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무상급식 도입을 둘러싼 찬반 논란을 계기로 이른바 '무상시리즈'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무상급식의 경우 찬반 논란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각 지자체를 중심으로 무상급식 도입이 속속 추진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무상의료의 경우 만만찮은 재원부담과 국내 의료공급체계 등을 따져볼 때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높다. 이런 가운데 전국보건의료노조와 한국환자단체연합이 ‘무상의료 시대! 한국 의료의 길을 찾는다!’는 기치를 내걸고 이달부터 내년 2월까지 총 15회 연속으로 정책 대안마련 워크숍을 시작했다. 양 단체는 이번 워크숍을 통해 무상의료 도입의 전제조건인 '공공보건의료체계 확립과 의료공급체계 개편' 방안을 모색할 방침이다. 본지는 4개월에 걸쳐 진행되는 워크숍을 현장 동행하며 과연 국내 의료환경에서 의료소비자와 공급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무상의료 도입 방안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바보야, 문제는 공공의료야! - 1] 김용익 교수 "300병상 이하 병원 공공매입 필요"
지난 17일 오전 9시20분. 인천시 부평구 부개동에 위치한 평화의원의 아침은 일반 동네의원들과 다름없어 보였다.  이른 아침부터 의원을 방문한 환자들은 진료를 위해 대기실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면 TV를 보고 있었다. 굳이 다른 점을 찾는다면 다른 의원보다 진료시간이 조금 길다는 느낌.

TV를 보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60대 노인분에게 다가가 어떻게 왔냐고 물었다.

낯선 이의 질문에 잠시 주저하던 그는 이곳에 오면 진료뿐만 아니라 건강에 대한 관리를 받을 수 있어 종종 찾는다고 대답했다. 의사들이 마치 주치의 같이 자신의 건강과 질병을 관리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의료생활협동조합의 조합원이라는 말도 했다.

그제서야 벽에 걸려있는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인천 평화의료 생활협동조합’이란 굵은 글자 밑으로 “지역주민들의 참여와 이용을 통해 운영되고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지난 1996년 11월 산재 및 직업병을 해결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기독청년의료인회가 설립한 인천 평화의료 생활협동조합은 의원과 한의원, 치과, 가정간호사업소, 검진센터 및 재가장기요양기관 등을 운영 중이다.조합원은 지역주민 1,749세대로 1구좌(1만원)씩 출자해 의료인과 함께 조합을 이끌고 있다.

인천평화의료생협의 조합원들은 의원과 한의원, 치과 및 검진센터를 이용하면서 비급여 항목에 대해 5~10%의 절감 혜택을 받고 있으며 특히 치과는 조합원들만 이용할 수 있다.

▲ 인천 평화의원은 반기별로 총 진료건수에 대한 항생제 처방률을 환자 대기실 게시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인천평화의료생협 같은 곳이 꽤 많다. 국내 의료생협은 1994년 안성을 시작으로 인천, 안산, 서울, 대전, 원주, 전주 등 총 14개 조합이 운영 중이며 설입을 준비 중인 조합도 4개에 이른다. 

14개 의료생협에서 근무하는 의사는 32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며, 전국적으로 조합원은 총 1만8,000여 세대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의료생협은 질병 치료뿐만 아니라 지역주민 스스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기존의 치료를 위한, 의료인 중심의 현실에서 벗어나 주민 스스로 건강을 도모하기 위해 환자 중심의 의료기관을 운영하며 질병의 예방 및 조기발견, 건강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통해 건강한 지역사회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왜곡되고 무너진 1차 의료체계이날 인천평화의료생협에서 열린 의료공급체계 혁신을 위한 세 번째 워크숍의 주제가 바로 1차의료 대안의 모색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의료생협의 재조명은 1차의료의 역할을 살펴 보는데 필수 코스라고 할 수 있다.

기조발제를 맡은 임종한 한국의료생협연대 회장 겸 인하대 의대 교수는 의료개혁의 절실함을 강조했다.

임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는 인구의 노령화가 급속히 진행됨에 따라 건강형태의 악화와 만성질환이 증가하고 있다”며 “사회 양극화 현상으로 건강 불평등이 증가하고 무너져 내린 1차의료 현실로 인해 질병 예방 및 관리 능력이 상실해 있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1차의료는 단순한 진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개인, 가족 및 지역사회를 위해 건강증진, 예방, 치료 및 재활 등의 서비스가 통합된 포괄적 의미의 보건의료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단과 전문의 개원의 무제한적 허용과 인적자원의 비효율성, 1차의료 의사의 부족, 1차의료 질 향상을 위한 기전이 결여된 상태라는 것이 임 교수의 지적이다.

임 교수는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의료기관에서 제공되는 의료서비스가 포괄적이 돼야 하며, 병원과 동네의원이 서로 경쟁하는 관계가 아닌 협력관계가 돌아서야 한다"며 "민간소유의 병원이라도 비영리법인에 대해서는 국가와 사회의 지원이 필요하며 민간병원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무분별한 경쟁을 관리해 공공의료 시설의 확충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형적 의료구조 속에서 의료생협은 1차의료의 가치를 지키는 역할을 해왔다”며 “앞으로 의료생협은 시민참여 중심의 보건의료체계 확립과 지역사회 차원의 예방관리체계 구축, 고비용 저효율의 의료구조를 개혁해 건강한 지역사회 조성에 힘써야 할 것 ”이라고 주장했다.

두 번째 워크숍은 인천 동구청에서 진행됐다.

발제를 맡은 건양대 의과대학 나백주 교수(예방의학교실)는 1차의료의 현실과 과제에 대해 설명했다.

나 교수는 “지역주민의 건강문제는 생활현장에서의 적극적 예방이 최선”이라며 “대부분의 의료기관이 지역사회 건강문제의 원인 파악과 해결은 뒷전이고 내소자 진료만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1차의료기관은 지역사회의 건강인식을 바로잡는 의료지식의 문지기(GateKeeper)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나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대다수의 의원들이 1차의료기관을 표방하고 있지만 병원처럼 입원환자를 두고 있어 지역사회 왕진이 어려울 뿐 아니라 주민 생활현장에서 환경문제의 이해와 해결을 위한 노력도 안하고 있다”며 “도대체 한국에 1차의료체계가 있는가”라면 의문을 제기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 관리의료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나 교수는 “지역사회마다 빠짐없이 건강관리를 위주로 하는 보건지소를 설치하고 체계적인 질환 치료 및 관리에 있어 지역사회와 협력하는 의원이 필요하다”며 “검사 및 입원 후 지속적인 1차의료 및 관리를 위해 동네의원을 다니게끔 하는 병원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도시보건지소, 선택의원제, 지역거점병원을 분리해 추진하면 효과가 미흡할 것”이라며 “보건소 및 의료생협 등을 통해 입체적 1차의료체계를 강화함으로써 관리의료의 효과를 입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밖에 '표준 1차의료 지침'을 개발해 보급하고 공공보건기관 중심의 1차의료 표준화에 따른 문제점 및 장애와 요구도 조사를 통해 표준 1차의료 업무 수행에 따른 업무 여건의 개선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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