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만취약지 ‘합천군 → 진주 경상대병원’ 이동 중 구급차서 출산…계속 사라지는 분만병원

[라포르시안]  #.경남 합천군 삼가면에 거주하는 올해 39세의 임산부 A씨. 지난 13일 저녁 8시경 산통을 느낀 A씨는 직접 승용차를 몰고  경상대병원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동하던 중 진통이 심해지면서 119구급대에 긴급도움을 요청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A씨는 합천소방서 119구급차를 타고 진주 경상대병원으로 이송하던 도중 구급차 안에서 출산을 했다.

A씨의 긴급도움 요청을 받고 출동한 합천소방서 119구급대가 구급차 안에서 전화를 통해 병원내 구급지도의사의 의료지도를 받아 이송하던 중 진통시간이 짧아지면서 상황이 긴박해지자 결국 현장에서 분만을 유도했다.

다행히 구급차 안에서 무사히 출산을 하고 산모와 아기 모두 건강한 상태라고 한다.

그런데 만삭의 임산부인 A씨는 어쩌다가 자신의 집에서 30km 이상 떨어진 경상대병원까지 직접 차를 몰고 이동하려 했을까.

여기에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지역간 의료자원 불균형과 분만인프라 붕괴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경남 합천군은 현재 분만취약지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분만취약지란 관내 분만율이 30% 미만이고 분만 가능한 병원으로부터 1시간 이상 소요되는 취약지 면적이 30% 이상인 시·군·구를 지칭하는 말이다.

합천군 내에는 분만이 가능한 산부인과가 전무하다.

지난 2013년 보건복지부가 추진하고 있는 분만취약지 지원사업을 통해 합천군 합천병원이 지원 대상으로 선정됐지만 분만이 아니라 산부인과 외래진료를 통해 산전진찰 서비스만 제공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다 보니 이 지역의 산모들은 출산할 때면 인근 도시 지역의 분만이 가능한 산부인과를 찾아 원정출산이 불가피하다.

A씨가 거주하는 경남 합천군 삼가면에서 진주 경상대병원까지의 거리는 33km 정도로, 차로 이동시 38~42분이 소요된다.

A씨도 그동안은 합천병원에서 산전친찰을 받다가 분만을 위해 경상대병원으로 이동하려 했지만 거리가 멀다보니 도중에 구급차 안에서 출산을 하게 된 것이다.

합천소방서 관계자는 지난 1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A씨는 합천군에 분만이 가능한 산부인과병원이 없기 때문에 진주의 경상대병원으로 이동하려 했다"며 "합천군 내에서 출산 여성이 많지 않다보니 이런 일이 흔한 것은 아니지만 작년 초에서 A씨처럼 다른 지역의 병원으로 이동하던 도중에 출산을 한 산모가 있었다"고 말했다.

합천군처럼 분만취약지로 지정된 곳은 2013년 6월 기준으로 전국 46곳(시군구)에 달한다.

복지부는 분만취약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지난 2011년부터 2014년까지 25개 기관에 총 130억원의 산부인과 설치·운영비를 지원해 왔다.

그러나 합천군처럼 과도한 시설 운영비 부담과 분만의사 확보의 어려움 때문에 분만시설 운영을 포기하고 산전진찰 서비스만 제공하는 곳도 적지 않다.

이런 분만취약지에서는 어쩔 수 없이 산모들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40분~1시간 거리의 인근 도시지역 분만 산부인과를 찾아 원정출산을 갈 수밖에 없다.

분만 산부인과 10년새 반토막...분만취약지 모성사망비 증가로 이어져전국적으로 분만취약지가 발생한 원인은 분만이 가능한 산부인과 병의원이 계속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문정림 의원(새누리당)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에서 제출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분만을 하는 산부인과의원 중 폐업한 곳은 2010년 93개, 2011년 102개, 2012년 97개, 2013년 96개, 2014년 76개 등 최근 5년간 464개에 달했다.

반면 개업한 곳은 2010년 50개, 2011년 52개, 2013년 56개, 2014년 43개, 2014년 50개로 251개에 그쳤다.

분만이 가능한 산부인과 의원은 2010년 522개에서 2014년에는 371곳으로 28.9%나 줄었다.

의원뿐만 아니라 상급종합병원도 분만을 받는 기관이 44개에서 42개로 줄었고, 종합병원도 108개에서 92개로 감소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간한 '2013년 건강보험통계연보'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분만기관 수는 2004년 1,311개에서 2013년에는 699개로 10년새 반토막이 났다.

분만시설을 갖춘 산부인과 병의원이 계속 감소하는 이유는 상당히 복합적이다.

분만실을 운영할 경우 24시간 정상운영에 따른 의료진의 업무부담감은 높은 반면 분만 관련 의료수가가 낮다보니 운영할 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이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2월 작성한 '2014~2018 건강보험 중기보장성 강화 계획'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분만비용은 일본의 1/5, 독일·프랑스 등의 약 1/3 수준이다.

특히 산부인과는 분만 관련 의료소송 부담이 상당히 높다는 점도 분만기피를 부추기고 있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인하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해 작성한 ‘예방적 관점에서의 의료분쟁 판례 분석 보고서(2013년)’를 보면 산부인과의 의료분쟁 건수가 진료과 중에서 가장 많았다.

여기에 불가항력적 분만사고 발생시 보상재원의 30%를 분만 실적이 있는 의료기관이 부담하도록 하는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젊은 의사들의 산부인과 지원 기피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관련 기사: 분만 한건당 ‘1161원’의 자긍심 강탈당하는 산부인과 의사들>

실제로 국내 산부인과 전문의 배출 수는 2007년까지 200명을 넘겼지만 이후 전공의 지원 기피 등이 심화되면서 해마다 감소해 2011년에는 96명으로 100명 아래로 떨어졌다. 

▲ 라포르시안 자료 사진.

이런 상황이 겹치면서 지방에서부터 분만 인프라가 붕괴가 시작됐고, 전국적으로 분만취약지가 확대되는 추세다. 

분만 인프라 붕괴는 35세 이상 고령산모 증가와 맞물려 모성사망비가 증가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산모의 평균 출산연령은 2004년 29.98세에서 2014년에는 32.04세로 늘었고, 35세 이상 고령 산모 비율은 2004년 9.4%에서 2014년에는 21.6%로 증가했다.

고령 임신이 늘면서 저체중아와 미숙아 출산, 고위험 산모 증가로 이어지고, 강원도와 같은 분만취약지의 경우 모성사망비 증가로 나타났다.

한 대학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분만의사가 감소해 고위험 임신관리 능력이 떨어졌고 이로 인해 모성사망비가 증가하고 있다"며 "앞으로 분만 인프라가 확충되지 않으면 모성사망률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분만 인프라 붕괴를 막으려면 수가 현실화와 분만에 따른 소송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라며 "두 가지 사안이 해소되지 않으면 산부인과 전문의가 배출되더라도 분만을 하는 의사는 계속 줄어들 것이고, 분만 산부인과 폐업 현상도 멈추지 않을 것"이리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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