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본회의 통과로 수련환경 개선 법률적 근거 마련…원안 훼손되면서 ‘환자 안전’ 입법 취지엔 미흡

[라포르시안] 지난 7월 국회에 발의된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 제정안'(일명 '전공의 특별법')이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회에 제출된 상당수 법안이 회기 중 심의조차 받지 못하고 폐기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발의된 지 약 4개월 만에 국회를 통과한 것은 사실 놀라운 일이다.

게다가 이 법안은 관련 이해단체 간 찬반의견이 팽팽히 갈리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법안심의가 만만치 않은 사안이었다. 하지만 19대 마지막 정기국회에서 마지막 실적을 챙기려는 여야의 정치적 계산 속에서 가장 큰 특혜를 받은 법안이라고 볼 수도 있다.

어쨌든 국회를 통과한 전공의 특별법의 가장 큰 입법취지는 수련환경 개선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환자의 안전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특별법은 전공의 수련시간을 주당 최대 80시간으로 제한하고, 교육적으로 필요하면 8시간을 추가할 수 있도록 했다. 사실상 주당 최대 근무시간을 88시간으로 규정한 셈이다.

전공의 연속근무도 '36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다만 응급상황일 때는 최대 40시간까지 초과근무가 가능하도록 했다. 이를 어길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당직횟수와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주던 당직수당은 관련법에 따라 당직일수를 고려해 지급하도록 했다. 수련시간과 수련시간 사이의 휴식시간은 최소 10시간을 보장하도록 규정했다.

특히 독립된 수련평가기구로 '수련환경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토록 하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특별법은 공포 후 1년이 지난 시점부터 시행되며, 수련시간 규정은 2년간 적용을 유예하도록 했다. 따라서 전공의 특별법이 시행되는 시기는 2017년 이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 제정안' 주요 내용. 표 제작: 라포르시안

수련시간 규정 등 수정되면서 입법 취지 크게 훼손 "수련병원의 불법적 노동 착취가 이젠 합법이 되는 것" 우려도 

그러나 전공의 특별법은 국회의 법안 심의 과정에서 원안이 크게 훼손됐다.

당초 새정치민주연합 김용익 의원이 발의한 원안에는 전공의 주당 근무시간을 최대 80시간으로 규정했고, 연속근무도 20시간(응급상황 36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해 놓았다.

이를 어길 경우 처벌 조항도 '2년 이항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이었으나 수정된 제정안은 '위반시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로 대폭 완화했다.

연장수련이나 야간수련, 휴일수련시 근로기준법에 따른 통상임금의 50/100 이상을 가산해 지급토록 한 규정도 삭제됐다.

무엇보다 전공의 육성, 수련환경 평가에 '국가의 예산지원을 의무화'한 규정이 '예산을 지원할 수 있다'는 임의규정으로 변경된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주당 수련시간이나 연속근무 등의 중요한 사항이 원안보다 대폭 완화되면서 특별벌이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이라는 당초 입법 취지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도 높다.

일각에서는 최대 88시간의 주당 수련시간과 36시간의 연속근무를 규정한 특별법이 제정됨으로써 지금까지 수련병원이 해온 부당한 노동착취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장받게 된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한평의사회는 지난 2일 공식 입장을 통해 "전공의특별법은 전공의에게 36시간 연속근무와 근로기준법에 2배가 넘는 88시간의 근로착취를 합법화하는 의료계 역사상 가장 부끄러운 법안"이라며 "특별법이 통과되면 전공의는 대한민국 근로자 중 유일하게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유일한 직종이 되는 것으로, 불법적 노동 착취가 이제는 합법이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종합병원의 한 의사는 "이런 특별법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사실상 지금까지 병원들이 해 온 전공의 노동력 착취를 법적으로 보장해 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일단 제정하고 나중에 수정하면 된다는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과연 그렇게 쉽게 이뤄질 것인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공의들 사이에서도 주당 수련시간 등의 규정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반면 대한전공의협의회는 특별법 제정으로 독립적인 수련환경심의위원회가 운영되면 이를 통해서 전공의들의 고충을 해소할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됐다는 의미를 부여했다.

