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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화의 Book소리]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교차점에 서있던 남자 이야기

[스티브 잡스, 월터 아이작슨 지음/안진환 옮김(민음사 펴냄)]


지난 10월 초 애플이 발표한 신제품이 새로운 기능을 탑재한 아이폰5가 아니라, 기능을 마이너 업그레이드한 아이폰4s라는 사실에 신제품에 대한 기대가 컸던 소비자들이 크게 실망했다는 반응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직후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가 타계하면서 상황은 급반전하였습니다. 아이폰4s는 스티브잡스가 생애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소비자들의 관심이 빠르게 확산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바람에 아이폰4s에 실망한 소비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무산된 갤럭시S2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죽은 제갈공명이 살아있는 사마중달을 도망치게 했다(死諸葛走生司馬 사제갈주생사마)’는 고사가 생각났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 스티브 잡스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만, 이는 그의 단편적인 면모만을 언급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기에, 그에 관한 모든 것을 통으로 담은 전기에 대한 기대가 컸다고 하겠습니다. 특히 그의 사망과 맞물려 전기가 세상에 나오게 되면서 대중의 관심도 더욱 커지는 것 같습니다. 조금 안타까운 것은 자서전에 대한 초기반응이 스티브 잡스의 사생활에 집중되었다는 점 같습니다. 그의 출생의 비밀이라던가, 친부와의 관계, 스티브 역시 혼전관계에서 얻은 아이에 냉담했다던가, 혹은 그의 냉혹한 성격이 드러나는 상황이나 사건에 주목한 기사들이 넘쳐났습니다. 그가 오늘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남다른 점은 아직 주목받지 못하고 있어 아쉬웠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전기는 <타임>의 편집장과 CNN의 CEO를 역임한 월터 아이작슨의 작품입니다. 아이작슨은 <아인슈타인-그의 인생과 우주>, <벤자민 프랭클린-한 미국인의 삶>, <키신저 전기> 등을 써 유명한 분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모두 41개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출생과 입양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첫 번째 장으로부터, 그의 일생을 통하여 지켜온 삶의 철학을 얻게 되는 인도여행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선불교 등 동양사상을 통하여 자아탐구와 깨달음으로 다가가는 과정, 그리고 애플1개발을 시점으로 하여 애플과 픽사를 통하여 그가 구현하고자 했던 세계를 뒤쫓고 있습니다. 마지막 췌장암과의 투병생활과정을 거쳐 삶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그의 족적을 그대로 담았다고 합니다.

900여 쪽이나 되는 방대한 양이지만, 단계별로 잘 요약되어 있어 쉽게 읽을 수 있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최근 번역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던 것 같습니다. 생명과학 분야의 책을 여러 권 번역한 경험으로 보면 과학서적을 번역하는 경우는 단어나 문맥의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가급적 직역을 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만, 다른 분야의 경우는 문장에 담기는 의미를 우리의 정서로 이해할 수 있도록 의역을 최대한 허용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스티브 잡스가 IT분야에서 이룩한 업적이 그의 천재성으로 이룩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PC(애플 컴퓨터)와 애니메이션(픽사에서 제작한 영화들), 음악의 유통(아이팟), 스마트폰(아이폰), 태블릿 컴퓨팅(아이패드), 그리고 디지털 출판 등 여섯 가지 산업분야에서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성공을 일구어냈다.”라고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만, 실제로 기술적인 부문에서는 특출한 사람들의 참여로 이러한 성과가 가능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특별한 것은 기술적인 부분에서 발휘할 수 있는 인적 요소를 극대화하는 역량과 관련기술들을 서로 연계하여 최대한의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조정하는 능력이 특별한 점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천하의 잡스였다고 하더라도 실리콘밸리라고 하는 특별한 환경에 들지 못했더라면 그의 재능은 빛을 보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제록스의 팰러앨토 연구센터(PARC)는 잡스에게 여러모로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PARC가 가지고 있는 잠재성을 제대로 꿰뚫어 본 것도 그의 남다른 재능이라고 하겠습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최고의 방법은 스스로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소프트웨어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하드웨어를 만들어야 한다.”라는 창조적인 말을 한 PARC의 앨런 케이의 영향을 받았고, PARC 연구진이 개발한 비트맵을 이용한 디스플레이를 차용하여 오늘날 대부분의 컴퓨터에서 사용하고 있는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를 개발할 수 있었던 것도 잡스의 능력인지 그의 운명인지 구별하기가 애매합니다.

