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케 후기 시집 / R. M. 릴케 지음 / 송영택 옮김 / 문예출판사 펴냄, 2015년

[라포르시안] 시(詩)를 많이 알지 못하는 필자도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드리우시고 / 들에다는 많은 바람을 풀어 놓으십시오.”로 시작하는 「가을날」을 기억하는 것을 보면, 라이너 마리아 릴케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시인도 드물 것 같습니다.

폰 에코노모뇌염의 후유증으로 생긴 파킨슨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페니 마셜감독의 영화 『사랑의 기적(1991)』의 한 장면을 보면서 릴케에 대한 필자의 관심이 커지게 되었습니다. 뉴욕 알버트 아인슈타인의대 신경과교수 올리버 색스(Oliver Sacks)가 뉴욕시의 변두리에 있는 갈멜산 요양원에서 만난 환자들에 대한 기록을 적은 『깨어남; Awakening (1973년)』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로빈 윌리엄스가 환자를 진료하는 세이어박사역으로, 로버트 드니로가 파킨슨병환자 레너드 역을 맡아 소름 돋는 연기를 보였습니다.

무표정하고 자극에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 뇌염후 파킨슨병 환자들이 나름의 세계가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세이어박사는 글자판을 이용하여 환자들과 대화를 시도하게 됩니다. 그때 레너드가 써낸 글자가 바로 ‘표범’이었고, 세이어박사는 릴케의 시 「표범」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지나치는 창살들로 그의 눈길은 / 너무 지쳐 아무 것도 보지 못한다. / 오직 수천의 창살만이 있는 듯하고, / 그 수천의 창살 뒤에 세계는 없는 것 같다. // 탄력 있고 힘찬 소리가 나지 않는 걸음걸이는 / 아주 작은 원을 그리며 맴돌고 있다. / 크나큰 의지가 마비되어 서 있는 / 하나의 중심을 도는 힘의 무도와도 같다. // 오직 때때로 눈동자의 꺼풀이 / 소리 없이 열린다-그러면 한 가지 모습이 그 속에 비쳐들어 / 고요한 사지의 긴장을 뚫고 지나간다. / 허나 다음에는 그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 세이어박사는 그 무렵 개발된 엘-도파를 처방하여 뇌염후 파킨슨병 환자들의 증상을 호전시킬 수 있었지만, 이내 부작용이 발생하여 치료를 중단하면서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그 과정이 마치 릴케의 시 「표범」의 느낌을 닮아 있습니다. 즉, 주변의 변화는 알고 있지만 그런 변화에 대한 적절한 반응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환자의 심정이 우리에 갇혀 있는 표범과 같은 신세라는 것을 레너드는 나타내고 싶었던 것입니다.

많은 릴케의 시가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있는데, 최근에는 릴케의 후기 시작품들을 묶은 시집이 나왔기에 [북소리] 독자 여러분들께 소개합니다. 『릴케 후기 시집』은 릴케의 전기 시작품을 묶은 『릴케 시집(2014)』에 이어 릴케의 후기 시작품을 묶은 것입니다. 영화 『사랑의 기적』을 본 다음에 샀던 시집 『릴케(1991)』을 번역한 송영택교수님이 번역을 맡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생각할 점들이 있었습니다. 송영택 교수는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의 시인’이라는 제목으로 릴케의 시세계를 정리한 글에서 릴케의 시작품들을 이렇게 구분하였습니다. ▲낭만적인 동경과 꿈에 집중한 『제1 시집』과 『초기 시집』 ▲신의 탐구, 그러면서도 인간보다 신의 우위성을 인정치 않는 범신론적인 신앙 고백서인 『시도집(詩禱集)』 ▲존재 양식의 형상화에 성공한 『형상(形象) 시집』 ▲자아와 사물과의 사이에 하나의 차원을 이룩하는 『새 시집』 ▲사랑과 고독의 독자성을 해명한, 20세기의 가장 아름다운 산문인 『말테의 수기』 ▲이상의 것들을 모두 종합하면서 동시에 삶과 죽음을 극복하는 찬가 『두이노의 비가』와 『오르페우스에게 보내는 소네트』(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송영택 옮김, 릴케, 140쪽, 천우펴냄, 1991년)

