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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피어-르스’가 된 메르스…공포와 혐오의 경계에서
  • 김상기 편집국 부국장
  • 승인 2015.06.11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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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르시안] 2014년 2월, 서아프리카의 기니에서 첫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자가 발생한 것을 시작으로 작년 한해 동안 에볼라 대유행이 전세계를 강타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에볼라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5월 31일 기준으로 에볼라 감염자 수는 총 2만7,181명에 달하고, 사망자는 1만1,162명으로 집계됐다. 에볼라의 치사율은 약 41%를 기록했다.

서아프리카 4개국에서 퍼진 에볼라 바이러스는 유럽과 미국에까지 침투했다. 세계 최고의 방역시스템을 자랑하던 미국이 뚫리면서 전 세계적으로 에볼라에 대한 극도의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며 '피어볼라(Fear-Ebola)' 신드롬을 촉발했다. 특히 지난해 10월 미국 내 첫 에볼라 발생한 이후 피어볼라는 극에 달했다. 미국의 첫 에볼라 감염자가 라이베리아 출신의 남성이란 점에서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분위기마저 조성됐다. 극단적인 피어볼라가 감염병 유행의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킨 꼴이다.

비이성적인 집단 공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에볼라가 창궐한 시에라리온 현지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하다가 귀국한 의료진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피어볼라로 인한 사회불안이 심각해지자 오바마 대통령은 에볼라에 감염됐다가 완치된 텍사스건강장로병원의 간호사를 백악관으로 초청해 포옹하는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현재 한국에서 피어볼라에 버금가는 '피어르스(Fear - MERS)' 현상이 감지되고 있다. 날마다 감염자가 늘고, 사망자까지 발생하면서 메르스에 대한 공포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각종 행사가 취소되고,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심지어 아파도 병원 방문을 꺼리고 있어 자칫 다른 병을 키우는 2차 피해마저 우려된다.  

게다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을 통해 메르스와 관련한 부정확한 정보가 넘치면서 피해를 입는 곳이 속출하는 상황이다. 어느 병원에서 메르스 감염자가 발생했다거나 의심환자가 격리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문이 번지면서 이름이 거론된 병원은 환자가 급감하면서 큰 손실을 입었다. 정부가 그렇게 의욕을 갖고 추진하던 의료관광산업 육성도 자칫 물거품이 될 것 같다. 우리나라를 찾는 중국인 의료관광객이 발길을 끊었다. 게다가 메르스 사태는 한국 의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마저 심어줬다. 중동을 비롯한 해외진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이후 정부의 부실한 초기대응과 이후에도 계속된 무기력한 방역체계로 인해 사람들의 불안감을 자극하고,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확산시켰다. 결국 정부가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거나 거쳐간 병원 명단을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어러스 현상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오히려 비이성적인 차별마저 자행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메르스 감염 우려가 높은 병원에서 근무한다는 이유로 의료인 자녀의 등교 거부 요구도 나왔다고 한다. 심지어 메르스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에 근무하는 의료진 자녀들의 등교를 막거나 등교 후 수업을 받던 의료인 자녀를 귀가 조치하는 일까지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메르스 감염에 대한 극도의 불안감으로 빚어진 일이라고 해도 지나친 차별이고 인권침해다.

미국에서 피어볼라가 극에 달했을 때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나 에볼라가 창궐한 국가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하고 돌아온 의료진을 비난하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에볼라 대유행 과정에서 서아프리카 현지에서 환자를 돌보다 사망한 의료인은 수백명에 달했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확산 초기에 치사율이 최고 90%에 이를 정도였다. 엄청난 두려움 속에서도 확산을 막기 위한 최일선에 전세계 각국에서 온 의료인들이 있었다.

메르스 사태에서도 마찬가지다. 11일 현재 국내 메르스 감염자 122명 가운데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인이 10명에 이른다. 전체 감염자의 약 10%에 육박한다. 격리된 의료진도 수백 명이다. 지금도 메르스 환자를 격리치료하는 병원 내 가장 밀폐된 공간에서 수많은 의료인이 그들을 돌보고 있다. "내가 감염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항상 안고서.

메르스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개인보호장비는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의 지원도 제때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앞서부터 해외유입 감염병 확산에 대비해야 한다는 경고가 있었지만 뭐하나 제대로 준비된 게 없다는 것이 메르스 사태로 여실히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사명감으로 환자를 진료하는 의료인들에게 정부는 으름장까지 놓았다. 메르스 의심환자 진료를 거부하거나 제때 신고하지 않은 의료인을 처벌하겠다고. 정부의 이런 태도에 분노를 느끼고 차라리 메르스 유행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병원 문을 닫는게 났겠다는 말조차 들린다. 

오바마 대통령은 작년 10월 에볼라가 창궐한 서아프리카 국가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돌아온 의료진을 백악관으로 불러 함께한 자리에서 그들을 격려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을 통해 "자원봉사 의료진이 우리를 에볼라로부터 보호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들을 돌보고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도 이 말을 되새겨 봐야 할 것 같다.

김상기 편집국 부국장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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