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운(대한재활의학과의사회 회장, 새명병원 병원장)

[라포르시안]  보건복지부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장애인 수가 250만명에 이른다. 등록되지 않은 장애인 수를 포함하면 273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신체적·정신적 장애가 생기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선천성 장애를 안고 태어나거나 질병과 사고로 인한 후천적인 문제로 장애를 안게 되는 경우다. 국내 등록장애인의 90%는 질병과 사고로 인한 후천적인 문제로 장애를 안게 됐다고 한다.

어떤 이유 때문이든 한국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장애인은 사회적 배려의 대상이지만 한국에서는 오히려 그 반대다. 비장애인 중심의 한국 사회에서 신체적·정신적 장애는 사회적 배제와 차별의 대상임을 표시하는 '스티그마(stigma, 낙인)나 마찬가지다.

사회적 배려와 지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사회에서 모든 장애인은 일상으로의 복귀를 위해 힘겹게 재활 노력을 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만만치가 않다. 가장 중요한 신체 기능의 회복과 퇴화 방지를 위한 재활치료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복합적인 요인이 있다. 가장 크게는 건강보험제도에서 재활치료에 대한 보장성과 의료수가 체계가 상당히 미흡하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급성기질환 중심으로 짜였고, 여기에 맞춰 의료인프라가 구축됐다. 그나마 최근 들어 만성기질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관련 의료인프라도 구축되고 있다. 그러나 급성기 치료 이후 재활 치료를 통한 기능 회복이 필요한 아급성기 질환질환에 대한 건강보험 보장성이나 보건의료 인프라는 끔찍한 수준이다. 사실상 의료시스템의 사각지대로 방치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수많은 장애인이 재활치료를 위해 이 병원 저 병원을 떠돌는 '재활 난민' 처지라고 한다. 대한재활의학과의사회 이상운 회장을 통해 국내 재활의학의 열악한 현실과 개선 방안을 들어봤다.


▲ 재활의료 인프라 붕괴가 그렇게 심각한 상황인가.

“재활의료 수가가 신설된 이후 한 번도 수가인상이 없었다. 오히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요양급여기준만 강화돼 진료비 삭감만 잦아지는 상황이다. 현재 재활치료 관련 수가는 원가의 70% 수준에도 못 미친다. 그러다 보니 많은 재활전문병원이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폐업을 하고 있다. 낮은 수가체계가 재활의료 인프라를 붕괴시킨 셈이다.최근 한 민간단체의 어린이재활병원 설립 추진이 이슈가 되면서 재활치료 인프라 부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어린이 재활병원이 전무하다. 기존에 명맥을 유지하던 어린이재활병원이 저수가로 인한 경영난에 허덕이다 대부분 문을 닫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민간의 노력으로 어린이재활병원이 설립된다고 하더라도 지속적인 적자로 경영에 문제가 생길 게 뻔하다.”   

▲ 재활치료 수가체계에 어떤 문제가 있길래.

“재활치료의 기본은 재활의학과 전문의, 간호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언어치료사, 사회복지사, 심리치료사 등이 함께 참여하는 ‘팀 치료’ 체계다. 그러나 각 직역의 인건비 상승이 커서 치료를 위한 팀 구성이 거의 힘든 상황이다. 재활치료에는 팀원의 인건비와 시설비가 많이 투자된다. 특히 재활치료 환자들의 특성상 재활병원의 치료공간이나 시설은 일반병원보다 더 커야 한다. 재활병원의 1병상 당 약 1억원의 시설비용이 드는 것으로 나왔다. 현행 수가는 시설비가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 단순운동치료의 경우 10분에 지급되는 수가가 3890원으로, 이마저도 횟수제한을 두고 있다. 게다가 중증도를 반영하지 않아 환자의 상태에 상관없이 일률적인 수가를 적용한다. 환자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재활치료 수가코드로 인해 경증이든 중증이든 상관없이 뇌경색 환자에게 동일한 재활치료를 제공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병원 입장에서도 적극적인 재활치료를 해야 할 동기가 없다. 인건비 보존도 불가능한 수가체계 때문에 인력을 유지하는 게 너무 버겁다. 이 때문에 숙련된 전문 치료사들이 다른 분야로 전직하는 일도 잦아지고 있다. 병원뿐만 아니라 전문 인력 인프라도 동시에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다.”

▲ 입원치료를 받기 위해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하는 '재활 난민'이 양산되고 있다는 하는데. 왜 그런가.

“종합병원의 경우 재활치료 환자가 입원하고 15일이 지나면 진료비 삭감이 시작되며, 병원급 의료기관은 입원 2~3개월부터 장기 입원환자로 분류돼 진료비 삭감이 이뤄진다. 그런데 뇌졸중처럼 질환 자체가 만성 경과를 보이거나 후유증에 시달리는 질환은 그렇게 단기간에 도저히 기능 회복을 할 수 없다. 이런 의학적인 측면을 무시하고 기계적으로 진료비 삭감이 이뤄지다보니 병원 입장에서는 입원환자에게 퇴원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 재활치료를 받기 위해 이 병원 저 병원을 떠도는 재활난민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거의 모든 재활치료 환자들이 재활난민 처지에 놓였다고 보면 된다. 건강보험 수가체계가 오로지 질병이 발생한 이후 죽고 사는 것에만 얽매여 있고, 환자들의 삶의 질을 전혀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다.”

▲ 재활치료 인프라 붕괴의 가장 큰 폐해는 뭔가.

