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소득수준 따른 건강불평등 고착화…“보건의료체계 공공성 유지가 건강 형평성 확보에 중요한 의미”

[라포르시안]  통계청이 작년 말 발표한 '2013년 생명표'에 따르면 2013년에 태어난 출생아의 기대수명은 81.9년이었다. 성별로는 남자가 78.5년, 여자가 85.1년으로 나타났다. 이런 기대수명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보다 남자는 1.0년, 여자는 2.2년 더 높은 수준이다.

그런데 기대수명이 사는 동네와 소득 수준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난다는 조사결과가 계속 나오고 있다. 대도시에 사느냐, 혹은 지역 군단위 지역에 사느냐에 따라 최대 15세까지 기대여명의 차이가 났다.

건강을 지키기 위한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소할 수 없는 의료보장과 보건의료 접근성의 차이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별 의료자원의 공급 불균형, 소득 불평등에 따른 의료이용의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지역 및 소득수준별 '건강불평등'의 고착화를 불러오고 있다는 의미다.

최근에 나온 각종 건강불평등과 의료이용 양극화에 관한 연구자료를 통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살펴봤다.  

■ 대도시와 농어촌 지역의 사망률이 크게 다르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최근 발간한 '2015 시·도별 지역보건취약지역 보고서'를 보면 사는 지역에 따라 보건의료 수준의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보고서는 전국 시도와 지역유형별(대도시, 중소도시, 농어촌), 세부 지표별 점수 비교를 통해 지역간의 보건의료 수준 격차를 시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건강증진개발원이 개발한 '지역보건취약지수'는 지역의 발전 잠재력과 재정 여건 등을 평가한 '지역낙후성 점수'와 보건의료 수요 대비 보건자원(의료기관, 의료인력)에의 접근성, 건강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후 수치화 한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을 기준으로 지역보건취약지수(평균 50점, 평균보다 낮은수록 보건의료 수준이 높다는 의미)는 전남이 56.7점으로 가장 높아 지역내 보건의료 인프라와 건강수준 등이 가장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전북 54.8점, 경북 54.7점, 경남 54.1점, 강원 53.8점, 충북 53.5점, 충남 52.4점, 세종 52.1점 등의 순이었다.

반면 서울은 39.6점으로 지역보건취약지수가 다른 지자체와 비교해 월등히 낮았다. 즉, 지자체의 재정 여건이나 보건자원이 집중돼 있기 때문에 지역의 보건의료 인프라와 건강수준이 가장 낫다는 의미다.

대구(45.2점)와 울산(46.0점), 경기·대전(각각 46.2점), 광주(46.9점), 인천(47.2점), 부산(47.4점) 등의 대도시 지역도 지역보건취약지수가 평균보다 낮은 것으로 평가됐다.  

전국에서 지역보건취약지수가 상위 25%에 드는 군단위 지역은 경상도와 전남도의 군단위 지역에 집중해 있었다. 지자체별로 지역보건취약지수가 상위 25% 이내에 포함되는 보건의료 취약지역을 보면 전남이 16개 군으로 가장 많았고, 경북과 경남이 각각 10개, 전남 7개, 강원과 충북 각각 6개 등의 순이었다.

이렇게 지역별로 보건의료 수준의 차이가 나타나는 가장 큰 요인은 인구 1만명당 일차진료 의사수와 표준화 사망률이었다.

보고서를 보면 인구 1만명당 일차진료 의사수는 전국 평균이 15.9명으로, 지역유형별로는 대도시가 25.8명, 중소도시 12.8명, 농어촌 10.7명으로 2배 이상 격차가 났다. 

표준화 사망률(인구 10만명당)의 경우 전국 평균은 417.5명으로, 대도시는 388.0명, 중소도시는 408.6명, 농어촌은 449.8명으로 집계됐다.

대도시 안에서도 자치구별로 보건의료 수준의 격차가 벌어졌다. 서울에서 인구 1만명당 일차진료의사 수는 가장 낮은 관악구(8.4명)와 가장 높은 종로구(111.4명) 간에 약 13배 차이가 났다.

표준화 사망률도 가장 낮은 강남구(277.3명), 서초구(279.8명)와 비교해 가장 높은 중랑구(396.4명), 금천구(395.1명)는 100명 이상 차이가 났다.

■ 서울시 서초구 고소득층, 강원도 화천군 저소득층보다 15.2년 더 산다

소득 지역보건취약지수의 차이는 기대수명의 격차로 이어진다. 어느 지역에서, 어느 정도의 소득 수준이냐에 따라 기대여명이 10년 이상 차이가 난다는 연구결과가 이를 방증한다.  

서울대 의대 강영호 교수는 2009년부터 2014년까지 건강보험 가입자 및 의료급여 수급자의 보험료 자료 약 3억원 건과 146만명의 사망신고자료를 이용해 우리나라 광역시·도와 시·군·구의 소득수준별 기대여명 차이를 분석했다.

그 결과, 전국의 모든 시군구 지역에서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오래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소득수준이 높은 상위 20%가 소득 하위 20%에 비해 평균 6.1년 더 오래 사는 것으로 분석됐다.  

시군구별로는 강원도 화천군에서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의 기대여명 차이가 12.0세로 가장 큰 차이를 보였다. 반면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는 소득 5분위 간 차이가 1.8세로 가장 작았다.

광역시도별로는 강원도와 전남도가 소득 5분위 간 기대여명 격차가 8.1세, 7.9세로 큰 반면, 울산시가 4.0세로 가장 작았다. 서울시와 경기도는 모두 5.2세의 차이를 보였다.

소득수준에 따른 기대여명이 가장 낮은 지역과 가장 높은 지역의 격차는 놀랄 만큼 컸다.