IT업계에서는 애플이 PARC의 기술을 가져다 쓴 것을 가장 의미심장한 도둑질로 간주한다고 하는데, 이에 대하여 잡스는 “피카소는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훔치는 것을 부끄러워한 적이 없습니다.(167쪽)”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볼 때 위대한 발명이나 발견은 한 사람의 천재에 의하여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분야에서 오랜 세월을 두고 조금씩 쌓여온 지식을 토대로 하여 만들어지는 것인데 흥미로운 점은 여러 사람이 비슷한 시기에 성과를 올리지만 대개는 가장 먼저 이를 알린 사람만이 역사에 기록된다는 것입니다.

잡스의 남다른 점은 숨어있는 부분까지도 아름답게 만들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애플로부터 시작해서 애플 매킨토시, 아이폰, 아이패드에 이르기까지 잡스가 고집스럽게 고수한 철학은 ‘앤드투엔드 통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애플직원 외에는 누구도 애플 제품을 뜯어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없도록 설계한 것도 그의 철학이 반영된 것이라고 합니다. 잡스는 컴퓨터가 진정 위대하려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밀접하게 연결되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하드웨어를 다른 소프트웨어에 문호를 개방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심혈을 기울여 완벽하게 구현하려 노력했다는 점입니다.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와 차별되는 점이기도 합니다.

제 경우도 미국에서 공부할 때 작업한 데이터들을 실험실에 설치된 매킨토시에서 작업하여 플로피디스켓에 담아두었기 때문에 귀국할 때 어쩔 수 없이 당시로는 적지 않은 1300불이나 주고 매킨토시를 구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던 IBM에서 자료를 돌릴 수 없어 힘들게 얻은 자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아픈 경험이 있습니다.

애플의 경영을 맡긴 스컬리와의 갈등으로 애플을 떠나야 했던 잡스가 다시 애플로 돌아오는 과정을 보면서 <온워드>를 통해 알게 된 스타벅스의 CEO 하워드 슐츠의 회사에 대한 깊은 애정을 되새기게 됩니다. 잡스만큼 애플을 사랑하고 애플이 지향하는 방향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기에 그가 복귀하고서 애플은 다시 애플다워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애플이 새로운 제품을 만들기부터 시장에 내놓은 신제품설명회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은 스티브 잡스의 세밀하게 지휘아래 이루어졌다는 점도 놀랍습니다. 마치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교향악을 연주하듯이 모든 영역에서 해당분야의 최고 권위자를 초빙하고 유명 마술사가 청중의 눈을 속여 환상으로 이끌 듯이 말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누구보다 앞서 새로운 시대의 디지털 혁명을 구상하고 이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첫째, 그는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교차점에 서있었다는 것, 둘째, 그의 완벽주의는 제품의 모든 측면을 통합하여 접근했다는 것, 셋째, 그는 본능적으로 단순미를 추구했다는 점, 넷째, 리스크가 커도 새로운 비전에 올인할 의지가 충만했다는 것입니다(600쪽).

스티브 잡스의 폐쇄적인 통합시스템과 빌 게이츠의 호환 가능한 공유시스템을 비교하였을 때 어느 것이 우월하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 자체가 아직은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스티브 잡스가 없는 애플이 통합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유지할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에 아직 답을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라포르시안 [양기화의 북소리]에서 스티브 잡스를 소개하는 까닭을 말씀드립니다. 고대 의학은 철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근세 들어 의학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인문학적 요소의 비중이 점차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아니면 현실적인 면에 대한 비중이 커진 탓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의료를 둘러싼 환경은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의학 역시 기술부문의 발전만으로는 도달할 수 있는 한계에 이르렀다고 보이므로 이제 인문학과 다시 손을 잡아야 할 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잡스가 말기암과 싸우던 시절을 소개하는 장에서는 “나는 21세기의 최대 혁신이 생물학과 기술의 교차점에서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합니다.(843쪽)”라는 의료분야의 미래를 예측하는 말을 읽을 수 있고,  “의료산업의 커다란 문제 중 하나는 일종의 전담자나 중재자가 각 팀을 총괄적으로 지휘하는 시스템이 없다는 것예요.”라는 잡스의 아내 파월의 불만이 담긴 말도 읽을 수 있습니다.

정리를 하면, 의학 역시 인문학과 다시 결합하여 새로운 전기를 모색해야 할 것이라는 말씀과 우리 의료계에도 잡스와 같은 다양한 분야를 총괄적으로 지휘할 능력과 카리스마를 갖춘 지도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깨우치셨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책을 소개합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라포르시안  webmaster@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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