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원주의대 고은산씨 “의사단체, 국민에게 가해진 폭력에 대해 왜 말하지 않나”

[라포르시안]  지난 주말,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한 의과대학생이 쓴 대자보가 화제가 됐다. '의협/대전협/의대협을 비롯한 모든 의사 선배님들께 묻습니다'라는 제목의 대자보였다.

얼마 전 서울 도심에서 열렸던 대규모 집회에서 경찰이 시위 중 다친 환자를 후송하기 위해 온 구급차에 물대포를 쏜 것을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구급차에 물대포를 쏜 경찰의 행위에 대해서 의사단체가 침묵하는 것이 부끄럽다고 했다.

이 의대생은 대자보를 통해 "들것에 실린 환자와 이를 호송하고 치료하는 의료인을 공격하는 것은 전쟁터에서도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이다. 장소가 어디고 상황이 어떠한지와는 관계없이 무방비의 환자와 의료인을 공격하는 것은 인류가 이뤄온 합의와 생명의 무게를 짓밟는 죄악이다…. 의협, 대전협, 의대협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나. 의료의 윤리와 양심과 긍지와 역사가 짓밟힌 사건이 일어난 지 일주일이 되어가는 동안 의사단체들은 어떠한 논평이나 보도자료 하나 내지 않은 채 침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자보를 쓴 주인공은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에 재학 중인 고은산 씨(2011학번)다. 지난 14일 서울 도심에서 열렸던 민중총궐기 대회에 참가했다가 직접 목격했던 상황을 근거로 이 대자보를 썼다고 한다. <관련 기사: 어느 의대생이 쓴 대자보 “경찰, 구급차에 물대포 공격…의사단체 침묵 부끄럽다”>

고은산 씨는 지난 21일 <라포르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집회에 여러번 참가했지만 구급차에 (경찰의)공격이 가해지는 것은 처음봤다"며 "그 상황을 보고 많이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예상은 했지만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대한의사협회가 침묵을 하고 있다는 것이 화가 많이 났다"며 "규제 개혁이나 의료수가 관련해서는 의협에서 투쟁을 많이 한다. 응급실에서의 의료인 폭행사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고. 그런데 왜 국민들에게 가해지는, 거리에서 가해지는 이런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컸다"고 했다.

▲ 고은산 씨가 쓴 대자보 중 일부. 이미지 출처: 고은산씨 페이스북에서 갈무리 https://goo.gl/ojBamB

그래서 직접 자신의 생각을 대자보로 옮겼고, 지난주 의과대학 건물에 이를 게시했다.

고씨는 "대자보는 지난주 목요일인가, 금요일 쯤 게재했고, 아직도 의대건물에 붙어 있다. 대자보를 게재할 때 비가 와서 의대 건물 내부에 붙였다"고 말했다.

대자보 게재에만 그치지 않고 이런 문제인식을 의대생과 의사사회가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보다 적극적인 행동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열린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이하 의대협) 회의에 경찰이 시위진압 도중 구급차에 물대포를 직접 쏜 사안에 대해서 논의하고 입장을 표명하자는 안이 긴급안건으로 발의됐다.

그가 대자보로 쓴 내용에 공감한 원주의과대 의학과회장과 고려대 의대 학생회장의 도움으로 긴급안건으로 발의된 것이다. 

긴급발의된 안건에서 가안으로 제시한 입장문에는 경찰청장을 응급의료법 위반으로 고발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현행 응급의료법 제12조는 '누구든지 응급의료종사자의 응급환자에 대한 구조·이송·응급처치 또는 진료를 폭행, 협박, 위계, 위력, 그 밖의 방법으로 방해하거나 의료기관 등의 응급의료를 위한 의료용 시설·기재·의약품 또는 그 밖의 기물을 파괴·손상하거나 점거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해 놓았다.

시위 중 다친 환자를 후송하기 위해 온 구급차를 물대포로 공격한 게 응급의료 등의 방해를 금지를 관련법 규정을 어긴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고은산 씨는 "발의한 안건의 내용은 (경찰이 구급차를 공격한)문제에 대해서 논의를 하고 입장을 갖자는 것이었다"며 "가안으로 작성한 것이 '의대협 차원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논평을 내고, 의협에 이 문제에 대해서 문제인식을 갖도록 촉구할 것, 경찰청장을 응급의료법 12조(응급의료 등의 방해 금지) 위반으로 고발할 것, 일정 인원이 예상되는 집회에서는 경찰과 시위대 모두 이용할 수 있는 응급의료체계를 확충하는 것을 정부에 요구할 것' 등의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아쉽게도 이 안건은 의대협 회의에서 정식 안건으로 채택되지 못했다. 너무 촉박하게 발의한 탓도 있었다. 그렇다고 포기한 건 아니다.

고씨는 "(정식 안건으로 채택되지 않은 점이)아쉽다. 오늘(21일) 회의에서의 분위기도 어느 정도 공감은 하는데 급하게 안건이 나온 탓에….부결이 되서 아쉽기는 하다.  논의를 해보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며 "앞으로 의대협 회원 100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 임시총회 안건으로 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구급차에 물대포를 쏜 것은)의료인에 대한 테러로 인식하고, 행동을 하자'는 것이 핵심"이라며 "의협이나 의대협과 상관없이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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