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아메리카의 어제와 오늘 / 임상래 등 지음 / 이담북스 펴냄, 2011년

[라포르시안] 브라질 경제가 회복될 기미 없이 총체적으로 난국에 빠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내 투자자들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늘고 있다고 합니다. 브라질에 투자하고 있는 국내자본이 10조원에 이르고 있어 큰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분들 가운데 브라질의 경제현황에 대하여, 혹은 브라질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투자를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도 먼 곳이기 때문입니다. 정은선의 영상소설 <찾거나 혹은 버리거나 in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등장하는 방송작가는 고단한 현실에서 도피하려고 서울에서 가장 먼 곳을 찍었는데, 바로 아르헨티나였습니다. 이처럼 브라질, 아르헨티나와 같은 남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멀리 있는 탓에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별로 없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 남미가 점차 우리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처음 자유무역협정(FTA)를 체결한 나라는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 혹은 무역량이 많은 미국이 아니라 남미의 칠레였습니다. 케이블방송의 유명한 배낭여행프로그램을 통하여 남미의 관광지가 소개된 이후로 남미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저 역시 남미여행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는 우리네 옛 속담대로, 지난해 아내와 함께 해외여행을 처음 다녀온 뒤로는 다음 여행지를 어디로 할까 고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기운이 팔팔할 때 먼 곳을 다녀오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남미여행을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일단은 여행사 상품으로 이용할 계획입니다. 여행사를 통한 여행은 교통, 숙소, 식사 등의 문제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고, 여행지에 대한 다양한 정보 역시 인솔자나 가이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하지만 여행은 아는 만큼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나름대로는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준비하면 여행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아지게 됩니다.

그래서 기회가 되는대로 남미를 포함한 라틴아메리카에 관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와 문화는 물론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가고 있습니다. 라틴아메리카에 관한 자료들은 많지 않습니다만, 부산외대가 1997년에 설립한 중남미지역원에서 좋은 자료들을 꾸준하게 내놓고 있습니다. 중남미지역원에서 내놓은 <라틴 아메리카의 어제와 오늘>은 라틴아메리카에 관한 다양한 주제들을 잘 정리하고 있다고 생각되어 [북소리]에서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저자들은 이 책을 전문학술서로 준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교양서로 읽을 수 있도록 전문용어와 주석을 줄이고 내용 역시 평이하게 다듬었다고 합니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들의 이런 노력이 저절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다섯 명의 필진이 열다섯 개의 장을 나누어 맡은 <라틴 아메리카의 어제와 오늘>은 오늘날의 라틴아메리카를 있게 한 식민역사를 먼저 다루었습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필두로 한 유럽세의 정복에 따른 식민지배와 식민통치로부터 독립을 쟁취하여 근대국가를 형성하기까지의 과정을 제일 먼저 정리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라틴 아메리카의 지리, 자연 그리고 인간에 대하여 정리하고, 이어서 라틴 아메리카 고대문명의 기원과 시대구분에 이어 마야문명과 아즈텍문명으로 대표되는 메소아메리카의 문명과 잉카문명으로 대표되는 안데스문명을 정리하였습니다. 다음으로는 식민통치의 잔재로 인한 인종문제, 빈곤과 불평등, 종교와 언어, 도시화와 이주문제, 정치적 전통과 경제의 변천과정 등을 요약하고, 마지막으로 라틴아메리카와 한국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사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대륙을 처음 발견했다는 역사는 유럽의 시각에서 쓰인 것이라고 알게 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아메리카대륙에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다면 처음 발견한 것이 옳겠지만, 이미 선주민이 있었다고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져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에르난 코르테스가 110명의 선원으로 구성된 11척의 배에 나누어 탄 508명에 불과한 군인으로 유카탄반도에 상륙하여 아즈텍제국(저자들은 스페인사람들이 들어오기 이전에 라틴아메리카에 자리하고 있던 마야문명, 아즈텍문명 그리고 잉카문명은 제국이라고 부를 정도로 국가기반이 탄탄하지 못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을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도 궁금했습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볼 수 없던 총과 말이라는 신무기가 결정적인 이유였을까요? 6.25동란에 뒤늦게 참여한 중공군은 무장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무기체계를 병사의 숫자로 채운 인해전술이 당시만 해도 첨단무기로 무장한 연합군을 압박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이런 설명으로 충분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즈텍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가 그 배경에 있었던 것입니다. 신무기 이외에도 정복자가 얻은 결정적인 도움 가운데 하나는 원주민들이 선물로 제공한 귀족처녀 말린체였습니다. 그녀는 아즈텍사람들 사이에 전해오는 케찰코아틀 신화를 전해주었던 것입니다.

