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격리대상자 등 위기경보 주의 단계 허용치 초과…‘경계’로 격상해야 범정부 차원 인력·시설·예산 확보 가능해져

[라포르시안]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격리 대상자가 1600명을 넘어섰지만 정부의 위기경보 단계는 여전히 '주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위기 경보를 '경계' 수준으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잇지만 보건당국은 아직까지 그 정도 수준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5일 브리핑을 통해 "현재는 업그레이드된 '주의' 단계다. 메르스가 지역사회로 확산 전파되지 않은 만큼 경계로 격상하는 대신 주의 단계를 유지하면서 정책은 강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가 지난 5월에 실시한 '해외유입 감염병의 확산 방지를 위한 정부·지자체 합동 대응 훈련' 시나리오를 보면 지금은 경계 단계를 넘어 가장 높은 수준인 '심각' 단계인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14개 중앙부처 및 지자체 합동으로 지난달 20일 해외유입 감염병 대응체계 점검을 위한 모의훈련을 실시했다.

정부가 모의훈련을 실시한 20일은 우연의 일치로 최초로 내국인 메르스 확진 환자가 발생한 날이다.

이날 훈련은 복지부가 마련한 메르스가 국내에 유입된 상황을 가정한 시나리오에 따라 '관심-주의-경계-심각' 등 4단계별로 필요한 대응체계를 점검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복지부가 마련한 훈련 상황 시나리오에 따르면 관심 단계에서는 전파경로가 밝혀지지 않은 신종감염병 환자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생했고, 이후 주변 지역에서 유사환자가 집단적으로 발생하면서 국내로 환자 유입 가능성이 대두된다.

다음으로 주의 단계에서는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사우디아라비아 여행객 중 검역단계에서 원인미상 고열자가 처음으로 발견돼 메르스 환자로 확진되고, 이후 의심환자 신고가 증가하는 상황이다.

이어 국내 첫 메르스 환자의 가족 및 의료진이 유사증상을 보이고, 서울에서 4명의 유사 환자가 발생하는 상황을 가정하고 '경계' 단계로 설정했다.

마지막 '심각' 단계에서는 메르스가 전국적인 유행 확산 징후를 보이면서 국민의 불안이 커지는 상황을 가정했다. 심각 단계에서는 모두 5개 시도에서 39명의 환자가 발생하는 시나리오를 짰다.

복지부는 이러한 훈련 시나리오는 이미 지난 3월에 확정하고, 지난달 20일 합동 대응 훈련 실시에 맞춰 준비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모의훈련을 담당한 복지부 질병정책과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번에 설정한 시나리오는 이미 지난 3월 확정된 내용이었다"며 "우리도 이 시나리오에 맞춰서 3월 중순부터 모의훈련 준비를 해왔다"고 말했다.

5일 현재 서울과 경기도, 대전 등지에서 총 41명의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고, 격리 대상자가 1667명(4일 기준)에 달하는 상황을 훈련 시나리오에 적용해 보면 이미 심각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봐야 한다.

훈련 시나리오에는 사망자 발생 상황이 포함되지 않았지만 현실에서는 병원내 3차 감염자를 포함해 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훨씬 더 심각한 수준인 셈이다. 

'경계'로 격상해야 필요한 인력·시설·예산 확보 더 수월해져격리병상 확보·밀접접촉자 격리 효율적 추진 위해서라도 위기경보 격상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부는 메르스가 타지역으로 전파되지 않았다는 판단에 따라 주의 단계를 고집하고 있다.

이상한 대목은 위기 경보 수준은 '주의' 단계를 유지하면서 실질적으로 대응하는 내용은 이미 '경계' 수준에서 이뤄진다는 점이다.

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가 마련한 '감염병 위기 경보 수준별 대응 방향'을 보면 경계 단계에서는 ▲범정부적 협조체계 구축(필요시 관련 협조기관 업무지원) ▲실험실 진단 체계 강화 및 변이 여부 감시 강화 ▲국가 비축물자(개인보호장비 등) 수급체계 적극 가동 등이 이뤄진다.

정부는 이미 지난 4일 국민안전처장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범정부 메르스 대책 지원본부' 운영키로 했다. 지원본부는 복지부 산하 '중앙 메르스 관리대책본부'를 범정부적 차원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복지부는 국내에서 검출된 메르스 바이러스의 변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국내외 전문기관을 통한 유전자 분석을 실시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차원에서 개인보호장비와 마스크 등을 민간기관으로 확대 보급하는 방안도 곧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대한의사협회 추무진 회장은 지난 4일 기자간담회에서 "오늘 아침 정부 관련 회의에서 (마스크 등 보호장비를)일선에 지급하기로 얘기가 됐다"며 "곧 동네의원까지 마스크 등 개인보호장비가 지급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상황을 따져보면 사실상 경계 단계나 마찬가지다.

특히 주의에서 경계 단계로 위기경보가 격상이 되면 감염병 확산을 저지하는데 필요한 행정인력과 공공의료 시설, 집행 예산 등을 보다 적극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만일 서울시가 주장하는 것처럼 35번째 환자와 밀접 접촉한 사람들을 모두 격리 대상자로 지정할 경우 격리자 수는 3,000여명에 육박한다. 이들을 효과적으로 자택 또는 시설격리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격리시설이나 행정, 의료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경계 단계로 격상하고 국민안전처가 컨트롤타워로 나서 비상방역체계에 필요한 모든 물자와 인력, 예산 지원을 총괄하는 것이 효율적인 방역 추진을 위해 필요하다.

위기경보 수준이 '경계' 단계로 격상되면 군과 경찰인력 지원은 물론 메르스가 확산되지 않은 지역의 공공의료 인력 등을 방역대책이 시급한 지역이나 시설로 파견할 수도 있다. 메르스 환자나 의심환자, 밀접 접촉자 등을 진료했다는 이유로 피해를 입은 병원과 격리 대상자 등에게 지급하는 생계비 관련 예산을 보다 적극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위기경보 수준을 격상할 필요가 있다.

복지부가 추진하는 방역대책이 주의 단계를 유지한 채 추진될 경우 제대로 실효성을 얻기 힘들다는 우려도 높다.

전국보건의료노조는 "메르스 대응수준을 ‘경계’ 단계로 격상하고 방역․검사시스템 정비, 인력보강 등 범정부차원 종합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지역사회 감염의 가능성이 현실로 된 만큼 지역감염의 우려를 배제할 수 없기에 메르스 확산을 방지하고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현존하는 모든 위협의 가능성을 염두에 놓고 대응체계를 꾸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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