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의료계 등 우려 표명…‘대통령 직속 보건의료개혁특위’ 구성 촉구

[라포르시안]  정부가 확정한 '국가방역체계 개편방안'이 그동안 시민사회와 의료계 등이 수차례의 토론회를 통해 제시한 종합적이고 거시적인 방안이 아니라 단편적인 수준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1일 오후 황교안 국무총리 주재로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열고 신종감염병 발생에 대비해 질병관리본부가 국가 방역을 책임지고 독립적 권한을 행사하는 것과 의료환경 개선을 골자로 하는 '국가방역체계 개편방안'을 확정했다.  

개편방안의 핵심 질병관리본부장을 실장급에서 차관급으로 격상하고, 정규 역학조사관 확충, 음압격리병상 확대와 의료전달체계 및 병원문화 개선을 위한 ‘진료의뢰수가’ 마련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환자단체와 소비자단체, 시민단체, 의료계, 노동계, 학계 등이 참여해 구성한 '메르스 극복 국민연대 준비위원회'(이하 준비위)는 정부의 개편방안에 거시적 대안제시가 빠져 있다는 지적을 제기했다.

준비위는 1일 성명을 통해 "정부가 발표한 국가방역체계 개편방안에는 그동안 많은 전문가들과 여러 시민 사회단체에서 제기한 바 있는 국민건강의 백년대계 차원에서의 ‘거시적 대안제시’가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준비위는 "질병관리본부를 차관급으로 격상시키겠다고 했는데 단순히 기관장의 자리 하나를 승격시켜 정부가 기대하는 대로 전문성과 자율성이 확보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며 "고질적이고 폐쇄적이라 할 수 있는 공무원조직에서 부족한 전문성과 자율성을 이식해 배양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이고 엄격한 정부조직법에 의거해 조직 시스템과 인사 및 예산권을 부여하는 것이 옳다"고 지적했다.

 준비위는 또 "미국의 CDC(질병통제예방센터)와 같은 기능과 역할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정부조직법을 손질해 현 본부 조직을 청으로 격상시키는 동시에 개정된 정부조직법에 의거한 인사권과 예산권을 개편된 조직의 손에 쥐어 주어야만 비로소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전문성과 자율성이 확보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승격하는 동시에 직접 지휘를 받는 광역단위의 산하 지역거점조직을 둬야만 유사시 지방정부와의 유기적 연계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게다가 질병관리본부에 모든 국가방역의 책임을 지우고 그에 합당한 권한이 부여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더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표명했다.

준비위는 "'방역에 대해서는 모든 위기단계에서 질병관리본부가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도록' 한 무한 책임 부여와 생색내기 형태의 찔끔 권한부여가 서로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한쪽으로만 치우친다면 전문성과 자율성은커녕 산더미 같은 방역 업무의 스트레스에서 무게중심을 잃고 좌초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우려했다.  

국가 차원의 '감염관리예방기금' 조성 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점도 문제점으로 꼽았다.

준비위는 "그동안 전문가 그룹과 다양한 시민사회단체에서 주장해 온 대로 이른바 국가 차원의 ‘감염관리예방기금’이 조성되지 않고서는 국가방역체계를 근본적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실행력에 한계가 올 것임이 자명하다"며 "향후 예상되는 제2, 제3의 감염병 발병 사태를 대비해 지속 가능한 튼튼한 국가방역체계 구축을 위한 중장기적 국가 감염관리 기금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정진엽 신임 보건복지부 장관이 취임한지 며칠 만에 이런 대책이 수립되면서 장관이 관련 내용을 충분히 검토할 시간이 없었다는 점도 지적했다.

준비위는 "이번 대책발표가 국가방역체계를 책임질 신임 복지부장관이 충분히 내용을 검토하고 내놓은 방안인지 의문"이라며 "정부는 이번 개편안과 맞물려 메르스 사태로 촉발된 국가 방역체계 문제를 일회성, 단편적 대안으로만 그치지 말고 조속한 시일 내에 시민·소비자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 민관 합동 형태의 (가칭)'대통령 직속 보건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중장기적 대안마련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전국보건의료노조는 별도의 입장을 내고 임기응변식 처방이 아닌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메르스 극복 대책 수립을 촉구했다.

보건의료노조는 1일자 논평을 통해 "이번 국가방역체계 개편안이 메르스 사태 이후 허약한 국가방역체계를 개선하고, 음압격리병상을 확충하기로 한 것, 의료전달체계 확립을 위해 ‘진료의료수가’ 신설 등은 긍정적인 측면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의 발표에는 메르스 사태 확산 원인과 초기대응에 실패해 국가방역체계가 뚫린 점, 역학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것에 대한 진상규명이 빠져 있다"며 "또한 질병관리본부장을 차관급으로 격상시키겠다고 했는데 단순히 기관장의 자리 하나를 승격시키는 것으로 전문성과 자율성이 확보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메르스 사태를 통해 입증된 것처럼 감염병 유행시 거점치료기관 역할을 수행할 공공병원에 대한 지원 대책이 빠져 있다는 점도 지목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정부의 개편안에는 공공병원을 감염병 전문병원으로 지정하고 활용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으며, 국립중앙의료원과 권역별 감염병 전문치료병원을 3~5곳만 지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감염병 대응 대책이라 할 수 없다"며 "정부는 제2의 메르스 사태를 막기 위해 지방의료원과 적십자병원과 같은 공공병원에 감염병 치료를 위한 시설, 장비, 인력 확충과 관리 및 운영비 지원을 통해 공공의료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메르스 사태에서 지적되었던 병원내 감염을 줄이기 위한 간호인력 확보를 통한 '보호자없는 병원' 실현, 메르스 피해에 대한 실효성 있는 구제 대책 등을 마련할 것을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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