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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소리] 도시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장소의 재발견 / 엘러스테어 보네트 지음 / 박중서 옮김 / 책읽는 수요일 펴냄, 2015년

[라포르시안] 초등학교 6학년 때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큰 사고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마침 만우절인 4월 1일이라서 친구들 사이에서는 거짓말이라고 알려진 사고였습니다.  학교 옆 작은 계곡에서 놀고 있었는데, 비탈 위에 있던 친구가 놓친 작은 돌덩이가 굴러 내려와 뒤통수를 맞춘 것입니다. 옆에서 놀던 친구가 놀라서 이름을 부르는 바람에 고개를 돌렸지만, 사태를 파악하고 피하기에는 이미 늦었습니다. 그나마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돌이 머리에 쓰고 있던 모자의 테에 부딪힌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머리뼈에 구멍이 생겼기 때문에 출혈이 머리뼈 밖으로 흘러나올 수 있어서 뇌 안에 고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1960년대만 해도 신경외과를 전공하는 의사선생님이 손으로 꼽을 정도였으니 지방 소도시에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요행수가 겹치는 바람에 이틀 밤 정도를 입원하여 경과를 관찰하다가 퇴원해 학교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야트막한 산비탈을 따라 교실이 늘어서 있던 학교 주변에는 작은 계곡이 널려있어 천혜의 놀이터였습니다. 그 무렵 학교에서 존 웨인이 감독과 주연을 맡았던 영화 <알라모>를 단체로 관람했던 우리들은 영화에서처럼 요새를 구축하는 놀이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보면 또래 아이들은 남들이 모르는 비밀스러운 장소에 대한 환상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비밀스러운 장소는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아스라한 기억 속에 남아 있어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처럼 기억에 남아 있는 장소가 있는가 하면 기억해야 할 곳임에도 불구하고 잊혀져가고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앨러스테어 보네트의 <장소의 재발견>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 숨겨진 비밀을 다루고 있습니다. 뉴캐슬 대학의 사회지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서양 세계의 사상, 향수와 기억의 지리학과 정치 문제, 반인종주의와 ‘백인성’의 국제역사, 유럽 아방가르드의 지리학적 이론 등을 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런던 근처에 있는 작고 오래된 마을 에핑(Epping)에서 태어난 저자는 어린 시절의 저처럼 어른들의 눈을 피해 언제라도 숨을 수 있는 비밀 장소 만들기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과 J. G. 발라드의 <물에 잠긴 세계>를 즐겨 읽었던 그는 장소야 말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요소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런던이 비대해지면서 자신의 고향을 삼켜버린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지리학의 다양한 연구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묘하게 끌리는 제목도 그렇지만 이번에 여행한 터키에 있는 카파도키아의 지하도시를 목차에서 발견하고는 바로 주문해서 터키로 가는 여행짐에 집어넣었습니다. 기왕에 이야기를 꺼냈으니 카파도키아의 지하도시 이야기를 먼저 하겠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방문한 곳은 터키 카파도키아 지방의 데린쿠유(Derinkuyu)에 있는 지하도시입니다. 터키어로 ‘깊은 우물’이라는 뜻을 가진 데린쿠유의 지하도시에 들어가기에 앞서 가이드는 닭을 치던 주민이 자꾸만 사라지는 닭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고, 이 지하도시의 규모는 3만 명이 생활하던 공간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지상을 점령한 적을 피해 지하에서 양까지 치면서 생활하고, 때로는 양을 지상으로 방목하기까지 했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석연치 않았던 대목들은 이 책을 통하여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데린쿠유의 지하도시는 8개의 층에 걸쳐 조성될 정도로 방대한 규모입니다. 위쪽으로 주거공간이 있고, 마구간과 식품창고들까지 있고 맨 아래층에는 지하교회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하교회의 규모는 작은 주거공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큰 편인데도 20여명이 들어서면 꽉 들어찰 정도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상주하였다는 도시규모에 비하면 교회의 규모는 턱없이 작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데린쿠유의 지하도시는 적이 침략해왔을 때 임시로 대피하던 시설로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입니다.

