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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르시안] 2013년 4월, 보건복지부는 사우디아라비아 보건부와 보건의료 6개 분야에 대해 포괄적으로 협력하는 내용의 합의를 체결했다.

양 국간 협력체결에 대해 복지부는 ‘한-사우디 의료 쌍둥이 프로젝트’가 본격 추진된다고 홍보했다.

복지부의 설명에 따르면 한-사우디 의료 쌍둥이 프로젝트는 한국의 우수한 의료시스템을 쌍둥이처럼 사우디에 똑같게 만드는 사업이다.

이를 위해서 사우디 보건부 산하 킹파드 왕립병원(KFMC)에 의료시설을 건립하고, 여기에 한국내 주요 병원의 의료기술과 시스템을 전수키로 합의했다.

복지부는 "사우디 보건부가 한국 의료기술, 의료인력 및 서비스, IT시스템 등 관련 산업과 한국인의 태도 등을 우수하게 평가하고,우리의 의료시스템을 모방ㆍ이식해 자국의 보건의료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는 데에 한국과 협력을 진행하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양국 보건부가 포괄적 협력 합의를 한지 2년이 지났지만 의료 쌍둥이 프로젝트의 가시적인 성과를 창출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한국과 사우디 의료 분야에서 쌍둥이처럼 닮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사우디는 중동호흡기증후군 코로나바이러스(MERS-CoV) 감염 환자가 최초 발생한 국가다. 전 세계에서 메르스 발병 건수가 가장 많은 국가이기도 하다.

한국은 지난 5월 20일 첫 메르스 확진 환자가 발생한 이후 7월 말까지 2개월이 넘는 유행을 겪으면서 186명의 감염자가 발생했고, 그 중에서 36명의 사망자를 냈다. 사우디에 이어 메르스 발병 건수가 두 번째로 많은 국가가 됐다.

한국의 메르스 사태는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한 명의 감염자가 사흘간 머물면서 수십명한테 바이러스를 옮기게 대규모 2차 유행을 초해했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의료전달체계와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환자쏠림 현상, 병원의 취약학 감염관리와 그런 상황을 초래한 저수가 체계 등이 맞물리면서 '국가방역체계가 뚫린' 사건이었다.

메르스 사태로 한국의 의료체계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병폐가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평가가 많았다.  

사우디에서도 메르스 확산의 주된 요인이 병원내 감염이었다. 그렇지만 한국처럼 특정 병원에서 대규모 감염자가 발생한 사례는 없었다고 한다.

1개 의료기관에서 23명이 감염된 사례가 가장 규모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사우디에서 다시 메르스가 유행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사우디에서는 지난 3~4월 메르스 환자 발생이 주춤하면서 진정세를 보이다가 5월부터 다시 급증하기 시작해 8월에는 1~19일 사이 60명의 감염자가 발생했다.

주목할 점은 사우디의 한 병원에서 발생한 대규모 감염 사례다.

사우디 보건부에 따르면 수도 리야드의 대형병원인 킹압둘아지즈메디컬시티의 응급병동에서 최근 며칠 동안에 46명의 메르스 감염자와 20명의 의심환자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킹압둘아지즈메디컬시티의 응급병동이 폐쇄됐다. 한국에서 발생한 메르스 사태와 닮은 꼴이다.

사우디 한 병원에서 대규모 메르스 감염이 발생했다는 소식에 퍼뜩 떠오르는 게 있다. '혹시 의료 쌍둥이 프로젝트라는 게 이런 거였나?' 하는 생각이다.

 

사우디는 의료인프라가 상당히 부족하다. 그래서 사우디 정부 차원에서 5개의 대규모 의료단지인 메디컬시티 건설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킹압둘아지즈메디컬시티 역시 그런 취지로 조성된 메디컬시티다.

사우디 정부의 메디컬시티 구축 사업을 계기로 최근 수년간 한국 병원과 의료업체들의 진출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분당서울대병원은 킹압둘아지즈메디컬시티 메인 병원에 의료정보시스템 구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의 의료시스템을 사우디에 그대로 이식하는 '의료 쌍둥이 프로젝트'도 그 연장선상이다.

문제는 한국 의료시스템이나 병원의 외관만 보고 내부적으로 안고 있는 운영상의 문제를 못 본채 쌍둥이처럼 한국 병원시스템을 흉내냈다는 큰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사우디 보건부 관계자들이 한국을 방문해 의료시스템을 견학도 했다. 그렇게 해서 한국 병원들처럼 '대규모 병상'으로 짓고, 감염관리에 취약한 병실이나 응급실 구조를 그대로 본떠 사우디 의료에 이식하다가는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의 14번 환자'와 같은 슈퍼전파자의 등장을 막기 어렵다.

킹압둘아지즈메디컬시티의 응급병동에서 발생한 대규모 메르스 감염이 그런 징조는 아닐까 심히 걱정스럽다.

메르스 사태를 겪은 한국 정부가 국가방역체계를 개편한다고 하니 ‘한-사우디 의료 쌍둥이 프로젝트’는 좀 더 지켜본 후 하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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