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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발톱을 숨긴 늑대에게 문을 열어주면 안된다송형곤(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 응급의학센터장, 전 대한의사협회 대변인)

[라포르시안] 그림 동화 중에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염소'라는 작품이 있다.

옛날 어미염소와 일곱마리의 아기염소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어미염소가 숲 속에 먹이를 구하러 가게 되었는데 늘 염소들을 노리던 늑대가 걱정된 어미염소는 시커먼 발톱과 탁한 목소리를 가진 늑대를 조심하라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늑대가 문을 두드리며 엄마가 왔다고 아기염소들을 속이지만 아기 염소들은 늑대의 탁한 목소리를 듣고, 시커먼 발톱을 보고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그런데 늑대는 목소리를 바꾸고 발톱을 밀가루반죽으로 덮어 아기 염소를 속이고 집안으로 들어와 막내 아기염소를 뺀 나머지 여섯마리를 모두 잡아먹어 버린다.

물론 마지막에는 돌아온 어미염소가 아기염소를 잡아먹고 잠자고 있는 늑대의 배를 째고 모두 구하고, 대신 돌맹이로 채워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여야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국제의료사업지원법을 상정하기로 전격 합의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 동화가 생각났다.

정부는 이들 법안에서 의료를 서비스업으로 규정하며  막대한 부를 창출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데 꼭 필요한 법안이라고 주장한다. 정부는 또한 이명박 대통령 시절부터 줄기차게 추진하고 있는 이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동화에서 나오는 늑대마냥  탁한 목소리와 시커먼 발톱은 숨긴 채 아기염소들에게 문을 열라고 한다.

▲ 이미지 출처: 보건복지부가 '의료세계화'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제작한 샌드아트 동영상 중에서 갈무리. https://www.youtube.com/watch?v=ZlY8ZyIdAMQ

그간 보건의료계와 시민단체, 야당은 그 속내를 알고 근근히 문을 열지 않고 버텨왔다. 그러나 몇가지 조항을 고치거나 삭제하는 것은 늑대의 목소리와 발톱을 숨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늑대가 집안에 들어오는 순간(법이 통과되는 순간) 아기염소는 모두 잡아먹히게 될 것이고, 그러지 않아도 휘청거리는 대한민국 의료는 붕괴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의료의 본질은 아픈 사람을 안 아프게 하는 것이고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환자를 잘 치료하고 살릴 수 있는 방법과 제도이지 의료를 통해 돈벌이를 하는게 아니다.

환자를 치료하고 국민을 건강하게 하기 위한 목적을 잘 달성한 이후에 그것을 통한 돈벌이를 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목적과 수단이 완전히 바뀐 정책을 추진하려 한다. 돈을 벌기위해 의료의 본질이 왜곡되고 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것 쯤은 감내해야 할 희생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시커먼 발톱을 숨기고 문을 열라고 하는 늑대를 절대 집안으로 들여서는 안된다.

지금은 아닌것 같지만 결국 의료의 상업화를 포장한 밀가루 뭍힌 늑대의 발에 속아서는 안된다. 이러한 의료의 상업화가 환자 뿐 아니라 의사에게도 지옥의 문이 열리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민간보험업자가 외국 환자를 유치하고 그 환자의 사후 추적을 위해 원격 의료든 모니터링이든 시행한다면 결국 의료기관은 보험업자에게 종속 될 수 밖에 없다.

그들을 통해 환자가 오고 그들이 치료비를 내는 구조에서 의료기관이나 의사는 영원한 '을' 이 되고 환자는 그야말로 '호갱님'이 되는 것이다. '해리슨'이나 '세실' 같은 의학교과서에 나오는 치료방법 보다는 그들이 원하는 경제적인 진료를 할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결국 아픈 사람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반드시 막아야 한다. 늑대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동화에서처럼 다 잡아먹히고 난 후 다시 기회가 있어 아기염소를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송형곤은?

성균관대 의과대학 삼성서울병원 응급의학과장, 제37대 대한의사협회 집행부에서 대변인을 역임했다. 현재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 응급의학센터장을 맡고 있다.

라포르시안  webmaster@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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