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리포트] 제16회 환자샤우팅카페 열려…당직의료인제도 개선·‘진료빙자성추행방지법’ 제정 촉구

[라포르시안]  ‘이소노미아(isonomia)’는 그리스어에서 정의(justice)라는 의미를 가지며 법 앞에서의 평등을 의미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법 앞에서 평등하며 법에 의해 보호 받을 권리를 가진다. 지난 12일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진 두 가족이 들려준 이야기는 우리가 부당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때로는 법에 의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을 알려주었다.   

환자단체연합회는 지난 8월 12일 저녁 7시 시청역 근처 ‘서울시NPO지원센터’에서 제16회 ‘환자샤우팅카페’를 개최했다. 이번 ‘환자샤우팅카페’는 방송인 최현정 씨가 진행하고, 권용진 국립중앙의료원 기획조정실장, 이인재 변호사,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가 ‘solution 자문단’으로 참여했다.     

제16회 환자샤우팅카페는 ‘야간 응급 입원환자 늦장대응 사망사건’과 ‘한의사 진료 빙자 성추행 의혹사건’을 주제로 2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보건의료와 관련한 제도에 대해 중요한 쟁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두 사건은 제도가 있어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거나 제대로 된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피해를 입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두 출연자는 떠올리기 힘든 기억이었을 텐데도 자신들과 유사한 사례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간절한 마음에 용기를 내어 샤우팅 자리에 섰다. 

야간 응급 입원환자 늦장대응 사망사건

2년 전부터 우울증 증세를 보인 딸이 142병상 규모의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고 있던 어느 날, 아버지 구성기씨는 급작스러운 비보를 들어야 했다.     

당시 27세였던 구씨의 딸은 2013년 7월 27일 새벽 2시 반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좋지 않다며 간호사에게 극심한 고통을 호소했다. 그러나 간호사는 적절한 처치를 하지 않고 환자를 독방으로 옮겨 방치했다.

▲ 야간 당직의료인제도의 개선을 요구하기 위해 샤우팅 하고 있는 피해자 구효정(당시 27세)씨의 아버지 구성기 씨 (출처: 환자단체연합회)

환자가 독방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며 병상에서 떨어지기도 하는 등 고통을 겪고 있었지만 간호사는 새벽 3시 25분이 되어서야 119 구조대와 당직의사를 불렀다. 환자는 종합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치료시기를 놓쳐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사인은 급성심장사였다. 당직의사는 환자가 사망한 이후에서야 병원에 도착했다. 

아버지 구성기씨는 “일정 병상 이상의 병원은 당직의사가 상주하도록 되어 있음에도 당일 당직의사는 병원에 없었다”며 “당시 병원에는 응급처치를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 딸이 사실상 방치된 상태였음을 안타까워했다. 심지어 간호사는 당직의사를 문자로 호출했고 그 과정에서 문자가 지워지는 등 긴급한 상황인데도 시간은 계속 지체되었다. 그는 “긴급한 상황임에도 당직의사를 전화가 아니라 문자로 호출하는 행동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샤우팅 하는 내내 목이 멘 상태였던 그는 만약 당직의사가 병원에 상주하고 있어서 적절한 응급처치가 이루어졌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딸을 떠나보내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차오르는 슬픔을 참아야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딸 같이 억울하고 불행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로 샤우팅을 마쳤다.

▲ 고통을 견디다 못해 간호사에게 도움을 청하러 독방에서 나왔으나 몸을 가누지 못하는 구효정 씨 (출처: 환자단체연합회)

이날 샤우팅카페에 참석한 자문단은 이번 사건으로 드러난 ‘야간 당직의료인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하며 심도 있는 논의를 펼쳤다. 자문단으로 참석한 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누구라도 당시와 같은 상황에 있었으면 죽었을 것”이라며 “야간당직제도가 있어도 작동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꼬집어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제도가 잘 작동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정부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자”고 제안했다.

이인재 의료전문 변호사는 “중요한 쟁점은 입원 중에 응급처치를 제대로 받지 못해서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을 누가 질 것이냐”는 점이라고 분석했다. 이 변호사는 “입원 약정서를 체결할 때 의료진은 응급처치를 할 의무가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응급처치를 받을 수 없다면 입원할 이유가 없다”며 이 부분에 대한 문제제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권용진 국립중앙의료원 기획조정실장은 “큰 틀에서 보면 정신과 병동의 환자에 대한 내과적인 서비스가 부족한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 실장은 “정신과 환자가 내과적 증상을 나타내도 정신적인 문제로 생각하여 제대로 된 처치가 되지 않는 것이 문제일 수 있다”고 지적하며 “정신과 환자도 내과적 질환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당직의사가 항시 대기해 즉각적인 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의사 진료 빙자 성추행 의혹사건

두 번째 사연을 샤우팅 하기 위해 자리에 앉은 민서(16) 양은 이 자리에 앉기까지 많은 고민과 용기가 필요했다. 피해자인 본인이 직접 말하기 힘든 아픈 기억을 들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이 자리에 서게 된 이유는 자신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세상에 외치고 싶어서라고 했다.

