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보건의료 노동자 노동실태조사’ 결과…“열악한 노동환경은 심각한 인력 부족 탓”

[라포르시안]  병원에 근무하는 보건의료노동자의 열악한 근무환경이 개선은커녕 점점 고착화되고 있다.

주40시간제가 도입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병원노동자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이다.

사회문제화 되고 있는 서비스산업 종사자들이 겪는 감정노동 문제도 심각한 것으로 파악됐다. 병원 현장에서의 발생하는 이런 문제의 근본 원인은 인력부족 때문이다.  

전국보건의료노조는 지난 11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2015년 보건의료 노동자 노동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날 발표된 내용은 지난 4월~5월 전국 83개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보건의료노동자 1만8,629명(응답자 중 여성이 81.9%)이 참가한 설문조사 결과 분석한 것이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병원노동자들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0.6시간으로,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49.8시간으로 조사됐다. 우리나라 임노동자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41.9시간)과 비교해 7.9시간 더 길었다. 

주목할 대목은 주당 평균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전체 임금노동자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이 2004년 3월 47.8시간에서 2015년 3월 현재 41.9시간으로 감소했다.

반면 병원노동자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2008년 45.8시간, 2009년 46.2시간, 2010년 46.4시간, 2011년 46.6시간, 2012년 46.6시간, 2013년 46.9시간, 2014년 48.9시간, 2015년 49.8시간으로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

병원의 특성상 3교대 근무가 이뤄지고 있는데 주간보다 밤근무자의 노동시간이 훨씬 더 길었다.

주간근무자의 1일 평균 근로시간은 9.7시간, 저녁근무자의 1일 평균 근로시간은 9.1시간인데 비해 밤근무자의 1일 평균 근로시간은 13.1시간에 달했다.

이렇게 법정노동시간을 뛰어넘어 장시간노동이 만연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법적 기준에 부합하는 보상은 18.1%에 불과했다.

병원 내에서 장시간 근무가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근본 원인은 인력부족에 있다.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10명 가운데 8명(80.5%)이 '인력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부서 및 근무지에서 어느 정도 인력이 부족한지를 묻는 질문에는 현재 인력에 비해 평균 2.5명(11.3%)이 더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병원의 인력부족은 건강악화(65.7%), 업무스트레스(54.2%), 질병위험 노출(67.6%), 휴가미사용(67.5%) 등 병원노동자의 노동조건 악화를 초래한다고 우려했다.

특히 의료서비스 질 하락(81.1%), 친절 서비스 미흡 (80.6%), 의료서비스 미제공(74.1%), 의료사고 노출 경험(47.4%) 등 환자안전과 의료공공성, 의료서비스의 질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목했다.

장시간 노동과 인력부족은 직장생활 만족도를 떨어뜨리고, 이직을 부추긴다.

실제로 병원노동자들의 평균 근속기간은 9년에 불과했고, 간호사의 평균 근속기간은 이보다도 짧은 7.4년에 그쳤다.

올해 조사에서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는 응답자는 2014년 54%보다 8%p나 증가한 62%나 됐다. 이직을 고려하고 있는 이유로는 절반 가량이 ‘직무불만&노동강도 등 일이 힘들어서’(49.3%)라고 답했다.

인력부족으로 인해 휴가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밥조차 제대로 먹지 못한 채 일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실태조사에서는 '간호사들은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마신다'고 하는 병원 현장의 얘기가 결코 과장되지 않았다는 게 고스란히 확인됐다.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2014년 연차사용률은 66.2%(17.6일 중 11.6일 사용)에 불과했고, 근로기준법상 연차 사용은 허가제가 아닌 사전 통보제임에도 불구하고 연차휴가가 강제지정(12.4%)되거나 반 강제지정(43%) 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간호사의 경우 1일 식사시간 및 휴게시간은 30.2분이고, 아예 밥을 먹지 못하고 결식하는 날도 월 평균 5.5회나 됐다.

병원노동자들의 감정노동 수행 강도도 상당히 셌다.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감정노동 수행 80% 이상’이 28%나 됐고, ‘업무 소진 80% 이상 증상’이 13.1%에 달했다.

환자 및 보호자를 대할 때 솔직한 감정을 숨기고 일하거나(71.5%), 자신의 기분과 상관없이 웃거나 즐거운 표정을 짓고(67.2%), 환자 및 보호자를 응대할 때 실제 기분이 되도록 노력(54.8%)하고 있다고 답했디.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힘들 정도로 심각한 '번 아웃'(Burn out) 상태에 빠진 병원노동자도 적지 않았다.

이번 조사에서 본인의 업무가 병원 내방자/내원자(환자-보호자)를 대상으로 하기에 매우 힘든 상황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40.4%에 달했다. 환자나 보호자를 상대하는 현재 업무가 좌절감(25.1%)과 지겨움(24.3%)을 주고 있다는 응답 비율도 높았다.

보건의료노조는 "병원노동자의 근로조건과 업무만족도가 환자안전과 의료서비스의 질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장시간노동, 열악한 근무조건, 높은 감정노동 수행정도, 소진, 낮은 업무만족도, 높은 이직의도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며 "이번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환자존중 직원존중 노동존중 병원 만들기 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지현 위원장은 "26년전 현장 간호사로 일할 때 밥을 6분 만에 먹었다. 지금도 현장 조합원의 노동조건 환경이 바뀌지 않았다"며 "예전에 의사가 간호사를 폭행했던 사례를 접하며 노동조합 활동을 처음 시작하게 됐는데 그러한 일들이 지금 현장에서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는 신념으로 올해 3대 캠페인을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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