤리제 선착장에 정박하고 있는 배 룰루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제가 파리에 갔을 때 노틀담 사원에서부터 센강을 따라 에펠탑까지 걸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센강변에 늘어서 있는 작은 가게들 틈에서 서점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만, 센강에 떠 있는 배에도 서점이 있는 줄을 몰랐습니다. 어떻거나 종이약국은 파리를 찾는 관광객들에게까지 알려져 있을 정도라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런 서점이 있는 것일까요?

페르뒤씨가 <종이약국>에서 책을 파는 모습을 잠깐 볼까요? “이 책은 손님에게 팔고 싶지 않습니다.” “왜요?” “실례지만, 손님께서는 어떤 남자와 결혼하느냐는 것보다는 어떤 책을 읽으시냐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중요합니다.(18-19쪽)” 거두절미하고 책을 팔지 않겠다고 하지는 않았겠지요. 페르뒤씨가 팔지 않겠다고 하는 막스 조당의 <밤>이라는 책을 고르기 위하여 고민하던 여자손님의 모습을 꾸준하게 관찰한 끝에 내린 결론일 것입니다만, 작가가 시시콜콜한 설명을 생략한 것일 뿐입니다.(제가 작가에게 무척이나 우호적인 것 같습니다). 결국 그녀는 “당신 완전히 미쳤어요”라고 내뱉듯 말하고 서점을 나서지만 며칠 뒤에 다시 서점을 찾아와 페르뒤씨가 추천하는 책을 사가게 됩니다.

이런 돌발적인 상황도 있지만 페르뒤씨는 책을 골라달라는 손님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합니다. 직업이 무엇이고, 아침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어린 시절에 어떤 동물을 좋아했고 최근 몇 년 동안 어떤 악몽을 꿨고 마지막으로 어떤 책을 읽었는지…. 그리고 예전에 어떤 옷을 입으라고 어머니가 말했는지. 등입니다. 생각해보면 책을 고르는 일과 동떨어진 질문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친밀하면서도 지나치게 다가가지 않는 질문을 통하여 적절한 책을 골라내는 재능을 페르뒤씨는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페르뒤씨가 독자에게 맞는 책을 고르기 위하여 나름대로 고심하는 모습은 그가 살고 있는 몽타냐르 27번지에 사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맞은 편 집에 새로 이사한 여성이 흐느껴 우는 것을 알고 책을 권하는 장면입니다. “저는 더 울고 싶어요. 그러지 않으면 물에 빠져 죽어버릴 것 같아요” “그러면 마음껏 울 수 있는 책을 가져다드릴게요.” 페르뒤씨는 27번지 사람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품고 있었습니다.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그가 추천하는 책을 읽으면서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페르뒤씨가 종이약국을 열게 된 배경은 독일의 아동문학가이자 시인인 에리히 캐스트너의 <서정적 가정약방>이라는 책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 책의 서문에 “개인의 생활을 치유하는 데 이 책을 바친다. 이 책은 존재의 크고 작은 어려움에 대처할 수 있도록 대부분 동종요법으로 조제되었으며, 평범한 생활의 내면 치유에 도움이 될 것이다(32쪽)”라고 적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캐스트너의 책 가운데 품절이라서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만, 한문화에서 나온 <마주보기; 마음을 위한 약상자>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정작 페르뒤씨 자신은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니 자신의 문제는 아예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않은 채 밀봉해서 꼭꼭 가둬 두었던 모양입니다. 제우스가 봉인한 판도라의 상자도 열렸듯이 세상에 열리지 않는 비밀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문제는 풀리기 마련입니다. 다만 시기가 무르익어야 하고, 그 시간의 흐름이 안타까운 결과를 낳기도 하지만 그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상황이 무르익어서 문제가 쉽게 해결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몽타냐르 27번지의 4층에 있는 페르뒤씨의 집에는 20년 전 OO이 떠난 뒤로 봉인된 방이 있습니다. 50살이 된 페르뒤씨는 그 뒤로 어떤 여성과도 사랑을 나누어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요즈음 사람들의 시각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종이약국>을 읽어가다 보면 그녀와 페르뒤씨와의 관계는 심상치가 않은 면이 있습니다. 페르뒤씨와 사랑을 나눈 OO은 이내 결혼했고 남편에게도 페르뒤씨와의 관계를 알렸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 사람이 모두 알고 있는 삼각관계를 이어갔다는 이야깁니다. 프랑스사람들답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페르뒤씨가 봉인해둔 OO과의 관계가 풀리기 시작한 것은 앞집에 카트린 르 P. 부인이 이사를 오면서부터입니다. 사랑한다고 믿었던 남편이 바람나서 모든 살림을 들고 새 여자와 자취를 감추는 바람에 카트린은 몽타냐르 27번지로 이사를 오게 된 것입니다. 주민들은 그녀를 위하여 무언가를 내놓기로 하였고, 페르뒤씨에게는 식탁이 배당되었던 것입니다. 페르뒤씨는 봉인된 방에 있던 식탁을 내주었고, 그 식탁에 들어있던 한 통의 편지가 문제를 풀어내는 실마리가 됩니다. 그렇다면 페르뒤씨는 그 편지를 왜 읽지 않았을까요?

