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뷰] 지역간 의료자원 불균형 심화로 원정진료 고착화…죽음까지 차별할 수도

[라포르시안]  지금부터 140년 뒤에 생겨날 우주정거장 '엘리시움'에는 가난과 전쟁이 없다. 그리고 질병이 없다. 엘리시움에는 어떤 질병이든 몇 초만에 완치할 수 있는 기적의 의료기기가 있다.

엘리시움에서 내려다 보이는 지구는 폭발적인 인구 증가 속에서 환경오염과 자원고갈로 황폐해졌다. 지구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의료 혜택에서도 철저하게 소외된 채 질병으로 인한 고통 속에 방치된다. 기적의 의료기기는 엘리시움에만 있다.

지난 2013년 국내에도 개봉한 SF영화 '엘리시움'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드는 의문 하나. 영화 속 시대배경을 감안할 때, 어떤 병이든 낫게 하는 기적의 의료기기를 상용화 했다면 지구 거주자들에게도 의료혜택을 제공할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러지 않았느냐는 거다. 결국 그 문제 때문에 엘리시움이 붕괴를 했음에도 말이다.  

엘리시움이란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의식 중 하나에는 양극화의 폐해가 있다고 한다. 엘리시움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위해 의료를 비롯한 모든 자원의 쏠림현상. 의료자원 불균형의 문제다. 

영화 속 '엘리시움'처럼 서울로 모든 의료자원이 쏠리고 있다. 이미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환자 쏠림이 너무 심하다. KTX를 타고 수도권 대형병원을 찾는 환자가 연간 수백만명에 달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최근 발간한 '2014년 지역별 의료이용 통계연보'는 서울에 얼마나 많은 의료자원이 집중돼 있는가를 보여준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5이 몰려있는 대도시에 의료자원이 몰려있는 건 당연한 현상이다. 문제는 그 비율과 다른 지역과의 의료자원 공급 균형에 관한 것이다. 

통계연보에는 '시도별 의료보장인구 10만 명당 의료인력 현황' 자료가 수록돼 있다.

현황을 보면 서울의 인구 10만 명당 의사 수는 270명으로 전국 평균(180명)보다 훨씬 높았다. 경북(인구 10만 명당 127명)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더 많았다.

 

다른 항목보다 눈여겨 볼 대목은 인구 10만 명당 인턴과 레지던트 비율이었다.

서울의 인구 10만 명당 인턴은 12명, 레지던트는 54명이었다. 부산(인턴 7명, 레지던트 26명)이나 대구(인턴 9명, 레지던트 33명) 등의 도시와 비교해도 2배 정도 높은 비율이다.

충남·북, 경남·북, 전남·북 등의 지역은 비교조차 힘든 수준이다. 전남과 경북은 아예 인구 10만 명당 인턴 인원이 0명이었고, 다른 지역도 1~3명에 그쳤다.

인구10만 명당 레지던트 인원도 경북은 3명, 전남은 6명, 경남은 9명, 충남·충북은 각각 12명 등이었다.

국내 대형병원의 의료서비스 운영시스템을 감안할 때 이들 지역에서 인턴과 레지던트 인력이 적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중증질환자를 대상으로 난이도가 높은 의료행위를 수행하고, 의료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수련병원이 적거나 그 역할이나 기능히 축소되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외과나 내과 등의 진료과는 전공의 인력부족이 의료서비스 질적 문제는 물론 응급환자의 생사를 가를 수도 있다.

급성심근경색 환자가 가족의 심폐소생술로 통증에 반응이 있는 상태로 병원에 후송됐지만 흉부외과 의료진이 없어 결국 목숨을 잃거나, 응급실에 내과 전공의가 없어서 흉통을 호소하는 환자가 찾아와도 다른 병원으로 돌려보내는 지방의 대학병원이 생겨나고 있다. 

의료자원이 수도권, 특시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쏠리면서 지방의 의료서비스 공급체계에 생긴 구멍이 분만과 응급의료에 이어 다른 영역으로 점점 커지는 상황이다.

서울에 인구가 집중된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짧은 시간에 많은 환자를 진료하는 '박리다매'식 의료공급 행태를 통해서만 생존할 수 있는 지금의 의료수가 체계가 초래한 현상이다.

병상 확충을 통해 몸집을 키우고 시설을 확충해야 환자를 유치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게 되고, 더 많은 환자를 진료해야 커진 몸집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다. 병원도 외형 확대에 계속 투자해야 생존할 수 있고, 환자도 더 많은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아야 하는 시스템이다.

박리다매식 진료가 아니라 적정진료를 통해 병원이 생존할 수 있는 적정 의료수가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빅5' 병원 방문하는 지방환자 연간 100만명…진료비만 2조 지출그러나 보니 지방의 환자들은 계속 서울의 대형병원을 찾는다. 특히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빅5' 쏠림현상이 심하다.

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지역 의료기관을 찾은 환자 중 33.6%는 타지역에서 원정진료를 받기 위해 유입된 환자였다.

지방환자가 서울지역 의료기관에서 지출한 의료비만 4조8,576억원에 달했다. 이 중 상당수는 아마도 '빅5' 병원에 지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작년에 건보공단이 발표한 '2013년 지역별 의료이용통계' 자료에 빅5 병원의 2013년 한해 동안 총 진료매출은  2조8,447억원(진료인원 214만명)명에 달했고, 이 중에서 1조7,408억원은 타지역에서 유입된 환자들이 지출한 비용이었다.

빅5 병원을 찾는 환자의 절반 이상이 지방에서 원정진료를 위해 방문했다는 의미다. 그 수가 연간 100만명이 넘는다.

 

의료자원 불균형은 삶과 죽음을 가르는 문제 이런 통계는 사는 곳에 따라 의료이용의 질이 달라져 삶과 죽음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의료전달체계 붕괴가 계속 이어지고, 의료인력 수급 불균형이 심화된다면 이런 상황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지역간 의료자원의 공급 불균형과 의료서비스 이용의 양극화가 고착화 된다는 의미다. 누군가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쓰러졌다고 가정하자. 다행히 골든타임 이내에 막힌 혈관을 뚫는 시술이 가능한 의료자원이 확보된 지역이었면 무사히 시술을 받고 다른 장애 없이 계속 생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렇지 않은 경우였다면?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쓰러졌는데 골든타임 이내에 관상동맥 중재술 등이 가능한 의료자원을 갖추지 못한 지역이었다면? 목숨을 잃거나 생존하더라도 급격히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장애를 안고 살아갈 수도 있다.

의료자원의 지역간 불균형은 수많은 누군가에겐 삶과 죽음을 갈라놓을 수 있는 중대한 문제이다.

지방환자한테 서울의 대형병원이 그 접근성이나 의료서비스의 질적 측면에서 '엘리시움' 화(化) 하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 같다. 지역간 의료자원 불균형이 삶과 죽음의 차별을 조장하는 걸 내버려둬선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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