태초에 열세 번째 하늘에서 창조자들은 네 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첫째는 붉은 테스카틀리포카, 둘째는 검은 테스카틀리포카, 셋째는 케찰코아틀, 그리고 넷째는 우이칠로포츠틀리입니다. 검은 테스카틀리포카가 지배한 최초의 세계인 대지의 세계로부터 케찰코아들이 지배한 바람의 세계, 비의 신 틀랄록이 지배한 비의 세계, 그리고 틀랄록의 아내이자 강과 호수의 여신 찰치우쿠틀리쿠에가 지배하던 물의 세계를 거쳐 지금의 다섯 번째 세계는 테스카틀리포카와 케찰코아틀이 힘을 합쳐 창조하였다고 합니다. 두 사람이 바다의 괴물 틀랄테쿠틀리를 죽여 하늘과 대지를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불사의 존재인 괴물이 울부짖는 것을 달래기 위하여 인간의 육신과 피를 제물로 바쳐야만 했던 것입니다.(박종욱 지음, 라틴아메리카의 종교와 문화 75-89쪽, 이담북스, 2013년)

하지만 케찰코아틀은 결국 테스카틀리포카의 계략에 빠져 아즈텍에서 추방당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케찰코아틀은 메조아메리카의 고산지대에 서식하는 희귀종 새 케찰과 뱀을 뜻하는 코아틀이 합쳐진 이름으로 날개달린 뱀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케찰코아틀은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하얀 피부에 검은 머리카락 그리고 긴 수염을 기르고 있습니다. 아즈텍에서 추방당한 케찰코아틀은 다시 돌아올 것임을 예언하였고, 아즈텍사람들은 케찰코아틀의 전설을 굳게 믿어왔다는 것입니다. 말린체로부터 케찰코아틀의 전설을 듣게 된 코르테스는 자신이 돌아온 케찰코아틀이라고 속여 목테수마왕의 환심을 살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험한 지형 때문에 거대국가로 발전하지 못한 아즈텍문명은 도시국가들이 느슨한 연합체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도시국가들 사이에 맺은 지배와 피지배 관계로 인하여 이들 간에 갈등요인이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아즈텍으로부터 독립을 원한 뜰락스깔떼가족이 코르테스 원정대에 5,000명의 후원군을 제공하였다고 합니다. 때마침 유럽으로부터 원정대에 묻어온 천연두가 원주민 사이에 창궐한 것도 코르테스가 아즈텍의 수도 테노치띠틀란을 공략하는데 일조를 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코르테스의 아즈텍 점령으로 시작한 스페인은 황금을 찾아 점령지를 넓혀나갔는데, 삐사로와 알마그로가 이끄는 군대는 안데스의 꾸스꼬까지 함락하게 됩니다. 중남미지역을 정복한 스페인이 특히 관심을 보인 곳은 아즈텍문명이 있던 멕시코와 잉카문명이 있던 페루였습니다. 두 곳에는 금과 은광산이 있고 원주민이 많아 노동력이 풍부했기 때문입니다. 남미지역의 식민통치 초기에는 정복에 공을 세운 사람을 총독으로 임명하였던 스페인왕은 자신의 대리인을 부왕으로 임명하여 통치하도록 하는 부왕제를 실시하였습니다. 중남미의 식민지가 너무 광대하여 본국에서 직접 다스리는 것이 용이하지 않은 것도 이유였습니다. 1534년에 멕시코에 누에바 에스빠냐 부왕청을 설치한 것을 시작으로 1543년 리마에 페루 부왕청을, 1717년에는 지금의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를 관장하는 누에바 그라나다 부왕청을 설치하였고, 1776년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리오 델라 플라타 부왕청을 설치하였습니다.

