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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메르스 바이러스, 사막을 떠나 지상낙원을 찾았다
  • 김상기 편집국 부국장
  • 승인 2015.06.04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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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르시안]  이렇게 커질 줄 알았겠나. 누가 이 정도로 확산될 줄 알았겠나. 분명 감염력이 낮다고 했는데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이 바이러스에 노출될 줄 상상이나 했겠나. 가까이 접촉했던 몇 사람만 격리하면 그칠 줄 알았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과 접촉했을까 싶었으리라. 최초 환자가 발생한 이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감염력이 낮기 때문에 크게 우려할 일 아니라던 보건당국의 발표에는 확신이 넘쳤다. 다들 그런 줄 알았다. 문제는 변수였다. 중동 국가들은 국토가 넓고 인구 밀도가 낮다. 반면 우리나라는 좁은 국토에 많은 인구가 밀집해 있다. 대중교통은 발달했고, 의료기관 접근성은 세계 최고다. 메르스 바이러스가 퍼지기에 최적의 환경이란 점을 간과했다.

파장은 컸다. 메르스 바이러스가 한반도를 덮쳤다. 사람들은 바이러스보다 불안과 불신에 더 빠르게 감염됐다. 환자가 다녀간 병원 명단은 순식간에 돌았다. 1명의 감염자가 채 1명에게도 바이러스를 옮기지 못한다는 중동발 '메르스 기초감염재생산수'는 한국 땅에서 무용지물이 됐다. 최초 확진 환자로부터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가 벌써 27명이다. 최초 환자가 '슈퍼 전파자'가 아니냐, 변종 바이러스가 출현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아직까지 병원내 3차 감염 사례로 그치고 있지만 어느 순간 병원 밖으로 퍼져 불특정 다수에게 옮기는 지역사회감염으로 확산되지 않을까 슬슬 불안해진다.

여기서 그쳐야 하는데. 더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다. 감염 환자와 밀접 접촉해 격리 대상에 포함된 사람이 1300명을 넘어섰다. 실제로는 더 많을 수도 있다. 잠복기가 최대 2주 가까이 되고, 발열과 기침 등 조금 심한 증상의 감기 수준이다보니 감염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전파자가 되기 십상이다. 다행인 점은, 치사율이 40%에 이른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낮은 것 같다. 전문가들은 중동 지역, 특히 전 세계 메르스 환자의 90% 이상이 발생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치사율 통계가 병원에 입원한 환자를 대상으로 한 결과란 점에 주목했다. 실제로 이 바이러스에 감염됐지만 감기처럼 가볍게 앓고 지나가 통계에 잡히지 않은 사람이 훨신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체 환자에 대한 전수조사가 이뤄지면 치사율이 한자리수에 그칠 것이란 분석도 눈에 띈다. 메르스 바이러스 자체가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는 변종 코로나바이러스란 점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메르스 사태가 이렇게 커진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한국에서 이 바이러스의 증식을 도운 숙주세포가 따로 있었다. 보건당국의 엉성한 방역체계, 의료기관의 허술한 감염관리, 그리고 허약한 보건복지 예산. 이 세 가지가 메르스 바이러스의 증식을 도운 숙주세포다. 우선 방역체계 문제를 따져 보자. 메르스 바이러스가 엉성한 방역체계를 숙주로 삼아 마구 전파됐다고 해도 과장된 말은 아니다. 보건당국은 최초 환자가 발생했을 때 너무 안이하게 판단했다. 감염력이 낮다는 외국의 연구결과만 믿고 최초 환자와 밀접 접촉한 사람들의 범위를 너무 좁게 판단했다. 초기에 61명이던 격리 대상자가 며칠 만에 120명으로 늘었다. 뒤늦게 정밀 역학조사에 들어갔고, 감염 우려가 있는 격리 대상자는 700여명으로 불었다. 그리고 하루 사이에 600여명이 늘어 격리 대상자가 1300명을 돌파했다. 초기에 제대로 역학조사를 했더라면 이렇게 일이 커지지 않았을 텐데. 격리 대상자 모니터링도 허술했다. 자택격리 조치를 받은 격리 대상자가 해외 출장을 갔다가 타국에서 메르스 감염 확진 판정을 받았다. 또 환자가 사망한 이후에 감염 사실을 확인하는 일도 있었다. 해외유입 감염병 발생에 대비한 비상방역체계를 구축한다고 그렇게 요란을 떨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의료기관의 부실한 감염관리 탓도 컸다. 6월 3일까지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 30명 중 26명이 최초 환자와 한 곳의 병원에서 접촉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 병원에서 같은 병실을 사용했거나 같은 병동에 입원한 사람들이었다. 그 기간이 대부분 사흘 정도였다. 이 기간 동안 최초 환자는 같은 병원에 입원한 수많은 환자와 의료진에게 바이러스를 감염시켰다. 입원환자에 대한 감염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부실한 원내 감염관리가 비단 이 병원만의 문제는 아니다. 국내 의료기관 중 어지간한 규모의 대형병원을 제외하고 철저한 원내 감염관리를 시행하는 병원이 드물다. 병원이 감염관리에 무관심해서가 아니다. 그럴 만한 형편도 안되고 여력도 없다.