카트린이 발견한 그 편지는 OO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페르뒤씨에게 자신보다 먼저 죽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다음날 떠난 OO이 몇 주 뒤에 보내온 편지입니다. 페르뒤씨는 그 편지를 읽어볼 수가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남자를 버린 여성이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은 변명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편지를을 읽는 것은 이별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일이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페르뒤씨를 저녁에 초대한 카트린의 자신의 일그러진 삶을 솔직하게 털어놓게 됩니다. 20년 동안 자신의 삶을 경멸하고 경멸받게 만들었던 삶을... 카트린의 삶이 자신의 삶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페르뒤씨는 이제는 OO, 즉 마농이 20년 전에 보내온 편지를 읽을 준비가 되었다고 깨닫게 됩니다.

마농은 편지에 그녀가 페르뒤씨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야 했던 이유를 적었습니다. 병으로 얼마 살 수도 없게 되었고, 여행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파리로 올 수 없었고, 편지를 보내 페르뒤씨를 그녀가 살고 있는 본뉴로 와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페르뒤씨는 그런 편지를 외면했고, 얼마 뒤에 신문에 난 부고란에서 마농의 이름을 발견하고서도 오해를 풀지 못했던 것입니다. 편지를 읽고 난 페르뒤씨가 스스로에 대한 혐오가 치밀어 생을 마감하려는 순간 나타난 카트린의 위로에 마음을 고쳐먹게 됩니다.

페르뒤씨는 마농이 죽기 전에 했어야 할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그녀가 살았던 본뉴로. 그녀를 처음 만났던 급행열차가 아니라 종이약국이 있는 배 룰루를 몰고 운하를 따라 여행합니다. 프랑스는 북해와 대서양 그리고 지중해로 열려 있지만 바다를 통해서 북쪽에서 남쪽으로 가려면 엄청 돌아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륙의 강을 연결하는 운하를 만들었나 봅니다. 삼면이 바다로 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 강들을 연결하여 운하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저도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프랑스 같은 나라라면 충분히 유용할 것 같습니다.

페르뒤씨의 여행에는 최근에 베스트셀러를 낸 작가 조당이 동행합니다. 작가와 독서치료사의 여행이 좋은 그림이 되는 것 같습니다. 본뉴로 여행하는 길에는 마농이 남긴 일기를 인용하여 마농과 페르뒤씨의 운명적인 만남과 이별이 그려지고, 서점 주인인 페르뒤씨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의문, <남녁의 빛>을 쓴 저자 사나리의 정체를 밝히는 일이 곁들여집니다. 작가와 서점 주인이 함께하는 여행이다 보니 우리가 책에서 읽을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화제에 오르는 것 같습니다. 이별을 애도하는데 필요한 기간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실연을 한 사람의 경우는 연애한 기간을 감안하여 한 해당 한 달은 슬퍼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우정의 경우는 두달, 그리고 사별한 사람을 애도하는 기간은 정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일생 동안 애도하십시오. 우리는 한때 사랑했던 고인들을 영원히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빈자리가 안겨주는 허전함은 우리가 세상을 떠나는 최후의 날까지 함께합니다.(171쪽)”

본뉴로 여행하는 동안 페르뒤씨는 카트린에게 날마다 엽서를 보내고, 또 미래의 문학약제사, 그러니까 독서치료사들을 위한 가이드북을 쓰려고 마음을 먹습니다. 그러니까 본뉴로 가는 페르뒤씨의 여행은 마농과의 사이에 생겼던 오해로 인한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카트린과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여행인 것 같습니다. 이기적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파리에서 그냥 묻어도 될 것 같은데 굳이 마농이 살던 곳이며 지금은 영원히 쉬는 곳으로 가는 것은 페르뒤씨의 섬세하고 감성적인 면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작가는 무려 20년을 앓아와 고질병이 되어버린 마음의 상처로 얼룩진 페르뒤씨와 카트린의 삶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이끌어갑니다. 역시 로맨스 소설은 해피앤딩이 정답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카트린과 페르뒤씨는 프로방스에서 두 사람의 영혼이 머물 공간을 찾아냅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각자의 악령이 숨어  기회를 엿보는 방이 있어요. 방문을 열고 그 악령에 맞서야만 자유로울 수 있어요.”라고 카트린은 말하지만 그녀 역시 페르뒤씨처럼 비비 꼬인 삶으로 스스로를 끌어넣은 바가 있지 싶습니다.

<종이약국>의 말미에는 ‘감정 혼란의 증상이 경미하거나 또는 어느 정도 심각한 경우에 정신과 마음을 빠르게 진정시켜주는 약’으로 추천하는 26권의 책들의 효과와 부작용까지 설명되어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