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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미의 라뽀&르뽀] 해고자 가족의 상처를 ‘와락’ 껴안은 정신과 의사

정혜신(정신과 전문의, 마인드프리즘 대표)


또 한명이 죽음을 맞았다. 벌써 19명 째이다. 2009년 4월부터 11월 10일 현재까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배우자 19명이 자살과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송경동 시인은 17번째 죽음을 접하고 “만약 어떤 사회적 전염병으로 17명이 죽어갔다면 전체 사회는 난리가 났을 것이다. 만약 어떤 흉악범에 의해 17명이 테러를 당했다면 온 나라가 뒤집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죽음은 건조하고 귀찮은 일상이 돼버렸다”라고 말했다. 맞다. 특정 사회적 사건과 결부된 집단적인 죽음의 행렬. 분명히 당국에서 역학조사에 나서고, 의료계에서도 사회 의학적 관점에서 관심을 쏟으며, 당장 해결에 나서야 할 사안이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왜 이들의 목숨은 이다지도 하찮은가?

이들의 죽음에 마음을 움직인 의사가 있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는 올해 초 14번째 죽음의 소식을 들었을 때, 더 이상 안타까움을 견딜 수가 없어서 빈소를 찾았다고 한다. 망자의 아내가 작년에 자살하였기 때문에, 남겨진 아이들은 이제 고아가 되었다. 고등학생인 장남은 몇 번의 자살충동을 느꼈다고 한다. 이게 ‘정신과적 응급 상황’이 아니고 무엇이랴? 정혜신 박사는 이들을 접하고, 당장 도움의 손길이 필요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 후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와 배우자를 대상으로 한 집단 상담을 수행하였다. 정 박사는 이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앓고 있다고 진단하고, 더 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해 지속적이고 일상적인 치유가 이루어질 치유센터가 필요함을 알려나갔다. 많은 이들의 도움이 보태졌고, 드디어 지난 10월 30일 평택에 치유센터 ‘와락’이 문을 열었다. ‘와락‘ 개소식을 앞두고 논현동 마인드프리즘 사무실로 그를 만나러 갔다.

정혜신 박사는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모교에서 전공의 수련을 마친 정신과 의사이다. 그 후 개인 클리닉의 원장으로 환자를 보았는데, 유독 중년남성의 내면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직장인들의 심리적 공황상태 (ADD)에 대한 연구로, 1996년부터는 여러 기업의 요청으로 남성 심리를 강의하였다. 이것이 중견 관리자를 대상으로 한 자아경영 프로그램 ‘come back to myself' 이었다. 이후 중년남성들의 심리분석을 통한 ’맨 콤플랙스‘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나가면서, 기업경영에 정신의학을 접목시킨 ’심리경영‘에 대한 연구는 기업차원의 정신건강관리 프로그램 개발로 나아간다. 이러한 노력은 정혜신 M연구소를 거쳐  현재의 ’마인드 프리즘‘ 이라는 회사체의 건립으로 이어진다. ’마인드 프리즘‘은 CEO나 중견관리자들을 대상으로 심리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정신건강 컨설팅 기업으로, 부군인 이명수님과 함께 ’마인드프리즘‘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글쓰기에도 활발한 두각을 나타내어 30대 후반부터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였고, 1999년에는 남성 심리에 관한 생각을 묶어 <불안한 시대로 부터의 탈출>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2003년에는 대학로 소극장에서 중년남성의 심리를 주제로 한 일종의 모노드라마인 <감성 콘서트>를 공연해 관객과 소통하기도 했다. 중년남성의 심리에 대한 관심은 개인적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에 대한 관심으로 지평이 넓어졌다. 정치인을 비롯한 우리시대 유명인들에 대한 독특한 인물평전인 <남자Vs남자>, <사람Vs사람>는 상당한 화제를 불러 모았다. 이후로도 우리시대를 진단하는 대표적인 필자로 <거짓말>, <배신>등 다수의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고, 최근에는 이명수님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쓰인 간명한 에세이집 <홀가분>을 출간해 독자들로부터 잔잔한 반향을 얻고 있다.  

