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 최근 한 경제지에 기획재정부 출신의 방문규 보건복지부 차관이 기고한 글이 눈에 띄었다. '미국 원격의료가 주는 교훈'이라는 제목이 달렸다. 미국이 고령화 사회의 만성질환 관리, 부족한 의료인력과 이로 인한 의료접근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원격의료를 확대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미국내 보험회사들이 민간의료보험 가입자들에게 원격의료 서비스 제공을 확대할 것이라는 내용도 함께 소개했다. 방 차관은 "(우리나라도)현재의 의료접근성 문제 해결과 함께 고령화 등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원격의료 도입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미국과 한국의 의료시스템과 의료보장 제도의 차이를 무시하고 단순 비교한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 민간보험사들이 의료비 절감을 위한 수단으로 원격의료 확대를 추진하는 맥락을 무시하고 '미국을 보니 원격의료 도입은 필수'라고 주장하는 건 복지부 차관이 그만큼 보건의료에 대해서 무지하다는 증거다.

게다가 "미국과 같이 우리도 발전된 IT를 의료에 활용해 보건의료체계의 형평성을 확보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는 대목은 기가 막힌다. 요즘 복지부 관료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기승전 원격의료'의 완결판이다.

복지부는 원격의료가 제도화되면 의료접근성이 떨어지는 산간 오벽지 주민,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장애인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고 홍보한다. 복지부 장관은 '원격의료는 공공의료'라는 말도 서슴지 않고 있다. 이걸로 부족했던지 복지부는 세계적 고령화 추세에 따라 신성장동력으로 떠오른 고령친화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그 일환으로 원격의료 활성화를 제시했다. 원격의료가 활성화 되면 새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란 기대 효과도 빠지지 않는다. 원격의료는 의료접근성을 높이고, 공공의료를 강화하고, 고령화에 대비하고, 새 일자리까지 창출하는 '만능 정책'이다.

의료접근성에 있어서 진짜 문제는 지역간 의료자원의 공급 불균형과 지나치게 민간에 의존하는 의료공급시스템이다. 이런 문제를 외면하고 '원격의료를 도입하면 다 해결된다'는 식이다. 그래서 원격의료 정책 홍보는 시장통에서 '만병통치약' 파는 장사꾼의 너스레 같다. 효과 따위 있든지 없든지 간에 막 떠벌려 늘어놓는 말의 성찬이다. 

헬스케어 사업을 추진하는 기업들도 다를 바 없다. 원격의료를 비롯한 디지털 헬스케어가 구현되면 '누구나'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의료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것처럼 떠든다. 의료형평성이 향상되고 환자의 선택권이 강화될 것처럼 온통 장밋빛 미래다. 그러나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비용 부담 문제는 말하지 않는다. 누구나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 것처럼 교묘하게 흘린다.

원격의료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디지털 의료소외계층의 등장은 필연적이다. 원격의료 관련 기술이 더 발달하고, 관련 장비의 성능이 더욱 개선되면 비용부담은 더 커질 게 분명하다. 지금까지 의료시장의 속성이 그렇다. 굳이 그걸 따지지 않더라도 원격의료와 같은 디지털 헬스케어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보다 많은 기회와 편익을 제공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건 그만큼 시장성이 높다는 기대감이다. 그 기대감이란 게 바로 수익성이다.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를 구매하는 의료소비자의 추가적인 비용 부담 없이는 불가능하다. 현재의 의료소외계층이 그대로 디지털 헬스케어의 소외계층으로 옮겨갈 건 뻔하다. 

뒤집어 생각하면, 원격의료가 의료접근성을 높이고, 의료형평성을 향상시키고, 공공의료 역할까지 할거라는 주장이 맞다면 시장성이 없다는 말이다. 그동안 우리는 숱하게 봐 왔다. 의료분야에서 돈이 되는 사업은 의료자원의 쏠림현상을 초래해 의료접근성 문제를 야기하고, 높은 비용부담으로 의료형평성을 악화시키고, 공공이 아닌 민간의료가 주도한다는 것을. 지금까지 원격의료 도입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정부와 산업계에서 나온 주장이 굉장히 모순됐음을 방증한다.

분만취약지에 거주하는 임산부가 수십 km 떨어진 분만병원을 찾아 직접 운전을 하고 가다가 진통이 심해지자 119구급대에 긴급도움을 요청해 출동한 구급차 안에서 분만을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분만병원은 점점 사라지고, 누군가에겐 '목숨 걸고 분만하는' 상황이 현실이 됐다. 의사나 간호사 인력을 구하지 못한 지방 중소병원에서 응급실을 폐쇄하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경남의 한 군단위 지역에서는 지역 내에서 유일하게 24시간 응급실을 운영하던 병원이 간호사를 구하지 못해 응급실을 폐쇄해야 할 상황에 처하자 지자체가 보건소 소속의 간호인력을 파견할 정도다. 지방에서는 이런 의료취약지가 계속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산간벽지와 섬에만 의료취약지가 있다고 생각하면 굉장한 착각이다.

복지부 차관이 사례를 든 것처럼 미국은 물론 캐나다, 노르웨이, 호주 등의 국가가 원격의료를 도입하는 것은 광활한 국토에 무의촌 지역이 넓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사정이 다르다. 지금의 의료접근성 문제는 효율적인 의료자원 배치를 어렵게 만드는 건강보험제도 상의 문제와 공공의료 인프라 부족에서 발생한 것이다. 의사가 환자를 제대로 대면진료할 수 있는 의료환경부터 만들어야 한다. 원격의료는 그 다음 문제다. 밑도 끝도 없는 '기승전 원격의료' 타령은 그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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