강원도 화천군의 하위 소득 20%의 출생시 기대여명은 71.0세로 전국적으로 가장 낮은 반면, 서울시 서초구 상위 소득 20%의 출생시 기대여명은 86.2세로 가장 높았다. 그 차이는 15.2세이었다.

주목할 대목은 평균 기대여명이 낮은 지역이 소득 수준에 따른 기대여명 격차가 더 크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특히 전국 252개 시·군·구 중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 출생 시 기대여명 격차는 광역시나 중소 도시보다 농촌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군 지역에서 더 큰 양상이었다.

이는 건강증진개발원의 '지역보건취약지수'에서 도시 지역보다 농어촌의 표준화 사망률이 훨씬 높은 것과 연계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농어촌 지역의 열악한 보건의료 인프라도 기대여명 격차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추측된다.

연구를 진행한 강영호 교수는 "이번 연구결과는 우리 사회의 건강 불평등의 전반적 양상을 보여 준다"며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정부 차원에서도 건강 불평등 문제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뇌졸중 사망률' 서울시 서초구보다 경남 고성군이 3배 더 높다

통계청의 '2014년 사망원인통계' 자료에 따르면 뇌혈관질환은 지난해 한국 사망원인 3위였다. 지난해 뇌졸중 등의 뇌혈관질환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2만4,500여명에 달했다.

뇌졸중에 의한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증상이 발생했을 초기 '골든타임"(3시간)' 안에 혈전용해제를 투여해 막힌 혈관을 뚫거나 터진 혈관을 막는 응급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특정 지역에 뇌졸중 환자에 대해서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의료기관이 있느냐 없느냐가 사망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런데 지역별로 뇌졸중에 의한 사망률 차이가 크게 났다. 뇌졸중에 의한 사망률이 가장 낮은 곳과 가장 높은 곳을 비교했을 때 그 격차가 3배에 달했다. 대한뇌졸중학회가 2011~2013년 사이 전국 251개 지자체의 평균 뇌졸중 사망률을 분석한 결과다.

뇌졸중학회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전국 17개 광역 자치단체 중 인구 10만명당 평균 뇌졸중 사망률이 가장 낮은 곳은 제주도(26.7명), 서울(28.7명), 충남(34.8명) 등의 순이었다. 가장 높은 곳은 울산(44.3명), 전북(41.1명), 세종(41.0명) 등의 순이었다. 가장 낮은 제주와 가장 높은 울산의 사망률 격차는 1.6배에 달했다.

범위를 보다 좁혀 시·군·구간 뇌졸중 사망률 격차를 보면 훨씬 더 큰 차이가 났다. 인구 10만명당 뇌졸중 사망률이 낮은 곳은 서울시 서초구(19.4명), 경기도 과천시(20.2명), 서울 강남구(21.9명) 등의 순이었다. 사망률이 가장 높은 지역은 경남 고성군(57명), 경기 동두천시(53.3명), 울산 북구(52.8명)였다.

뇌졸중 사망률이 가장 낮은 서초구와 가장 높은 경남 고성군은 2.9배의 격차가 났다. 학회는 지역에 따라 뇌졸중 사망률의 차이가 크게 나는 이유로 뇌졸중 전문치료실(Stroke Unit) 설치 여부를 지목했다.

학회가 전국 140개 병원을 대상으로 뇌졸중 전문치료실 설치율을 분석한 결과, 62개 병원(44.6%)에서 전문치료실을 운영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그런데 뇌졸중 전문치료실을 운영하는 병원 중 58%(36개)가 수도권에 몰려있었다.

인구 100만명당 뇌졸중 전문치료실 설치율을 보면 서울이 2.01개 이상으로 가장 높았다. 그러나 울산과 경북, 충남은 0~0.50개로 지역 내에 뇌졸중 전문치료실을 갖춘 병원이 거의 없었다.

학회는 "뇌졸중 전문치료실의 지역적 불균형은 지역 간 의료서비스의 격차를 유발하고 궁극적으로는 환자의 치료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적극적인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어떻게 해야 하나?

지역이나 소득별 기대수명이나 사망률 등의 격차가 발생하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단순히 보건의료 자원의 공급 불균형과 그에 따른 의료접근성 문제, 의료보장제도의 취약성 등에만 초점을 맞추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건강불평등의 양상은 보다 광범위하고 복합적이다.

교육이나 소득수준, 지역별로 기대수명이나 사망률의 격차가 커지고, 심지어 건강불평등이 부모에서 자식 세대로 대물림될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구조화된 사회적 불평등이 몸을 통해서 건강불평등이란 방식으로 드러난 셈이다.

김창엽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소장(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과 김명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건강형평성연구센터장 등이 공동으로 펴낸 '한국의 건강 불평등'이란 책은 건강불평등을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보고, 사회적 연관성 속에서 이해될 때 비로서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건강불평등을 초래하는 근본 원인으로 소득 불평등과 빈곤, 비정규직 등 노동조건, 지역간 불평등 등에서 기인한다고 봤다. 좁게는 보건의료 불평등을 요인으로 건강보장제도의 한계, 취약한 공공보건의료, 민간 위주의 보건의료체계, 정치 권력의 불평등(조세와 복지의 불평등) 등을 곱았다.

건강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동안 건강불평등 해소를 목표로 보건의료 분야 등에서 정책적 개입이 거의 없었다고 꼬집었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건강불평등을 낳는 근본적인 원인(소득, 교육, 직업적 지위 등)에 대한 적극적인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며 "또한 보건의료 부문에서 공공 재원이 줄어들고 보건의료체계가 시장 메커니즘을 강화하게 되면 그 부작용이 차별적으로 경제적 약자에 미쳐 보건의료에 대한 접근성이 크게 훼손된다. 따라서 공공 재원을 확보하고 보건의료체계가 공공성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건강 형평성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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