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경수(국회의원 보좌관)

한국의 정치 환경에서 '로비(Lobby)'라는 단어를 공공연하게 꺼내는 것 자체가 금기로 여겨질 만큼 이 단어에 대해 사회적으로 부정적 어감이 강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을 들여다보면 로비는 현대 민주주의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그 이유는 첫째, 대의제를 통해 당선된 정치인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민의를 제대로 반영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직접 민주주의적인 요소가 가미되어야 한다는 측면 때문이고, 둘째, 정치인들은 특정 분야 종사자들이나 전문가 단체들에 비해 정보력이나 전문성이 부족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칫 탁상공론에 빠져 그릇된 정책판단을 하기 쉽기 때문이다.

따라서 로비가 상당히 양성화 되어 있는 서구에서는 로비가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이자 국민의 중요한 정치 참여 수단이며, 사회의 통합과 국정운영의 안정을 위해 그 필요성이 인정된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 정치 선진국들이 많은 유럽의 경우 전문로비사무소 1만4,000개 정도 운영되고 있으며 미국 의회에서 활동 중인 전일제 로비스트만 약 1만7천명에 달하는 것도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보건의료 관련 단체들이 벌이는 로비 활동은 이러한 긍정적 측면을 충분히 살리면서 효과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보건의료인 단체들 특유의 전문성을 발휘해 그 전문적 지식이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정치인들과 사전적이고 지속적으로 교류를 유지하기 보다는, 사건이 터지고 난 후에야 회원들의 눈치를 보듯이 형식적이고 사후적으로 대처하기 일쑤다.

그 방법 역시 아마추어적인 경우가 많다. 특히 보건의료 분야의 정보들은 전문적인 경우가 많아 비전문가인 정치인들을 이해시키고 설명시키려는 노력이 많이 필요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공문서 한 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경우도 많이 접한다. 과연 진정으로 회원들의 권익을 대변하기 위한 것인지, 그저 책임을 피하기 위한 생색내기인지 의문스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과거와 같이 향응을 제공하고 후원금 좀 안겨주면 만사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던 시대는 끝났다. 많은 정치인들이 본인의 정치적 성과를 극대화 하기 위한 전문적인 정보와 단체들의 풍부한 인적 인프라에 목말라 하고 있다. 여론의 주목을 받고 조직적인 선거운동을 통해 재선에 도전해야 하는 정치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향응이나 불법 자금이 아니라 바로 단체들이 가진 전문성과 조직력이다. 이러한 부분을 채워주는 것이 민주주의의 정신에도 부합할뿐더러 로비의 효과 역시 신뢰할 만 하다. 이것이야 말로 제대로 된 로비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 제대로 된 로비가 갖춰야 할 조건들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이 지침서를 내놓았지만 이 가운데 우리 현실에 비춰볼 때 중요하다고 보여지는 것들을 세 가지 정도만 제시해 보려고 한다.

첫째, 정치인들이 필요로 하는 전문적인 정보를 축적하여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회의원이나 보좌관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맡은 분야가 상당히 광범위하기 때문에 전문성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항상 전문적인 정보에 목말라 하고 있다. 따라서 많은 현장의 목소리를 알고 있고 전문가들로 구성된 단체가 이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축적하고 이를 제공하는 것이야 말로 중요한 로비의 수단인 동시에 민주주의의 발전에도 기여한다. 단체의 구성원들이 처해 있는 불합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입법안도 좋고 언론에서 보도될 수 있는 정보들도 괜찮다. 우리나라의 많은 보건의료단체들이 하듯이 우편이나 팩스 등으로 가치 있는 정보를 여러 정치인들에게 무작위 배포하는 식의 활동은 무의미하다.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이름을 건 성과와 언론보도이기 때문에 모두에게 공개된 정보에 대해 정치인은 거의 관심이 없다.

둘째, 현대 로비의 대세는 ‘풀뿌리 로비’이다. 풀뿌리 로비란 특정 이슈에 대해 이해관계가 잇는 단체의 구성원이나 다른 일반 국민들을 개입시켜 단체의 공공정책목표를 지지하도록 공직자들을 설득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인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재선이라는 관점에서, 다수의 유권자들이 직접 나서서 언론플레이, 시위, 전화, SNS, 우편 및 이메일 등 수단으로 떳떳하게 정치적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정신에 부합하고 그 효과도 강력하다.

셋째, 지속적으로 공직자의 업무 성과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 향응이나 후원금 등은 일시적이고 단기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그 수단이 떳떳하지 못한 만큼 공직자 자신도 그러한 로비스트들을 계속 만나는 것이 꺼려지고 불편하게 된다. 그러나 정정당당하게 정책과 관련한 전문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업무에 도움을 주는 로비스트들을 만나는 것을 꺼릴 이유가 없으므로 관계가 오래 지속되기 쉽다. 현장에서 보좌관들이 가장 꺼리는 민원인들이 바로 공무에 도움이 되거나 흥미로운 정보 없이 친분이나 정보 수집 등을 목적으로 무작정 찾아 밥이나 먹자는 식의 사람들이다. 정보를 습득하고 인맥을 확장하는데 서로 도움을 주고 이로 인해 업무 성과에 상호 기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

아직 국내에서는 정상적으로 로비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제도적 제약도 있고 음성화와 특정단체들의 참여 독점이라는 부작용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첨예할뿐더러 매우 전문적인 보건의료분야에서 앞으로 관련 단체들의 활동은 점점 더 정책 결정 과정에서 더 중요하게 역할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각 보건의료 단체들 역시 과거의 구태의연하고 형식적인 활동에서 벗어나 보다 전문적이고 떳떳한 로비 역량을 확보하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하게 될 것이다. 이는 회원들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측면 뿐 아니라 정책결정의 민주성과 전문성 향상이라는 공익에도 기여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전경수는? 고려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보건학석사, 서울시립대에서 행정학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의료전문지 메디게이트뉴스 기자와 고경화 국회의원 보좌관을 거쳐 현재 한나라당 이애주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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