대전협은 3일 ""전공의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대한민국 의료 역사상 가장 큰 지각변동을 예고했다"며 "희생과 고통 속에 의사로서의 긍지를 느낄 새도 없이 흘러가던 수련과정이, 법의 보호 아래 인간답고 체계적인 시스템 아래 이뤄질 기틀이 마련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전협 송명제 회장은 "법안이 초안에 비해서 다소 완화된 감이 있어 실망하는 일선 전공의들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일선 전공의들이 생각하는 법안의 부족한 부분은 대전협이 노력해서 어떻게해서든 채울 것"이라며 "하지만 이번 법안으로 추진되는 수련환경심의위원회의 독립은 앞으로 전공의 수련을 받는 당사자들의 고충과 어려움을 적극 반영 할 수 있는 평가기구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 회장은 "이를 계기로 없는 것으로 치부되던 전공의들의 인권을 찾고, 체계화된 수련과정을 통해 젊은의사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게 된 출발점에 우리가 함께 서 있는 것"이라며 "지금의 전공의들이 이 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해 나가느냐에 따라 대한민국 수련제도의 미래가 달라진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의사협회도 전공의 특별법 제정을 적극 반겼다. 의협은 특별법 제정을 위해 강청희 상근부회장 등이 이번 정기국회 회기 동안 국회에 계속 머물며 적극 노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협 관계자는 "전공의 특별법을 통해 수련시간 등을 법제화 하고 처벌 규정까지 담은 것 큰 의미가 있다"며 "비록 보건복지부와 병원협회의 반대로 원안에서 일부 축소되긴 했지만 특별법 제정은 그 나름대로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위한 큰 진전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법안을 대표발의한 새정치민주연합 김용익 의원은 3일 "전공의 특별법 제정으로 어려운 조건에서 근무하는 전공의의 수련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며 "전공의의 수련환경이 개선됨으로써 병원의 의료의 질 향상과 국민건강 증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공의 특별법 제정 중요한 목적은 '환자 안전'

전공의 특별법 제정을 통해 적절한 근무시간과 수련환경을 보장하는 것의 가장 큰 목적은 바로 환자 안전에 있다.

전공의들의 열악한 수련 및 근무환경이 환자 안전에 생각보다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실증적인 사례나 여러 연구를 통해 드러났다.

그동안 국내 수련병원 전공의들은 주당 100시간이 넘는 살인적인 근무시간에 시달려 왔다. 대형 수련병원의 경우 전공의가 입원환자의 주치의를 맡아 진료의 상당부분을 책임지는 방식이고, 야간 응급실 등 취약시간대의 진료업무를 전공의가 도맡는 구조다.

고강도의 근무환경 속에서 수면시간이 부족하고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한 탓에 업무 집중도가 떨어질 때가 많다. 이로 인해 전공의 중에서 의료과실을 저지르거나 그럴 뻔한 경험을 한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고려대학교 보건행정학과 김승섭 교수가 지난해 8월 1일~9월 15일까지 대전협 소속 회원 1만1,56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공의 근무환경 및 건강실태조사' 연구를 보면 수련환경과 환자 안전이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 알 수 있다.

근무환경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인턴의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116시간에 달했다. 일평균 수면시간은 4.7시간, 월간 당직일은 15.2일로 조사됐다.

레지던트의 경우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1년차가 103시간, 2년차 94시간, 3년차 83시간, 4년차 75시간 등으로 전체 평균이 주당 93시간에 달했다. 일평균 수면시간은 전 연차 평균이 5,4시간, 월간 당직일수는 8일로 나타났다.

월간 당직일수는 연차별로 차이가 컸는데, 1년차는 10.2일, 2년차는 7.7일, 3년차는 4.8일, 4년차는 3.5일이었다. 수련병원 내에서 전공의들의 업무가 주로 인턴과 연차가 낮은 레지던트에 집중되는 구조이다.

이런 업무환경 속에서 인턴과 레지던트들은 의료과실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었다.

연구팀이 '지난 3개월 간 의료과실을 저지른 적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인턴은 355명 중 49명(13.8%)이, 레지던트는 1,369명 중 119명(8.7%)이 '그렇다'고 답했다. 

'지난 3개월간 근무시간 중에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졸은 경험이 있는지'를 묻자 '그렇다'고 답한 비율이 인턴은 355명 중 317명(89.3%), 레지던트는 1,367명 중 938명(68.6%)에 달했다.

과도한 근무시간으로 인해 업무 집중력이 크게 떨어지고,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심각한 투약오류 등의 의료과실을 저지를 수 있다는 의미다.

의협은 "전공의가 병원 진료의 상당부분을 책임지고 있고 특히 응급실 등 야간 취약시간대의 전공의 의존도가 매우 높은 상황"이라며 "전공의 수련 및 근무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환자안전을 보장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며,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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