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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의료세계화는 ‘혼이 비정상’…진실한 정책만 선택해야
  • 김상기 편집국 부국장
  • 승인 2015.11.19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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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르시안]  '의료관광'과 '의료수출'을 노래를 부르더니 기어코 관련 법안을 처리할 모양인가 보다. 의료관광과 의료수출 활성화를 지원하는 법적 근거를 담은 '국제의료사업지원법' 제정안을 처리하기로 여야 지도부가 합의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여당이 목을 매는 경제활성화 법안(정말로 경제활성화가 될 지는 모르지만)을 처리하는 대신 야당이 요구한 일부 법안을 묶어서 처리하는 빅딜을 한 것 같다. 지금까지 의료영리화 우려 등을 제기하며 당론으로 반대해왔던 야당이 돌연 입장을 바꾼 이유는 모르겠다. 당리당략에 따라 원칙을 저버린 게 한두 번 아니니 그러려니 한다.

이름도 거창한 국제의료사업지원법안이 대체 무슨 내용인가. 지난해 10월 여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 법안은 외국인 환자 유치와 국내 의료의 해외진출 활성화를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의 주요 내용은 ▲보험회사의 외국인 환자 유치 허용 ▲공항 등 외국어 표기 의료광고 허용 ▲해외 의료인 또는 환자에게 원격의료 허용 ▲국가는 국제의료사업 지원을 위해 유치사업자 또는 진출기관에 금융, 세제, 재정 지원 등이다. 이를 통해서 해외환자를 적극 유치해 외화 벌이를 하고, 의료서비스와 의료시스템을 수출해 글로벌 헬스케어 시장을 선점하자는 게 법 제정의 취지다.

이 법안이 추구하는 목적이나 명분은 그럴듯하다.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다른 의도가 숨어 있어 보인다. 의료관광산업육성은 앞서 이명박 정부 때부터 본격화됐다. MB정부는 영리병원 허용과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등의 의료영리화 정책을 밀어붙였다.  이를 두고 의료민영화 논란이 거세지자 다른 대안으로 해외환자 유치를 통한 의료관광산업 활성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동시에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 영리병원 허용을 함께 추진했다. 영리병원 허용과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정책에 대한 거센 반대를 피하기 위한 우회수단으로 선택한 게 바로 의료관광산업 육성이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그 기조가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다.

현재 전국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의료관광과 해외환자 유치로 요란법석이다. 경쟁적으로 의료관광 활성화 지원계획을 수립하느라 난리다. 통합의료관광 허브도시로 만들겠다느니, 의료관광복합단지와 의료관광특구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어지럽게 쏟아낸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올해 외국인 환자 30만명을 유치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속 알맹이를 들여다보면 과연 해외환자 유치를 통한 의료관광산업 육성이 미래성장동력으로 키울 만큼 경쟁력이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다. 오히려 정부의 '기승전-의료관광' 정책 탓에 해외환자 유치 경쟁이 과열되면서 불법브로커, 잇따른 외국인 환자 의료사고, 대리수술 등의 문제가 불거져 한국의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만 높아졌다.

게다가 중국도 국가 차원에서 보건의료 시스템을 재정비하고 의료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중국인이 마냥 한국을 찾아 의료관광을 할 것이라고 보나. 이미 여러 산업 분야에서 '대륙의 실수'가 아니라 '대륙의 실력'이 드러나고 있다. 머지않아 한국을 찾는 중국인 의료관광객이 급감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보험회사의 해외환자 유치를 허용하고, 외국인을 대상으로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것이 어떤 효과를 낼지 장담할 수 없다. 오히려 민간보험사가 해외환자 유치에 나설 경우 과다 경쟁을 유발해 기존 의료체계를 왜곡시킬 가능성이 높다. 민간보험사와 병원의 직접계약이 허용되면서 건강보험제도의 근간을 흔들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특히 외국인 환자 유치가 내국인 환자의 의료접근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검토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의료 한류', 혹은 '의료세계화'에 대한 집착과 환상이 지나치다 못해 병적이다. 정부와 여당, 대형병원과 관련 업계에서는 무작정 해외환자 유치를 위한 관련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한다. 그전에 한 번 따져보자. 의료관광산업 유치를 위해 국제의료사업지원법 제정보다 더 중요한 게 무엇인지. 지난 메르스 사태를 떠올려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당시 메르스 감염 우려로 중국 등지의 의료관광객 예약 취소가 잇따랐다. 호황을 누리던 강남의 미용성형 병의원도 외국인 환자의 발길이 뚝 끊길 정도였다. 2개월 가까이 지속된 메르스 사태로 인해 병의원의 직간적접 경영 손실과 의료관광객 방한 취소, 의료수출 지연, 제약산업 경기 위축 등으로 인한 피해 규모가 1조원이 훨씬 넘을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복지부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4년까지 해외환자 진료수입이 총 1조5천억원이라고 한다. 2개월의 메르스 사태가 6년 간의 의료관광 수입에 버금가는 손실을 안겨준 셈이다.

메르스 사태를 겪고 난 후 정부는 국가방역체계를 개편하겠다고 발표했다. 신종 감염병의 국내 유입을 차단하고, 유입에 따른 즉각 대응체계를 구축하고, 감염병 환자 격리시설과 전문치료체계 구축, 역학조사관 확충 등의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현재까지 제대로 추진된 게 없는 것 같다. 얼마전 80번 메르스 확진 확자가 음성 판정을 받은 지 11일 만에 재발해 병원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60명이 넘는 격리대상자가 발생했다. 지난 5월 말 메르스 사태 초기와 비슷한 상황이 재연됐다. 한 의료전문가는 "80번 환자의 사례는 메르스 사태 이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명백한 증거"라고 단언했다. 실제로 지금도 대형병원의 응급실은 환자들로 붐비고, 감염관리 수가는 너무 열악해 병원들이 감염관리에 신경쓸 여력이 없다. 내년에 역학조사관을 확충하겠다고 해놓고 관련 예산도 확보하지 못했다. 국가방역체계 개편 방안이 이대로 흐지부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만일 메르스 사태와 같은 감염병 유행이 또다시 발생한다면 한국의료의 대외 신뢰도는 땅에 떨어질 게 뻔하다. 해외환자 유치는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중동 국가에 선진 의료기술을 수출한다고 자랑해 놓고 오히려 그들로부터 메르스 유행에 대응한 경험을 전수받는 상황을 또 겪어야 한다. 한국의 의료시스템부터 제대로 만드는 게 먼저다. 그렇지 않으면 의료관광이니 의료수출이니 하는게 사막의 신기루와 같다는 걸 중동에서 온 메르스 바이러스가 알려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개월 전 일을 잊어버리고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려고 한다면 그건 '혼이 비정상'인 거다. '진실한 정책'만 선택하기를 바란다.

김상기 편집국 부국장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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