황진미(이하 황) : 왜 하필 중년남성의 심리에 천착하게 되었나요? 저는 중년남성이 아주 싫던데요.

정혜신(이하 정) : 원래 정신과 의사들도 자기 치료를 받잖아요. 저도 제 정신분석을 통해 알게 된 것인데, 아버지에 대한 기억 때문이더라고요. 어머니는 제가 7살에 암에 걸리셨고 12살에 돌아가셨어요. 아버지는 순한 사람이었는데 늘 집안에만 계셨죠. 저는 그게 그분의 성격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만성적 우울증 상태이셨던 것 같아요. 정신과 의사가 되어 도와드리고 싶었지만 1년 후에 돌아가셨어요. 저에겐 아버지의 쓸쓸해하는 모습이 늘 머릿속에 남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지금도 중년 남성, 뭔가 쓸쓸함과 인생의 페이소스가 있는 남자에게 강한 연민과 매력을 느끼죠.  

황 : 96년부터 기업에서 강의를 하셨잖아요, 주로 어떤 강의를 하셨던 건가요?

정 : 당시 기업에서의 지식경영이다 심리경영이다 하는 트렌드가 있었어요. 기업 인사에도 심리적인 것을 활용하고 싶어 했고. CEO들이 심리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죠. 원래 중년 남성들은 자신이 문제가 생겨도 병원에 잘 오지 않잖아요. 자기 문제를 못나게 남에게 상담 받느냐고 생각하기 십상이죠. 하지만 남성 심리에 관한 제 강의를 들은 분들은 심리 상담의 중요성을 많이 느끼셨어요. 지금 마인드 프리즘은 CEO나 임원들을 대상으로 1대 1 심리분석을 통해 자신의 근원적인 콤플렉스를 찾아주는 등 정신건강을 도와주는 일을 합니다. 이분들은 사실상 전쟁터에 사시는 분들이잖아요. 조직 내에서도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편안해야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가 적다는 것을 인지하고 기업 심리 컨설팅은 빠르게 전파되고 있습니다.

황 : IMF 이후에 해고된 분들이 무척 많으시잖아요. 이분들에 대한 특별한 상담과 관리가  필요할 것 같아요.

정 : IMF는 해고로 인한 사회적 배제가 상시화, 일반화된 계기였던 것 같아요. 두려운 사회적 경험이었죠. 개인들의 내적 불안은 물론 우리사회의 불안지수가 엄청나게 높아졌지요. 그러다보니 예측 불가능성을 가능한 낮추려는 노력에 모든 에너지를 쏟게 됩니다. 확실한 것을 잡기 위해 학벌에 강한 집착을 보인다거나, 계속 학원을 다닌다거나 하는 식의 스펙 쌓기가 만연하게 되었죠. 특히 남성들은 자신의 ‘쓸모’에 대한 강박이 심하죠. 실직으로 경제적 능력을 상실하면, 자신이 쓸모없는 인간이 되었다고 생각하여, 주변사람과의 모든 관계를 망치기도 하지요. 자신을 직장에서의 지위와 동일시하여 그것과의 분리를 참을 수 없어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직장에서의 역할 뿐 아니라 가정에서의 아버지, 누구의 친구 이런 식으로 여러 개의 역할 페르소나가 있어요. 가면을 썼다 벗어다 할 수 있는 것처럼 여러 정체성과 유연하게 결합해야 합니다. 어느 한 가지 정체성에 과도한 동일시가 일어나는 것은 건강한 인격이 아니지요. 사회적 지위나 고정적인 성역할보다 개별적 존재인 인간으로서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이 인간의 성숙도를 나타내지요.

황 : 한 가지 정체성에 과도한 동일시를 말씀하셨는데, 극단적인 예가 ‘군복 입은 할아버지들’일 것 같아요. 사실 의사들도 그런 면이 많지 않나요? 의사라는 정체성에 과도하게 자신을 동일시하는.

