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뷰] 정부 부담은 최소화, 병원엔 의무만 잔뜩 떠넘긴 ‘국가방역체계 개편방안’

[라포르시안]  "메르스 사태가 진정되고 나면 의료기관의 감염관리를 강화한다며 온갖 규제를 쏟아낼 것 같은 분위기이다. 남 탓 하지 말고 정부의 대응 체계나 철저하게 손봤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진정 기미를 보이던 6월 말, 메르스 확진 환자 발생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던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 관계자가 한 말이다.

그동안의 수차례 경험으로 볼 때 앞으로 닥쳐올 고난을 예감한 탓일까.    

그가 푸념처럼 내뱉은 말이 예언처럼 딱 맞아떨어지고 있다. 

▲ 이미지 출처 : 보건복지부

정부가 지난 1일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열고 확정·발표한 '국가방역체계 개편방안'을 보면 메르스가 병원감염을 통해 확산됐다는 이유로 이를 방지하기 의료환경 개선 대책이 포함돼 있었다.

그 대책이란 게 정작 필요한 질병관리본부 조직개편과 방역체계 관련한 공공의료 기반 확충은 다 빠진 채 병원에 각종 규제와 의무를 신설하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정부는 개편방안에서 '병원감염 방지를 위해 응급실 선별진료 의무화, 병원감염관리 인프라 확충, 간병·병문안 문화 등 의료환경을 개선한다'는 계획 아래 의료기관이 해야 할 각종 의무사항을 깨알같이 담아냈다. 

우선 80명이 넘는 사람에게 메르스 바이러스를 전파한 14번 환자가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사흘을 머물면서 '슈퍼 전파자' 역할을 했다는 점을 감안해 응급실 개편 방안을 제시했다.

응급실을 통한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응급실 입구에서부터 감염위험환자를 선별진료하고 응급실 음압·격리병상 확보 및 분리진료 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환자가족 등 방문객 출입 제한 및 명단관리를 강화하도록 했다.

특히 응급실 과밀화 해소를 위해 응급실 입원대기(24시간 이상 체류)를 평가하고 이를 응급센터 지정기준에 반영키로 했다. 비응급환자가 대형병원 응급실 이용을 억제하기 위해 비용부담을 높이는 방안도 추진한다.

이런 방안이 추진되면 결국 의료기관의 응급실 운영 비용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고, 환자들의 비용 부담도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도 어지간한 규모의 병원은 응급실 운영에서 적자를 보고 있는 상황인데 여기에 음압·격리병상 확보 및 분리진료를 의무화 할 경우 비용부담은 더 늘 수밖에 없다.

응급실 과밀화 현상이 발생하는 근본 원인을 내버려 두고 표면적으로 드러난 문제만 제거하겠다는 거다.

응급실 과밀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질환의 경·중증에 상관없이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대형병원 쏠림현상'을 완화할 수 있도록 의료전달체계 확립이 선행돼야 한다.

정부의 대책은 의료전달체계 왜곡 현상은 버려둔 채 병원에 응급실 시설 및 운영 개선의 의무만 지우고, 환자들의 비용 부담을 높여 이용을 억제하겠다는 행정편의적 발상이다.

정부가 마련한 대책 중에서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위해 '진료의뢰 수가'를 신설하는 방안이 들어있기는 하다. 진료의뢰서 발급시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대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적정성 여부를 심사토록 해 관리하겠다는 의도이다.

그러나 동네의원이 국민건강의 '게이트키퍼'로써 역할을 잃고 대형병원과 환자유치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진료의뢰 수가만 신설한다고 얼마나 효과를 낼지 미지수다.

정부는 또 6인실 구조의 입원실을 4인실 위주로 개편을 유도하면서 환기기준 마련 등으로 입원실 환경 개선을 추진하고, 보호자 간병을 간호사로 대체하는 포괄간호서비스를 상급종합병원 감염관리 분야 중심으로 추진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의료기관의 시설 재정비에 따른 비용 부담과 간호인력 확충에 따른 인건비 부담을 지원하는 수가보상체계 마련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국비지원 방식으로 추진하는 '음압병상 전용병동 건립사업'만 봐도 알 수 있다.

지원대상으로 선정된 의료기관에는 음압병상 전용시설 설치비가 지원되지만 이후 운영에 드는 인건비 지원은 없기 때문에 시설만 갖춰 놓고 무용지물로 전락하는 건 아닌지 우려가 높다. 

포괄간호서비스 확대 역시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시범사업이 추진되고 있지만 많은 병원에서 간호인력을 확충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병원 감염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감염관리실' 설치 대상 병원을 현재 200병상 이상에서 150병상 이상 병원으로 확대하고, 감염전문의사 등 인력기준을 상향조정하는 방안 역시 결국엔 중소병원에 비용 부담으로 돌아간다.

감염관리실 설치 의무만 강화할 게 아니라 병원의 감염관리에 따른 적절한 수가 보상체계가 마련돼야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소극적이다.

이미 메르스 사태를 통해 병원에 지급되는 감염관리 수가가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열악한 수준인지 드러났다.

중환자실을 운영하는 200병상 이상 병원에서 감염내과 및 감염소아과 전문의가 상근하는 경우 지급되는 '감염전문관리료'는 입원환자 1명에 한해 30일의 입원기간 동안 1회에 한해 청구할 수 있다.

그 보상비용이 약 4,400원 수준이다. 환자 1명당 하루 150원 꼴이다. 

의료진이 수술실에 출입할 때 손과 팔의 살균소독으로 사용하는 포비크린브러쉬액의 경우 5~6회 정도 사용할 수 있는 30ml용량의 가격이 1200~1300원으로, 1회 살균소독에 5ml를 사용할 드는 비용이 200원이 조금 넘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터무니없는 수가보상 체계다.

감염관리 수가보상체계를 개선하지 않고 병원의 감염관리실 설치 의무만 강화할 경우 실효성 없는 형식적인 규제로 전락할 것이란 건 불을 보듯 뻔하다. 

"메르스 사태 핑계로 의료기관에 부담을 떠넘기는 이상한 규제만 느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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