저자는 8세기 경 카파도키아의 데린쿠유 지역은 비잔틴 제국의 변경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이교도들의 침략이 잦았기 때문에 이곳에 살던 기독교인들이 피난처로 삼기 위하여 만들었을 것으로 설명합니다. 카파도키아 지역은 응회암지대로 견고하면서도 깍아내기가 수월해서 일찍부터 돌집을 만들어 거주하는 전통이 있었다고 합니다. 기원 1세기전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는 500년 전에 이곳에 살던 프리지아(Phrysia)인들은 목재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자연 상태 그대로의 언덕을 골라서, 자기한데 편리한 만큼 뚫고 파냈다.(94쪽)’라고 설명하였다고 합니다. 학자에 따라서는 프리지아인들보다도 1,000년이나 앞선 히타이트(Hittite)인들로부터 시작된 주거형태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데린쿠유의 지하도시가 방어용이라는 점을 시사하는 특징적 구조를 보면, 출입구가 좁고 각층은 안에서만 작동이 가능한 커다란 돌문으로 봉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10여 킬로나 떨어져 있는 또 다른 대규모의 지하도시 카이마클리(Kaymakli)로 연결되는 인공터널이 예비되어 있어 위급한 상황에서 지하도시를 탈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권위자들은 데린쿠유의 지하도시는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다가 바깥이 위험해졌을 때만 사용하는 임시피난처로 예비해둔 것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 터키 카파도키아의 지하도시. 사진 제공: 양기화

이처럼 저자는 세계 곳곳에 산재하고 있는 47개의 특별한 장소들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그곳들은 우리가 잃어버린 곳이기도 하며, 또는 우리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진 장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주인이 없는 장소이거나 고립된 곳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아주 먼 곳일 수도 있고, 바로 우리 주변에 있는 장소일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생소한 장소들입니다만, 한국에 있는 장소도 한 곳 등장합니다. 바로 죽은 도시들 가운데 하나로 소개되는 기정동입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에게 조차 생소한 기정동(機井洞)은 1953년 남한과 북한이 맺은 평화협정의 산물입니다. 남북한 사이에 폭 4킬로미터의 비무장지대를 두면서 그 안에 각각 한 개씩의 정착촌을 두기로 한 것에 따라 남한에서는 대성동을, 북한에서는 기정동을 조성한 것입니다.

기정동이 저자의 관심을 끈 이유는 첫머리에서 감지할 수 있습니다. “기정동(機井洞)은 창문에 유리조차 끼우지 않은 고층건물 안에 조명등만 켜놓은 가짜 장소이다. 이곳에는 주민도 없고, 방문객도 들어갈 수 없다. (…) 북한의 기정동, 일명 ‘평화마을’은 남한의 잠재적 망명자를 유혹하기 위해서, 그리고 공산주의 국가의 발전과 현대성을 과시하기 위해서 지어졌다.(180쪽)” 남한의 평화마을 대성동이 벼농사를 짓는 주민들이 거주하는 것과는 대조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죽은 도시’로 분류된 것 같습니다.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사업에 관하여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의 경관>이라는 제목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오래 전에 건설되어 노후화된 고가도로가 도심의 경관을 해치면서도 교통의 흐름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대부분 철거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독 서울역 고가차도를 공원화하여 남겨두겠다는 서울시장의 발상은 뉴욕의 하이라인파크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고가차도에 나무를 심은 커다란 화분을 늘어세우고 고가도로 하단에는 줄기나무를 늘어뜨리는 방식의 설계가 1등으로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흉물스러운 고가차도를 도심의 스카이라인과 조화를 시키기 위해서는 웬만큼 단장하지 않고서는 어려울 듯합니다. 그만큼 도시와 자연이 공존하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점을 저자는 <시간의 경관>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시간의 경관>에 등장하는 장소는 역시 뉴욕의 라과디아 플레이스와 웨스트 휴스턴 스트리트가 만나는 길모퉁이에 있는 1,000제곱미터의 공간입니다. 울타리를 쳐서 사람들의 출입을 금한 이 공간은 일종의 생태공원입니다. 1978년 미술가 앨런 손피스트가 17세기 이전에 뉴욕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붉은 삼나무, 흑벚나무, 풍년화, 미국담쟁이덩굴, 미국자리공, 아스클레피아스 같은 토착종 식물을 심어 조성하였습니다. 