정 : 많이 있죠. 학교를 오래 다녔고 늦게 사회에 나와, 의대라는 동일한 테두리 내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서 출신학교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는 사람도 있고. 그게 일종의 퇴행이고 고착인데, “있어 보인다”고 생각해서 고치려 하지 않죠. 어딜 가나 의사로 행세하고.  

황 : <남자 Vs 남자>, <사람 Vs 사람> 인물평전은 참 독특한 기획이었던 만큼, 참 힘든 작업이었을 것 같아요. 혹시 나중에 이의제기를 받았던 적은 없나요?

: 보통 인터뷰를 통해 어떤 인물에 대한 책을 쓰는 경우는 많은데, 저는 일부러 그 사람들을 절대 만나지 않고 인물에 대한 평전을 쓰겠다고 생각했어요. 만나면 누군가에 대한 인상이 생기고 객관적인 비판을 하기가 어려워지잖아요. 순전히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만 인물평전을 쓰되, 원칙은 칭찬이든 비판이든 당사자가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자료를 많이 읽고, 주관성을 띌 수밖에 없는 글이지만 비교적 공정하게 쓰느라 굉장히 힘들었죠. 그런데 상당히 비판적으로 썼던 사람으로부터도 문제제기를 받은 적은 없습니다.    

황 :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 집단 상담은 어떻게 하시게 된 건가요?

정 : 올해 봄 14번째 죽음을 접하고, 전부터 한번 찾아가야지 했던 마음을 미룰 수 없었습니다. 저렇게 많은 사망자가 나오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14번째 사망자의 두 아이들이 졸지에 고아가 되었다는 소식에 무척 가슴이 아팠습니다. 고1인 오빠, 중3인 여동생 이었는데, 오빠는 작년에 엄마가 자살하고 자살 시도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해고자와 가족들에 대한 심리적인 치유가 당장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시작이 쉽지 않았습니다. 해고자와 가족들은 2009년 경찰특공대가 투입되고 전쟁터와 같았던 파업 당시의 폭력적 상황과 이후 구속과 해고를 겪으면서 심리적 내상을 입은 분들입니다. 이후  뿔뿔이 흩어져 살면서 한명, 한명씩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죠. 해고자가족 대부분은 ‘가대위(가족대책위원회)’에서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게 중에는 ‘쌍용’의 ‘쌍’자만 들어도 경악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전형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 증상이죠. 트라우마가 된 과거 사건으로부터 가능한 멀리 달아나려하지만, 내면적으로는 그로부터 한 발작도 벗어날 수 없는 상태. 이런 분들에게 내가 갑자기 나타나 “당신들은 정신에 문제가 있으니, 치료받으셔야 합니다” 라고 말한다고 치료를 받으러 오는 게 아니에요. 그런 접근은 오히려 폭력이죠. 게다가 이분들은 재취업이 되지 않아 생활고에 직면하고 있는데다, 파업 이후에도 계속 복직투쟁에 나서는 남편과 생계를 쫓아 식당일이라도 찾아 나선 아내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부부 사이의 갈등은 그대로 아이들에게 전이되어 가정의 평화와 일상이 파괴된 상태에서 아이들이 방치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우선 아이들을 돌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과 놀아주는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는데, 가수 박혜경씨와 ‘레몬트리 공작단’이 봉사에 나서 주셨어요. 평택시청에서 이분들이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놀아주는 동안 아이들을 데리고 온 어른들과 잠깐 커피 마시면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20~30명 정도가 모였는데, 파업이 끝난 이후 그때가 가장 많이 모인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날부터 해고자 8명과 배우자 6명을 대상으로 한 8주간의 집단 상담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분들이 1기이입니다. 지금 2기까지 마쳤고 현재 3기 집단 상담이 진행 중입니다. 와락은 지난 6월초에 상담을 하면서, 상담 외에도 더 본격적이고 더 통합적인 치유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 ‘와락’프로젝트를 준비하게 되었고,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5달도 못되어 실현되었습니다.