민서는 중학교 1학년이던 2013년 8월 교통사고 후유증을 치료하기 위해 한의원을 다니게 되었다. 엄마와 함께 처음 방문했던 날 한의사는 침을 놓거나 뜸을 뜨는 등 여느 한의원에서 받을 수 있는 치료를 했다. 그런데 혼자 한의원을 찾게 된 날 한의사는 바지를 직접 벗겨주며 속옷 안으로 손을 넣었다. 한의사는 수기치료라고 했다. 민서는 기분이 나빴지만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다. 

한의사는 민서에게 매번 누구랑 같이 왔는지를 묻고 혼자 온 날이면 어김없이 바지를 벗기거나 치마를 들쳐 동일한 행위를 일삼았다. 총 16~17번의 치료 중 민서 혼자 찾아갔던 7번의 치료에서 ‘수기치료’라는 명목으로 성추행으로 느껴질 만한 행위가 있었던 것이다.

이후 민서는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매일 이불만 뒤집어쓴 채 한의원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한의원을 가면 엄마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날까봐 두렵기도 했다. 일상생활이 힘들어지자 우울증이 찾아왔다. 우울증 치료도 받아야 해 학교 수업을 계속 빠지게 되니 학교생활도 힘들어졌다.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도 당했다. 너무 힘들어 몇 차례의 자해까지 시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민서는 엄마에게 그 동안 있었던 일들을 털어 놓을 수밖에 없었고, 한의사를 형사고소했다. 판사도 민서에게 한의사가 잘못한 거라고 힘을 내라고 했지만 법원은 결국 무죄로 판결했다. 민서는 “법이 나를 지켜줄 거라 생각했고 그렇기 때문에 힘들어도 참아냈다”고 했다. 하지만 믿었던 법원에서 한의사의 잘못이 아니라고 하니 배신감까지 들었다고 했다.

민서는 “잘못한 사람은 한의사고 저는 잘못한 게 없는데 제가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저 같은 피해자가 안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서 샤우팅 자리에 나오게 되었다. 이런 일을 당하더라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밖으로 나오기로 했다”고 말했다.     

▲ ‘solution 자문단’은 민서가 겪은 고통에 대해 어른으로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있다. (출처: 환자단체연합회)

민서의 가슴 아픈 사연을 들은 자문단들은 한결같이 아직 어린 민서에게 법이 지켜주지 못하는 사회를 물려준 것 같아 어른으로서 부끄럽고 미안하다고 했다.

권용진 실장은 “한의사가 행한 수기치료가 한의학 이론으로 정당화 되더라도 상처가 될 수도 있는 행위를 사춘기 소녀에게 동의도 없이, 심지어 보호자의 동의도 없이 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의료인으로서 당연히 비윤리적인 행위이며 법적으로도 다투어야겠지만 한의사협회 윤리위원회에 해당 한의사를 제소하고 그 결과에 대해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인재 변호사는 민서에게 “법조인으로서 무죄로 판결난 것에 대해 부끄럽고 대신 사과한다”고 말하며 “의료행위를 빙자해 성추행이 될 수도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은 일반인이 하는 것보다 더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기종 대표는 “우리 사회가 민서와 같은 피해자를 앞에 나와서 이야기 하도록 한 현실이 안타깝다”며 “빈크리스틴 투약 오류 사고로 만들어진 ‘종현이법’(환자안전법)처럼 민서를 위한 법이나 제도를 만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환자단체연합회는 이 일을 계기로 진료실에서 의료진이 환자의 민감한 신체부위를 진료할 때에는 환자에게 진료할 신체부위와 진료이유, 원치 않으면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해 의무적으로 사전에 고지하고 제3자가 배석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법 제정을 준비하고 있다.

▲ 환자단체연합회는 ‘진료빙자성추행방지법(민서법)’ 제정을 위한 1만 명 문자 청원 운동을 시작한다. (출처: 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이 법이 제정된다면 의료인의 정당한 진료를 보장하고 환자의 성추행 오해도 방지할 수 있어 의료인과 환자가 서로를 더욱 신뢰할 수 있는 의료환경이 조성될 것”이라며 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환자단체연합회가 여는 ‘환자샤우팅카페’는 이처럼 환자나 환자가족들이 겪은 억울하거나 가슴 아픈 사연을 꺼내 이야기하는 자리로 외치고 싶은 환자들과 들을 준비가 된 사람들은 누구나 올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최현정 아나운서가 진행하고 국립중앙의료원 권용진 기획조정실장, 이인재 변호사, 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가 자문단으로 참여한다. ‘환자샤우팅카페’의 모든 활동 기록은 공식 홈페이지(http://www.shoutingcafe.kr)에서 볼 수 있으며 누구나 참여 및 신청을 할 수 있다.

 


[알립니다] 이 글은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발행하는 미디어 <환자리포트>의 신천우 기자가 작성했습니다. 환자리포트는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환자를 똑똑하고 당당하고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목표 아래 창간한 미디어로, 전문기자는 물론 환자나 그 가족 등이 함께 만드는 참여형 환자미디어입니다. 본지에서는 앞으로 환자리포트에서 제공하는 기사 전문을 정기적으로 전재할 예정입니다. 환자리포트 바로 가기.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