『릴케 후기 시집』에서 뽑은 시들은 릴케의 『새 시집』에서 32편을, 『새 시집』 이후의 시에서 25편을, 『두이노의 비가』에서 첫 번째와 여섯 번째 비가를, 『오르페우스에게 보내는 소네트』에서 22편을 그리고 후기의 시들 가운데서 27편입니다. 『두이노의 비가』와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이후부터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기간에 해당되는 시들을 ‘후기의 시’라고 묶고 있습니다. 이 시기의 릴케는 ‘장대한 넓이나 깊고 무거운 세계가 아닌, 그동안 그가 도달한 목가적이고 전원적인 밝고 순수한 새로운 경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송영택 교수의 번역으로 소개한 시집 『릴케(1991)』은 그의 전기 작품에서 많이 뽑았던 것 같습니다. 61편의 시를 담은 『릴케(1991)』와 108편의 시를 담은 『릴케 후기 시집』에 같이 실린 시는 오직 「표범」 한 편 뿐입니다. ‘파리 식물원에서’라고 주석이 달려 있는 것처럼, 이 시는 1902년 릴케가 로댕에 관한 글을 쓰려고 찾은 파리에서 생활하면서 쓴 『새 시집』에 담긴 것입니다. 옮긴이가 『릴케 후기 시집』을 위하여 번역을 새롭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릴케(1991)』에 담긴 「표범」과는 달리 『릴케 후기 시집』에 담긴 「표범」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나가는 격자 때문에 지쳐버린 표범의 눈은 /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 그의 눈에는 수많은 격자가 잇는 것 같고, / 그 격자 뒤에는 세계가 사라지고 없는 것 같다. // 더없이 작은 원을 그리며 돌고 있는 / 유연하고 늘름한 발로 자늑자늑하게 걷는 걸음새는 / 하나의 커다란 의지가 마비되어 서 있는 / 하나의 중심을 둘러싼 힘의 무용 같다. // 다만 때때로 눈동자의 장막이 소리 없이 열리면 / 그때 하나의 형상이 들어가서 / 사지의 긴장된 정적 속을 지나 / 심장에서 문득 사라진다.” 필자에게는 생소하다 싶은 ‘자늑자늑하게’라는 시어를 채용하였는데 뜻을 찾아보니, ‘움직임 따위가 가볍고 부드러우며 차분한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합니다. ‘창살’ 대신 ‘격자’를 사용했는가 하면 ‘무도’대신 ‘무용’을 사용한 것을 보면 세월의 흐름에 따른 우리네 언어생활의 변화를 반영하였구나 싶기도 합니다만, 시 전체의 흐름은 전작이 간결한 느낌입니다.

언젠가 독일어를 전공한 분과 함께 독일어 논문을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을 같이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독일어를 구문적으로만 번역해서는 의미가 헷갈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표범」의 마지막 연에 나오는 ‘눈동자의 꺼풀’ 혹은 ‘눈동자의 장막’이란 눈꺼풀을 말하는 듯한데, 눈꺼풀은 각막은 물론 결막을 포함하여 밖으로 드러나는 안구 전체를 덮고 있는 것이지 각막의 안쪽에 자리한 눈동자만을 덮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면 지나치게 의학적 사실을 강조하는 ‘아는 체’가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요즈음 쓰고 있는 스페인 여행기에서 인용하기에 적절한 시를 여러 편 발견할 수 있었던 것도 큰 수확일 뿐 아니라 관심을 두고 있는 눈물에 관한 시를 여러 편 발견한 것도 역시 커다란 수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눈물, 내 몸을 뚫고 나오는 눈물”이라고 시작하는 「눈물」은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드러내주는 언어적 기능을 다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듯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눈물을 담는 눈물항아리를 노래하는 시가 두 편이나 있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는 “아 대지여, 눈물 항아리를 만들 깨끗한 점토를 / 나에게 다오. / 나의 존재여, 너의 내부에 막혀 있던 / 눈물을 쏟아내라”로 시작하는 「아 대지여, 눈물 항아리를 만들」이라는 시와 ‘떨어지는 눈물을 위하여 속을 비운다’라고 노래한 「눈물 항아리」입니다.