이른바 상실된 자연에 헌정된 <시간의 공간>이라는 제목의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이 도시가 한때는 숲이었음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강과 샘과 자연적 노두(露頭) 같은 자연현상의 삶과 죽음’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반성의 장소로 활용하자는 주장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세월이 흐르면서 <시간의 공간>은 나팔꽃이나 방가지똥 같은 외래종 잡초들의 침입으로 오염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곳은 폐쇄된 공간이 아니라, 오히려 개방된 실험실’로 여러 종의 식물 사이에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라고 손피스트는 해명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작가의 주장에 대하여 저자는 “그것이 사실이라면 <시간의 공간>은 공허한 기념물일 뿐이다. 이 장소가 이 도시의 다른 녹색 공간들과 차별화되는 요소는, 바로 이곳이 과거를 엄밀하게 환기시킨다는 점이다.(60쪽)”라고 비판하였습니다. 저자는 여러 도시에서 자주 조성되는 환경 미술, 또는 대지 미술의 상당수가 넓은 자연경관 안에다가 방향상실한 듯한 인간의 장소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하기도 합니다.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서울역 고가차도 공원화사업도 큰 고민 없는 전시행정의 일환이 아닐까하는 우려가 생깁니다. 자동차 전용도로가 공원화되면서 사람의 통행이 자유롭게 되면 마포대교의 대안으로 활용하려는 사람들도 나타날 수 있을 것이며, 도로공원에 늘어놓은 시설들이 공원 아래로 떨어지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내던지는 사람도 있을 수 있어, 공원 아래로 지나는 사람이나 차량이 크게 피해를 입을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997년 요트를 타고 북태평양을 항해하던 찰스 무어가 발견한 북태평양의 거대한 쓰레기 구역(GPGP, Great Pacific Garbage Patch)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경고합니다. 주로 플라스틱과 어망이 해류를 따라 흐르다 모여들어 만들어낸 GPGP는 그 규모가 한반도면적(22만㎢)의 7배에 달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 병이 강물에 흘러들고, 강물을 따라 바다로 나간 플라스틱 병이 해류를 타고 흘러가다 마지막으로 도착하는 곳이 이곳이니 쓰레기의 무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만들어진 쓰레기 섬이 결국은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그 결과가 인간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곳 가까이 있는 도심하천 가에는 오래 전에 들어온 너구리 한 쌍이 퍼뜨린 새끼들이 이제는 영역을 다툴 정도로 개체 수가 늘어났을 뿐 아니라 처음 들어온 너구리들이 사람들 눈에 거의 띄지 않게 숨어 다니던 것과는 달리 요즘 너구리들은 대낮에 산책길을 어슬렁거리기도 합니다. 생태학자들은 자연과 사람들 사이의 간격이 좁혀진 것을 반기는 것 같습니다만, 수의학자들은 이들 야생동물을 통하여 광견병과 같은 치명적인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할 것을 당부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자가 살고 있는 영국의 뉴캐슬은 물론 호주의 멜버른, 노르웨이의 오슬로, 독일의 슈투트가르트, 캐나다의 토론토, 가까운 일본의 삿포로 같은 대도시에서는 작은 여우들이 도심에 출몰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토종 여유가 멸종단계에 있기 때문에 도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날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만 멧돼지가 도심이 출몰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 멀지 않은 앞날에 우리나라의 도심에서 여우를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저자는 이 책을 읽은 독자들에게 토포필리아(Topophilia), 즉 ‘장소에 대한 사랑’의 개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소수의 지도에서만 발견되거나 심지어는 어떤 지도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장소들을 찾아가는 여행을 통하여 일상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심리적 욕망을 채우고, 장소에 대한 상상력을 키워나가며, 우리를 자연으로 연결시켜 나가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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