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윤희(영화감독, 산업의학 전문의)

“이번 역은 사당역, 사당역입니다. 대장OO 전문병원 OO병원으로 가실 분은 OO번 출구로 나가시길 바랍니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방금, 지하철 방송에서 병원 광고가 흘러나왔나? 그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었던 광고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2010년 한참 다큐멘터리를 구상하고 있었던 때였다. 가만 생각해보니, 지하철 방송 광고까지 병원 광고가 나온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었다. 월드컵 전에만 해도 전혀 없었던 현상이었으니 말이다.

의료 광고는 2008년 전까지만 해도 구 의료법 46조 3항에 의해 규제가 가해졌었다. 그 당시 포지티브 리스트 방식으로 의사 이름과 의료기관 명 등 몇 가지만 포함시킨 광고만을 허용했었는데 이를 2005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으로 결정을 내리면서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물론 이에 발맞추어 의료광고사전심의제도가 시작되었으나, 실상 심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수많은 매체 광고들이 현재 SNS를 비롯 각종 인터넷 방송, 라디오, 홈페이지 등에서 이루어지고 있어 실상 제대로 된 관리나 규제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심의 이후 발행되는 의료광고 심의 필증에는 유효기간이 없는 것도 문제라 볼 수 있다.   

어쨌든, 이런 어려움들 속에서 의료광고가 꽃피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의료광고 시장의 규모에 대한 추산은 아직 정확히 이루어지지 않은 듯하다. 대략 2008년 기준으로 38조 원에 달하는 의료서비스 규모의 1%인 연간 3~4000억원으로 추산된 바 있다. 어찌됐든 많다. 외국에서 병원 광고는 거의 허용되지 않고 있는 점을 비교해서도 그렇다.(선진국 중 미국과 뉴질랜드만이 활발하게 광고를 허용하고 있는 국가들이다.)

홍보와 광고, 프로모션은 시장에서 상품을 선반 위에 놓는 데 필수적으로 따른다. 그게 바로 시장 기반의 경제를 가진 나라들에서 상품 교환을 하는 순차적인 방식인 것이다. 무작정 지엽적으로 의료광고만을 비판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하지만 2011년부터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는 지하철 벽면 전체를 다 차지하는 양악수술 전후 사진들이나 대형마트의 카트 레일 양 옆으로 끝없이 펼쳐져 있는 의료광고들의 모습은 분명 무언가 심하게 경쟁 속으로 일그러져 가고 있다는 것을 증빙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저 의사로서 지하철 플랫폼에 널린 수많은 핸드폰, 온라인 쿠폰, 보험과 같은 상품들의 전시 속에, 의료기관의 광고를 보는 것이 그다지 썩 기분 좋지는 않다는 것이다.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다. 민간 시장에 맡겨진 의료 현실 속에서 어쩔 수 없다. 필자 역시 의원을 경영했더라면, 어떡해서든 손님몰이를 하려고 머리를 쥐어짰을 것이다. 그런데 어쨌든 씁쓸하다. 의료가 이런 경쟁 속에 전시 상품으로 내몰려진 현실이. 소셜 네트워크라는 영화 속에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다. 청년 기업가 주커버그가 페이스북에 광고를 내냐 안 내냐를 결정할 때 단도직입적으로 광고를 거절한다. 왜냐? “because ads are not cool” 가오가 살지 않은 광고, 이것에 의존해야하는 대한민국 의사들, 10년 뒤에는 광고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밑도 끝도 없이 몽상가처럼 바라본다. 

송윤희는?

2001년 독립영화워크숍 34기 수료2004년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학사2008년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석사2009년 산업의학과 전문의2011년 다큐멘터리 하얀 정글 연출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