북미로 이주한 이민자들이 가족단위로 구성되었던 것과는 달리 라틴아메리카지역으로 이주한 이민자들은 남성이 많았기 때문에 이들과 원주민 사이에 혼혈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습니다. 여기에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기 위하여 아프리카에서 끌어온 흑인노예들까지 더해서 라틴아메리카의 원주민과 유럽의 백인 그리고 아프리카의 흑인 사이의 혼혈이 복잡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라틴아메리카 식민지의 사회구성은 필연적으로 백인→혼혈인→원주민,흑인의 인종적 위계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백인도 스페인에서 건너온 뻬닌술라레스가 식민지의 고위직을 맡고, 끄리오요라고 부르는 식민지에서 태어난 백인 역시 차별적 대우를 받아 지배계층으로 부상할 수 없었습니다. 혼혈인이 식민지 사회의 주요 구성원이었는데, 이들은 주로 생산활동에 종사하면서 힘든 생활을 영위했다고 합니다. 백인과 원주민의 혼혈을 메스티조, 백인과 흑인의 혼혈을 물라토, 원주민과 흑인의 혼혈은 삼보라고 했는데, 그밖에도 순혈과 혼혈 사이의 혼혈을 구분하여 달리 부르는 등 혈통에 관한 명칭이 십수 가지나 되고, 백인과의 거리에 따라서 차별이 심해지는 경향을 보여 오늘날의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의 불평등 구조의 뿌리가 혼혈에 따른 차별정책에 두고 있다고 합니다.

스페인의 정복과정에서 수많은 라틴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이 죽었고, 식민지로 전락한 이후에도 농장이나 광산에서 고된 노동과 학대를 받는 동안 죽어갔으며, 유럽에서 건너온 신종 전염병 등에 희생되어야 했습니다. 콜럼버스가 도착했을 무렵 3,000~3,500만 명에 달하던 원주민은 불과 100년이 지나는 사이에 90%가 감소했다고 합니다. 오늘날 라틴아메리카에 거주하는 원주민은 전체 인구의 8% 정도로 추정되는데, 고산지대에 거주하는 아즈텍, 잉카 및 마야의 후손들로 2,200만명 정도이며, 아마존처럼 저지대이면서 접근이 용이하지 않은 지역에 사는 100만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근대국가가 출현하게 된 것은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에 패한 것을 시작으로 유럽에서의 스페인의 위상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식민지에 대한 본국의 통제가 점차 강화되어갔지만, 식민지 경제가 성장하면서 중산층 끄리오요를 중심으로 식민지배를 탈피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북소리]에서 소개한 바 있는 <아메리카노>에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독립과정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독립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기여한 중산층계급을 중심으로 근대국가가 형성되었지만, 군대와 정치세력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졌으며, 쿠바사태에 놀란 미국정부가 라틴아메리카의 공산화를 억제하기 위하여 우파세력이 정권을 잡거나 유지하도록 지원하였지만, 부패한 정권에 대한 좌파적 성향의 반대세력들의 반발로 라틴아메리카의 정치현황은 혼란을 거듭해왔습니다. 그런데 2000년 이후에 들어선 정권들은 국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투명한 정부운용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모두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라틴 아메리카의 어제와 오늘>은 자연과 신화, 역사, 특히 스페인의 식민지배과정과 독립, 그리고 현재의 정치경제 상황에 이르기까지 라틴아메리카에 관한 다양한 주제들을 잘 정리하고 있다고 생각되어 [북소리]에서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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