예를 들자면 의료기관에 지급되는 수가 중에는 병원감염 예방을 위한 '감염전문관리료'라는 게 있다. 중환자실을 운영하는 일정 규모 병원에서 감염내과및 감염소아과 전문의가 상근하는 경우에만 지급된다. 입원환자 1명당 30일의 입원기간 동안 1회만 청구할 수 있다. 청구비용이 1건당 약 4,600원 정도다. 하루 평균 150원 꼴이다. 이마저도 없던 것이 2009년 8월부터 새로 생겼다. 병원이 감염관리를 위해 투입하는 시설이나 전문인력에 소요되는 비용을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수가보상이다. 그나마 200병상 미만의 중소병원에는 언감생심이다. 감염관리에 투입되는 인력과 시간, 시설에 따른 보상체계를 따져보면 그렇다.

의료계는 진작부터 적극적인 감염관리를 위해 별도의 인력과 시설 및 활동 경비에 대한 보상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가 추산하기에 적극적인 감염관리를 위해 필요한 병원의 인프라 구축 비용은 총 4,000억~5,000억원 정도에 달한다. 적지 않은 비용 부담이다. 하지만 감염관리를 위한 적절한 수가보상체계가 마련돼 병원감염 예방이 효율적으로 이뤄지면 2~3배 이상의 비용대비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불행하게도 이 나라에서는 '불특정 다수의 질병 예방 효과'란 공중보건과 예방의학적 논지를 가지고 정부와 정치권을 설득해 뭔가를 따내기가 정말로 어렵다.

마지막 숙주는 허약한 보건복지 예산이다. 보건복지부 전체 예산에서 보건의료 관련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4% 정도에 불과하다. 연간 2조원이 채 안된다. 이런 정도의 예산으로 할 수 있는 건 극히 제한적이다. 특히 감염병 등에 대응하는 공중보건 예산은 국회에서 삭감되기 일쑤다. 심지어 2009년 신종플루 사태로 그 난리를 겪고도 신종 감염병 대응을 위한 다음해 예산이 대폭 삭감됐다. 영유아예방접종 지원을 위한 예산을 삭감하고 국회의원 지역구의 선심성 사업 예산으로 전용하는 일도 빈번했다. 그랬던 정치인들이 지금 보건당국의 대응이 부실하다고 짐짓 점잖게 비난하고 있다.

지난해 영유아예방접종 예산이 정치권의 선거용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문제를 제기하는 보도를 한 적 있다. 기사가 나간 후 질병관리본부 담당 공무원이 전화를 걸어왔다. "예방접종 예산을 확보하는게 너무 힘들다. 이렇게라도 예산을 확보할 수 있다면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소연을 했다. 어쩌면, 메르스 바이러스는 멀고 먼 길을 돌아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찾은 게 아닐까.

김상기 편집국 부국장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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