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방역체계 개편 논의…“지금의 복지부·질병관리본부 조직으론 적절히 대응하기 힘들어”

[라포르시안]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보건복지부에 보건의료 분야만 전담하는 '보건부'를 별도로 독립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졌지만 이를 둘러싼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지난 18일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 주최로 열린 '국가방역체계 개편 방안 관련 공청회'에서 의료계는 보건부를 분리 독립하거나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승격해 전문성을 강화하고 전문인력을 배출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공청회 발제를 맡은 이원철 가톨릭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메르스와 같은 감염병 유행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중앙부처가 전문성과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격상해 책임지고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질병관리청으로 격상하면 감염병뿐만 아니라 생물테러와 만성병은 물론 사고·중독에 의한 공중보건 문제도 함께 다룰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따른 발제자인 서재호 부경대 행정학과 교수는 "감염병 위기대응의 핵심은 컨트롤타워 문제가 아니라 분권화를 통한 현장 통제관의 권한과 책임, 역량확보가 핵심"이라며 "전국 단위에서 급발적으로 발생하는 감염병의 통제와 관리를 위해서는 질병관리본부장을 차관급으로 격상시켜 조직 안팎의 통제와 조정력을 우선적으로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차관급의 질병관리본부장에게 독자적인 인사권과 예산권을 부여할 필요가 있으며, 순환보직의 한계를 극복하고 방역 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해 '방역' 직렬을 신설해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토론에서도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병원협회 대표로 토론에 나선 박창일 건양대의료원장은 "이번 메르스 사태로 드러난 문제점은 정부와 지자체에 훈련된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현재의 질병관리본부의 조직과 기능으로는 다양한 감염병 발생에 적절히 대응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박 의료원장은 "바람직한 방안은 이제 보건복지부에서 보건부를 분리해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를 정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현호 의사협회 메르스대응센터 총괄기획팀장은 "이번 메르스 사태는 신종감염병과의 큰 전쟁이었다. 인명피해도 적지 않고, 국민불안과 경제적 피해도 상당했다"면서 "제대로 된 대응체계를 갖추려면 보건부 독립과 질병관리본부 승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조 팀장은 "의협 주장대로 국무총리 산하 '국가감염병예방관리선진화 위원회'를 구성, 의료계와 정부가 공동으로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중장기 국가감염병예방관리 계획을 추진해야 한다"는 견해도 덧붙였다.

정해관 성균관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서재호 교수가 발제를 통해서 한 주장에 반론을 제기했다.

정 교수는 "질병관리본부에 인사권과 예산권을 주되 조직은 그대로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게 타당하느냐"고 반문하면서 "질병관리본부의 조직을 그대로 두자는 주장을 이해할 수 없다"고 쏘아붙였다.

그는 "소 잃고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는데 이번에는 소값이 얼만지 따져야 한다"며 "이번 메르스 사태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10조가 넘는다고 한다. 지금 당장 수천억을 투입해 인프라와 조직을 강화한다면 더 큰 손해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정형선 한국보건행정학회 집행이사(연세대 교수)는 "보건부 분리안은 우리나라 보건의료제도 환경에 맞지 않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처럼 대부분의 의료기관이 민간소유인 경우 정부의 역할이 한정되어 있는데, 이를 위해 한 개의 부처가 존재할 필요성이 약하다"면서 "보건부가 분리된 소규모의 조직이 되면 그야말로 힘없는 허약한 부처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5년도 복지부 예산 51조9천억 가운데 41조9천억원이 복지 예산이고, 보건예산은 9조9천억원뿐이며, 그 중에서도 순수 보건의료 예산은 2조2천억원에 불과하다는 점을 들어 보건부 독립이 오히려 보건의료 정책과 예산기능만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정 교수는 "다만 보건복지부에 복수차관을 두는 것과 질병관리본부를 차관급 조직으로 승격하자는 주장에는 찬성한다"고 덧붙였다.   이창원 한국조직학회 자문위원(한성대 교수)도 "감염병 위기 대응을 위한 공중보건 거버넌스 체계를 비롯한 정부조직 개편 등이 실제로 감염병 대응에 어느정도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요구된다면서 "오히려 정부 기능 확대에만 초점을 맞출 경우 부처간 정보 공유와 칸막이 해소를 통한 기관 간 협력을 취약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권준욱 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정형선 교수와 서재원 교수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권 정책관은 "초기방역 실패에 대해 반성해야 할 부서라는 점에서 생각해보면 질병관리본부장을 차관급으로 격상하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라고 말해 보건부 독립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란 의견을 제시했다. 질병관리본부장이 차관급으로 격상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역학조사관을 양성하려면 훈련조직과 부서가 필요하고, 국립검역소의 취약한 인력과 장비를 확충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