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공단 ‘사전 급여제한’ 확대 운영으로 수급자 자격확인 부담 커져…체납보험료 납부 효과도 미미

[라포르시안]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작년 7월부터 '건강보험 부정수급 방지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부정수급 방지대책은 의료기관에서 환자를 진료하기 전 건강보험공단을 통해 전산으로 수급자 자격 여부를 확인토록 해 무자격와 보험료 고액·장기 체납자((연소득 1억원 또는 재산 20억원 초과자 대상)는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도록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공단은 이 대책을 도입한 이유가 "납부 능력이 있는 고액·장기체납자에게 진료비 전액을 부담하도록 불이익을 줌으로써 성실납부자와의 형평성을 제고하는 동시에 체납보험료 납부를 유도해 건강보험 재정누수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작년 7월부터 사전 급여제한제도가 시행된 이후 1년이 지났다. 그런데 따져볼 사항이 있다. 

이 대책이 정말로 보험료 납부 능력이 있는 고액·장기체납자로 하여금 체납보험료 납부를 유도하는 효과가 있는냐는 점이다.

지난 1년간 부정수급 방지대책 시행을 통해 얻은 체납보험료 납부 성과가 너무 미미한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최근 전국의사총연합이 건보공단에 요청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작년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요양기관이 고액·장기체납에 따른 급여제한자를 사전에 확인해 전액본인부담으로 청구한 907건 중 체납보험료를 완납내 공단부담금을 환급해준 대상자는 29명(51건)에 불과했다.

요양기관의 수급자 자격 확인 과정에서 사전 급여제한 대상자로 확인돼 전액본인부담으로 진료를 받은 후 극히 일부만이 체납보험료를 낸 셈이다.

이와 달리 건보공단이 작년 6월 고액·장기체납자 1,749명에게 우편으로 급여제한통지서를 발송한 결과, 180여명(10.3%) 이상이 체납보험료를 납부한 것으로 파악됐다.

▲ 건강보험공단이 전국의사총연합에 공개한 자료.

건보공단이 올해 8월부터 사전 급여제한 대상자 기준을 '연 소득 1억원 또는 재산 20억원 초과자'에서 '연 소득 2천만원 또는 재산 2억원 초과자'로 확대 시행하면서 사전에 급여제한통지서를 발송한 결과를 봐도 부정수급 방지 대책이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는 요양기관의 수급자 자격 확인보다는 공단의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공단에 따르면 올해 8월부터 사전 급여제한 대상자 기준을 확대하기 전 예정자 2만9,309명에게 미리 우편으로 안내문을 발송한 결과, 1,815명(6.2%)이 체납보험료를 납부했다.

물론 급여제한통지서가 보험료를 고액·장기체납하면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도록 사전에 차단하는 대책이 시행된다는 점을 알렸기 때문에 이런 효과를 봤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고액·장기체납자 1,494명 중에서 지난 1년간 병원을 찾아 진료(907건)를 보고 사전 급여제한 사실을 확인한 후 체납보험료를 납부한 경우가 29명에 불과하다는 건 너무 미미한 성과다.

의료기관에서 건강보험 자격조회를 하고 사전 급여제한제도를 안내하는 행정부담이 만만치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굳이 이걸 해야할까 싶다. 

전의총은 "요양기관이 아무리 보험자격을 사전에 확인해 본인부담 진료를 하더라도 급여제한자의 체납보험료 납부에 미치는 효과가 거의 없고 공단의 급여제한통지서 발송이 더욱 효과적이었음을 잘 보여준다"며 "공단은 이 대책을 폐기하고 법에서 정한 보험료 체납관리 및 급여제한, 부당이득금 환수 업무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적했다.

보험료 관련 민원처리 고충 잘 아는 공단, 병원에 부담 떠넘겼다?

의료계는 이 대책이 시행되면 의료현장에서 환자와 의사간 자격확인을 둘러싼 갈등이 발생하고 행정업무 부담이 늘어날 것을 우려했다.

작년 7월 사전 급여제한제도 시행을 앞두고 대한의사협회와 의원협회 등은 "부정수급 대책은 부정수급에 대한 책임을 의료기관에 일방적으로 떠넘기고자 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요양기관이 내원하는 모든 환자의 자격을 조회해 무자격자와 급여 제한자를 가려내도록 하는 것은 공단이 해야 할 자격관리 업무를 요양기관에 떠넘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반발했다.

의료계의 반발 속에 제도가 시행됐고, 그나마 올해 7월까지는 사전 급여제한 대상자가 1,500여명에 불과해 의료현장에서 이를 둘러싼 갈등이 표면화되지 않았다.

▲ 제작: 라포르시안

하지만 8월부터 적용기준이 낮춰지면서  사전 급여제한 대상자가 2만7,000명 이상으로 늘었다. 공단이 예고한 대로 내년에 적용기준이 또 완화되면 사전 급여제한 대상자는 훨씬 더 큰 폭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그럴 경우 의료현장에서 환자와 의료진 간에 수급자 자격확인과 급여혜택 제한을 둘러싼 갈등이 표출될 수밖에 없다.

병원에는 상당한 업무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경우의 문제점과 고충을 가장 잘 아는 곳이 바로 건보공단이란 점이다.

그 이유는 국내 공공기관 중 대고객 불만 민원을 가장 많이 처리하는 곳이 건보공단이기 때문이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건강보험 고객센터는 현재 전국 7개 센터 1,500여 명의 상담사가 연간 3,600만 건에 이르는 전화 민원을 처리하고 있다.

공단의 말을 빌리자면 "이러한 조직규모와 처리건수는 공공기관 중 최대"이다.<관련 기사:  건보공단 고객센터 ‘규모·처리건수 공공기관 중 최대’…자랑할 일인가 >

건보공단에 이렇게 많은 민원이 쏟아지는 건 불합리한 건보료 부과체계에 그 원인이 있다.

건보공단이 국회에 제출한 '민원업무 발생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1년 한해 동안 발생한 건강보험 관련 민원은 7759만9,000건에 달했고, 그 중에서 자격, 부과, 징수 등 보험료 관련 민원이 82%를 차지했다.

단일보험자를 두고 있지만 보험료는 직장과 지역가입자별로 다원화된 부과기준을 적용하다보니 형평성과 공정성 시비가 끊이질 않는다. 보험료 부과기준에 대한 불만으로 건보료를 체납하는 가입자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연히 합리적 부과체계를 마련해 보험료 관련 민원을 줄이고, 납부능력이 있는 고액·장기체납자로부터 보험료를 징수하는 건 건보공단이 해야 할 일이다.

환자를 진료하기 전 수급자 자격확인을 통해 고액·장기체납자의 체납보험료 징수를 유도하는 건 공단의 업무를 의료기관에 전가한 것이라고 의료계가 반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과적으로도 공단이 감내해야 할 보험료 체납자와의 갈등과 다툼을 의료기관의 부담으로 떠넘긴 꼴이다.

대한의원협회는 지난해 사전 급여제한제도 시행에 앞서 "무자격자와 급여제한자에게 급여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유와 불가피하게 본인부담금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를 납득하지 못하는 환자와의 마찰은 불가피하다. 이 과정에서 의료기관과 환자 사이의 신뢰관계가 깨짐으로써 자칫 환자의 치료에도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공단이 해결해야할 민원을 왜 요양기관이 해야하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건보공단이 답을 해야할 것 같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