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형곤(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 응급의학센터장, 전 대한의사협회 대변인)

[라포르시안] 2013년에 있었던 일이다. 어느날 한 의사포털 사이트에 질병관리본부를 비난하는 글이 올라왔다. 질병관리본부에서 발간한 ‘B형 간염 주산기감염 예방사업안내’ 라는 책자의 인사말에  당시 대한의사협회장이었던 노환규 회장의 이름이 틀리게 표기되었다는 것이었다. 

이 책자는 의료진을 대상으로 B형간염의 주산기 감염을 막기 위해 발간된 홍보용 책자로, 이러한 책자를 발간 할 때는 보통 의사협회장이나 그 밖에 연관된 의료단체 장의 인사말이 들어간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의사협회장 다음에 들어간 친필처럼 보이는 사인이 ‘노규환’ 으로 되어 있었다.

당시 나는 여러 단체에서 요청이 오는 의사협회장의 인사말을 감수하고 회장에게 보고해 게재 여부를 결정하는 업무를 담당하였기에 더욱 당황스러웠다. 내가 아는 한 질병관리본부에서는 의사협회에 어떠한 요청도 하지 않았고 친필처럼 보이는 사인도 절대 당시 의협회장의  사인이 아니었기에 즉각 질병관리본부에 연락해 따져물었다. 결국 질병관리본부 관계자가 의협으로 직접 찾아와서 사과하는 선에서 일은 마무리가 되었다.

이 일에서 질병관리본부의 기본적인 태도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의협의 입장에서 산모와 태아의 B형감염을 막기위한 좋는 사업에 반대한 이유가 없다. 이것은 의협에 전화 한 통화 해서 이러이러한 책자에 의협회장의 인사말을 게재하려하는데 친필 사인을 스캔해서 보내달라고 하면 이메일로 보내주고 끝날 일이다.

하지만 담당자가 알아서 대충 사인을 만들어 처리한 것으로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위의 해프닝은 질병관리본부의 안이한 업무처리 방식이에서 비롯되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이러한 일을 의사들이 아니 국민이 알게 된다면 과연 질병관리본부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도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는 메르스 사태에서 과연 질병관리본부를 포함한 정부의 초기 대처가 옳았는지는 두고두고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나는 질병관리본부가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의료진의 1번 환자의 메르스 확진 검사 요구를 두번이나 거절하다가 외압(?)을 받고 나서야 검사를 한 것에서부터 대 혼란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앞에서 언급한 의협회장 사인 해프닝과 같이 어렵지 않은 일을 처리하면서도 원칙대로 하지 않는 질병관리본부의 기본을 바꾸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비극적인 제2, 제3의 메르스 사태를 막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덧붙이고 싶은 것은 조직의 기본을 바꾸는 것과 함께  충분한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질병의 예방과 방역, 국민 보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스템도 중요하고 사람도 중요하지만 결국에는 돈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싸고 좋은 것은 없다. 보건복지부와 회의를 할 때 느끼는 것은 담당자들이 기획재정부의 눈치를 심하게 본다는 것이다. 필요한 일인줄은 알지만 돈을 주지 않는다는 말들을 자주 한다. 그런데 이렇게 돈 안들이고 가다가는 지금처럼 한번에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제는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송형곤은?

성균관대 의과대학 삼성서울병원 응급의학과장, 제37대 대한의사협회 집행부에서 대변인을 역임했다. 현재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 응급의학센터장을 맡고 있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