황 : 치유센터 ‘와락’은 고문피해자 모임인 ‘진실의 힘’에서 2천 만원을 기증하고, 이를 종자돈으로 건립하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정 : 제가 4년 전부터 군사정권 시절의 고문피해자 분들의 상담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2005년도에 민가협(민주화운동을 위한 가족협의회)에서 과거사진상위원회에 진정을 넣어 민주화운동보상금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심리적 내상을 치유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물질적 보상이 그분들 삶에 오히려 독이 된다는 것을 절감한 민가협의 문제의식으로 심리 상담에 대한 욕구가 구체화 되었습니다. 제가 거기에 결합하게 된 것이죠. 고문피해자분들은 80년대 진도가족간첩단사건이나 납북어부사건 등 고문에 의해 간첩으로 몰려 수 십 년 씩 감옥에서 보냈던 분들입니다. 그 결과 가족들마저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혀 사회적 고립을 겪어야 했고, 그런 과정에서 가정이 파괴되었던 분들입니다. 수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분들은 가방에 서류를 한보따리씩 가지고 다니면서, 당시 알리바이를 증명하며 자신이 간첩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곤 합니다.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국가폭력으로 인해 삶이 완전히 파괴된 분들이시지요. 이분들이 상담을 통해 좋아지면서, 또 다른 피해자들에게도 상담을 받을 것을 권유하고 계십니다. 제가 쌍용차 해고자들을 상담할 때에도 그분들이 함께 하셨습니다. 누구보다 고통의 문제에 민감하시고 피해자의 입장에 깊이 공명하시는 분들이죠. 이분들이 쌍용차 해고자 가족들의 치유센터인 ‘와락’을 건립하는데 2천 만원을 내주셨습니다. 사실 그분들이 무슨 큰돈이 있겠어요? 재심을 받아 무죄판결로 보상금 받은 것을 기탁한 돈들이죠. 국가공권력으로 인해 가장 큰 고통을 겪은 이들이 그 보상금으로 쌍용자동차 해고자 가족들의 고통을 치유하는데 출자했다는 점이 굉장히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후에 많은 이들의 도움이 더해졌어요. 건물의 80평을 임대해서 만들어진 와락의 설계와 인테리어 공사 하나하나가 모두 재능기부와 자원봉사로 이루어졌습니다. 와락이 <나는 꼼수다>에 소개된 후 더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와락에는 소아정신과 전문이신 서천석 선생님을 비롯해 10여명의 정신과 전문의와 심리상담가가 결합되어있고, ‘와락 모아’를 비롯해 50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와락은 치료와 치유의 두 가지 접근이 통합된 치유센터입니다. 전문적인 상담이 이루어지는 측면이 있고, 아이들과 놀아주고 따뜻한 밥상을 차려 먹임으로써 일상의 행복을 회복시키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런 통합적인 치유시스템은 대학병원에도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와락이 치료와 치유가 통합된 치료센터로서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와락이 정말 잘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평택의 와락이 성공을 거둔다면, 앞으로 한진중공업해고노동자들을 위한 영도 와락 이나, 제주 강정마을 와락도 생길 수 있죠.    

황 :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씀은 어떤 건가요?

정 : 더 많은 전문적인 상담인력이 필요합니다. 뜻을 같이 하고 마음을 나눌 정신과 전문의 선생님, 소아 정신과 전문의 선생님, 간호사, 상담심리전문가, 상담심리사 등의 인력이 더 많이 자원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와락’ 트위터 계정 @warakproject  @warakmoa  @mindjj / 후원계좌(농협 301-0089-4121-21) >  

황진미는? 

이화의대를 졸업하고, 연세대 보건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진단검사의학 전문의 자격도 취득했다. 2002년에는 <씨네21>을 통해 영화평론가로 데뷔했다. 현재 <한겨레21>, <시사저널>, <비타민> 등에 영화 관련 글을, <한겨레 훅>에 법정르뽀를 기고하고 있다. 앞으로 '황진미의 라뽀&르뽀'를 통해 보건의료계, 혹은 의료시스템과 관련된 이슈를 진단하는 글을 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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