“재활치료 인프라 붕괴의 폐해는 직접적으로 환자와 보호자의 의료비 부담으로 돌아가며, 나아가 사회적 비용 부담을 초래한다. 적절한 시기에 제대로 된 재활치료를 시행하면 장애를 감소시킨다는 보고와 관련 연구논문이 수없이 많다. 예를 들면 병원에서 누워있던 환자가 재활치료를 통해 집안에서 스스로 최소한의 간단한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다면 병원비와 간병비를 동시에 절약하고, 환자에게 얽매이던 사람이 그 부담에서 벗어나 일상생활 및 직장에 복귀할 수도 있다. 당장 건강보험 재정 절감을 위한 급여기준에 맞춰 질 나쁜 치료를 제공하게 되면 사망에 이를 때까지 환자의 삶의 질이 떨어지고, 보호자는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고, 국가의 사회적 비용 부담이 커진다. 결정적으로 재활치료 인프라가 붕괴된다. 당장의 건강보험 재정 부담이 따르더라도 적절한 재활치료 수가 보상체계를 마련하는 것과 지금처럼 저수가 체계를 유지하는 것 중에 어느 게 더 큰 사회적 손실을 초래할 지는 자명한 일이다.”

▲ 정부에서 현재 권역별 재활병원 설립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민간 차원에서 어린이재활병원 설립도 추진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행 수가체계로는 권역별 재활병원을 설립하더라도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힘들 것으로 보이는데.

“돈으로 지원해서 시설을 설립하는 것은 현 제도로는 정착되기 어렵다. 2004년부터 권역별 재활병원 설립이 논의돼 전국 시도에 16개를 갖추는 것을 예상하고 시작한 사업이다. 이렇게 오래 전부터 추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제도, 수가, 인프라 등 전반적 고려가 부족해 2015년 현재까지 6개 권역별 재활병원이 설립되었고, 모든 기관이 적자 상태로 운영 중이다. 복지부는 향후 10개 이상 추가 건립 사업을 계획하고는 있으나 시행 당사자가 없는 실정이다. 게다가 장애아동을 위한 재활치료를 전문적으로 하는 권역별 재활병원은 전무한 상태다. 어린이 재활치료는 현 시스템으로는 지속가능성이 거의 희박하다.  어린이 재활치료를 위해서는 먼저 제도가 정착되고 적정수가가 보장된 이후에 차근차근 인프라 조성을 해 나가야 한다. 그렇게 해서 민간의 재활치료 인프라가 잘 갖춰지면 공공에서의 부담도 줄일 수 있다.”  <관련 기사: 사라진 어린이재활병원…대통령님, 장애인 공약 언제 지키실 건가요?>  

▲ 향후 정부의 수가 개편 논의 때 재활의료 팀치료에 대한 수가 보장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들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요구를 할 생각인가. 

“재활치료의 기본은 팀 치료이다. 팀 회의뿐만 아니라 평소에 교육하고 유지하는 관리가 재활의학과 전문의 아니고는 할 수가 없다. 이렇게 기본적이고 중요한 부분이 수가에 빠져 있으면 기본적 치료를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문제점을 짚어내고 정부를 설득할 수 있는 연구자료를 만들어서 제시할 계획이다.”  <관련 기사: 싸고 질 좋은 의료라는 허상…“저수가, 비싸고 위험한 의료이용 강요”>

▲ 새누리당 문정림 의원이 병원급 의료기관의 종류에 재활병원을 신설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재활의학과의사회는 이 개정안을 반기는 입장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어떤 효과가 생길 것으로 기대하는 건가.

“의학을 크게 예방의학, 치료의학, 재활의학으로 구분한다. 그만큼 재활의학의 비중이 크고 급성기 질환과 엄격히 구별되는 영역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오는 2050년에는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38%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게 되면 질환의 양상도 만성경과를 밟는 질병이 급증하게 된다. 이러한 시기에 대비해 병원 크기로만 규정하는 의료전달체계를 의료기능 중심으로의 개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노인들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의료체계를 갖춰 나가야 한다. 결국 재활병원의 필요성은 절대적이다. 의료법 개정을 통해 재활의료의 특수성을 반영한 별도의 인력, 시설 등을 갖추도록 유도하면 재활치료 인프라 붕괴, 어린이재활병원 부족, 재활난민 문제 등의 해결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게 된다. 재활병원 관련 법 규정이 있어야 정책도, 수가도 현실화 할 수 있는 동력이 생기게 된다. 의료인력의 인프라는 한정적이며 그 수를 늘리고 줄이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현재의 재활의료 인프라 및 인력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는가는 초고령화 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는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에 있어서 커다란 숙제나 마찬가지다.“   

▲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금까지 재활의학에 대한 사회적 가치가 상당히 저평가돼 있는 것 같다. 급성기질환 중심의 건강보험 보장체계도 영향을 끼쳤을 것 같다. 재활의학의 사회적 가치를 재고하고, 재활치료를 공공의료의 중요한 한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노력도 시급할 것 같다.

“과거 치료중심 의학에서 지금은 질병의 예방과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쪽으로 의학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요구되는 의료는 당연히 재활의학이며, 재활치료가 활성화 되면 그 만큼 환자의 삶의 질과 사회적 질이 향상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재활의학의 사회적 가치를 재고하고, 환자의 삶의 질까지 고려하는 재활치료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에 대한 사명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재활병원제도가 정착되고 많은 환자분들이 질 높은 치료를 제공받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더불어 재활의학은 장애인 재활과 공공의료 측면에서도 그 역할이 크게 기대되는 영역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정책적 지원과 제도개선 노력이 적극 추진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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