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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의 현안브리핑] 의료기관을 범법자로 모는 건보공단
▲ 이재호 대한의사협회 의무이사

최근 제주도 서귀포에서 국민건보험공단 직원이 현지확인 과정에서 요양급여비용 환수를 위해 요양기관 대표자를 협박하거나 환수금액을 삭감해주겠다고 회유하는 내용의 녹취록이 공개됐다.

현행 보건복지부 요양기관 현지조사지침에 규정된 건강보험공단의 조사 의뢰기준 및 세부절차에 의하면 부당여부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공단의 자료제출 요구권은 국민건강보험법 제83조에 의거 진료내역통보, 수진자조회 및 내부종사자 공익신고 등을 통해 인지한 부당 건의 사실확인이 필요한 경우 해당 건에 대해 요구사유와 근거 등을 명시해 요양기관에게 서면으로 자료제출을 요구토록 규정하고 있다.

법제처는 건강보험공단의 요양기관 현지확인 권한에 대해 현지조사 권한은 없고, 서류확인만으로 부족할 경우 요양기관의 진료행위를 방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임의적인 협력을 전제로 제한적·부분적인 현지확인이 가능하다고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

이를 근거로 건강보험공단의 현지확인 업무범위는 공단에서 제한된 범위 내에서 의료기관의 협력을 전제로 부당여부에 대한 사실 확인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건강보험공단은 이를 무시한 채 지나친 월권행위를 통해 환수대상 기간과 금액을 임의로 산정하고 요양기관 대표자에게 서명을 강요하거나 서명하도록 회유하는 등 선량한 의료기관을 범법자로 몰아 의료계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조장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은 이같은 월권행위와 그에 따른 파문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무리한 현지확인 업무를 하루빨리 시정해야 할 것이며, 보건복지부와 감사원 등도 건강보험공단에 대한 지도감독을 강화해 불법적 월권행위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의사는 환자를 진료함에 있어서 오직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모든 지식과 진단 및 치료방법을 동원하여 최선의 진료를 제공해고 있다. 최선의 진료를 행하기 위해서는 최선의 의료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하지만 최근 제기되고 있는 일련의 제도들은 의사의 소신진료를 제한하고 의사와 환자의 위화감을 조성할 개연성이 크다.

의사의 진료영역에 대해서는 법관이 판결을 내리는 것처럼 권리를 침해하지 않고 최고로 존중해 주는 사회풍토가 조성돼 진정으로 국민의 건강권이 지켜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한편 18대 국회 막바지에 난데없이 만성질환 환자로 하여금 의사의 처방전을 재사용해 조제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소위 '처방전 리필제' 도입을 담은 약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바로 철회되는 황당한 사건이 있었다.

비록 법안이 철회되기는 했지만 처방전 리필제는 국민 건강권을 침해하고, 의사의 처방권을 무시한 채 의약분업의 기본원칙마저 부정하는 어처구니없는 처사일 뿐만 아니라 진료의 기본조차 몰각한 위험한 발상이다. 만성질환 환자라 할지라도 환자의 증상 변화·상태·복약 순응도 등에 따라 그에 맞는 적합한 처방이 이뤄져야 하는 것은 환자 진료의 기본이다.

처방전을 재사용하게 된다면 환자에 대한 의사의 지속적인 추적관리를 차단해 고령환자의 합병증 등 더 큰 위협을 사전에 방지할 기회를 박탈할 수 있다. 의사의 진단 없는 처방전의 재사용은 치료의 부적합성을 초래할 우려가 크며, 특히 개별증상에 대한 적합한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아 약화사고가 발생할 경우 이에 대한 책임소재가 불분명해해질 수 있다.

일반적인 처방전에 따른 투약으로 인해 환자에게 사고가 일어났을 경우의 책임은 주로 처방한 의사에게 있지만 리필된 처방전에 입각한 투약사고는 책임소재를 분명히 할 수 없다.국민의 편의를 위해 처방전 리필제 도입 법안 발의에 찬성한 국회의원들은 약국 외 판매의약품 도입을 위한 약사법 개정과 병의원에서 원스톱으로 약을 탈 수 있는 국민조제선택분업을 근본적 대안으로 추진해야 정책의 일관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010년 7월 한국리서치가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73%가 의료기관에서 의약품 조제를 받기를 원하는 것으로 조사됐는데, 진정으로 국민의 편의성을 생각한다면 '원내 조제'를 통해 그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처방전 리필제 도입을 주장하는 국회의원이나 약사단체에서는 근거로 외국의 실태를 내세우고 있다.

미국·캐나다 등 북미 지역과 이탈리아·덴마크·헝가리 등 유럽 일부 국가에서 처방전 리필제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으나 우리나라와 의료접근성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국가들과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에 불과하다.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은 의료비 부담이 크고 전문의 진료를 받기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처방전 리필제를 제한적으로 도입한 것인데, 우리나라처럼 의료 접근성이 뛰어난 나라에서 인위적으로 환자-의사 사이에 장막을 쳐야할 이유는 없다고 보여진다. 무엇보다 환자의 안전을 고려할 때 처방전 리필제는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만성질환자는 임상증상이나 합병증이 시시각각 달라지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복합상병을 갖고 있는 만성질환자를 진료할 때는 동반 질병도 반드시 함께 관찰해야 한다.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은 지속적으로 관찰하지 않을 경우 당뇨병성망막증·당뇨병성신증·당뇨병성말초신경염 등이 발생할 수 있고 최악의 경우 당뇨병성 고삼투성 혼수 등 치명적인 합병증에 노출될 수 있다.

처방전 리필제는 의약분업의 기본원칙을 부정할뿐 아니라, 의사의 처방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처사다.미흡한 복약지도 문제와 함께 불법 대체조제·임의조제·카운터 비약사 조제 등에 대해 근본 대책도 내놓지 않은 상황에서, 약국에서 만성질환자의 1차 진료까지 넘보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보여지는 바, 국민의 건강권을 외면하고 의약분업의 기본원칙마저 부정하는 약사법 개정안이 발의되는 일은 두 번 다시 없어야 하겠다.

이재호는?

1985년 한양대 의과대학 졸업2006년 전 제34대, 제36대 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2011년 의사협회 의료정책고위과정 간사2011년 대한의사협회 의무이사

라포르시안  webmaster@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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