사실 눈물은 안구 위편에 있는 눈물샘에서 만들어져 안구표면을 따라 흐르면서 안구가 마르지 않게 하고, 눈 안쪽에 있는 누공을 통하여 비강으로 빠져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양파나 최루가스와 같은 물질이 안구를 자극하거나 감정적으로 북 바쳐 눈물샘이 눈물을 많이 만들게 되면 누공이 감당하지 못하여 눈물이 밖으로 흘러내리게 되는 것인데, 이렇듯 흘러내리는 눈물을 담기 위하여 점토로 눈물항아리를 만든다는 생각은 참으로 참신한 것 같습니다. 오래되어 기억하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2009년에 ‘엣지있게’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낸 드라마 『스타일』이 방영되었습니다. 이 드라마의 마지막 회에서 패션잡지 ‘스타일’의 에디터 심균이 동료 차지선에게 프러포즈할 때 들고 나온 소품이 바로 눈물항아리입니다. 그동안 너를 위해 남몰래 흘린 눈물을 담은 눈물항아리라면서 이제 그 눈물을 마셔버리는 것으로 너에 대한 나의 마음을 보이겠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정말 오글거리는 프러포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릴케의 눈물항아리가 내부에 막혀있던 눈물을 쏟아내 담을 그릇을 마련하는 것으로 마음을 옥죄고 있던 굴레를 벗어내 느낀대로의 감정을 풀어낼 수 있기를 노래한 것과 통하는 무엇이 있는 듯합니다.

가수나 작가들 가운데는 자신이 부른 노래나 작품과 닮은 삶을 산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릴케를 이야기하면서 작품과 닮은 삶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릴케 후기 시집』에 실려 있는 마지막 시, 「장미여, 아 순수한 모순이여」때문입니다. 이 시는 릴케가 생전에 자신의 묘비명으로 미리 써 두었던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릴케는 대단한 예언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신을 찾아온 손님을 위하여 장미를 꺾다가 그 가시에 찔린 것이 곪아서 죽음에 이르렀다고 하니 말입니다. 아름다우면서도 날카로운 가시를 가지고 있는 장미를 두고, ‘장미여, 꽃의 여왕이여’라고 노래한 릴케에게 장미는 모순으로 비쳤던 모양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아름다움을 즐기려다 영원한 잠에 들게 되었으니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념비를 세우지 마라. / 그저 해마다 그를 위하여 장미꽃을 피게 하라. / 왜냐하면 그것은 오르페우스니까. 이것저것 속의 / 그의 변신인 것이다, 우리는.(…)”이라고 노래한 것 역시 릴케 자신이 오르페우스라는 가객(歌客)의 후예임을 암시하는 듯한 「기념비를 세우지 마라」에서 그저 해마다 장미를 볼 수 있으면 족하다는 생각을 내비친 것 같습니다. 1912년부터 1922년에 걸쳐 「두이노의 비가」의 연작시 열편을 쓴 것에 비하면, 1922년 2월에 보름도 안 되는 기간에 무려 55편을 달하는 오르페우스에 대한 헌시를 쏟아낸 것을 보면 아무래도 오르페우스의 돌봄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릴케는 오르페우스의 후예일 것 같습니다. 물론 릴케 시의 정점이라고 하는 「두이노의 비가」와 단순비교하는 것이 적절치 못한 점이 있습니다.

「두이노의 비가」는 1912년 릴케가 트리에스테 근처의 두이노 성(城)에 있을 때 제2비가까지 두 편을 완성하였지만, 연작시의 일부였기 때문에 발표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그러니까 릴케가 오스트리아 육군에 소집되기 전인 1915년 가을에 제4비가를 완성하였다고 합니다. 「두이노의 비가」를 이어간 것은 1921년 여름, 스위스 후원자의 초청으로 발레리 지방의 론 강가에 있는 뮈조의 성(城)에 머물면서였습니다. 1922년 2월 7일에서 11일 사이에 단숨에 완성하였다고 합니다. 이때를 전후하여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55편을 완성하였다고 하니, 그야말로 시상이 샘물처럼 흘렀다고 하겠습니다.

릴케의 시에는 ‘주님’ 혹은 ‘천사’와 같은 종교적 대상이 등장합니다만, 그리스도교의 교리에 반대한 니체처럼 릴케 역시 “생과 죽음, 지상과 공간, 시간의 차원 등을 모두 포함하여 통일적으로 응축된 ‘우주 내재적 공간’이라는 일원적 우주론을 주장”하였다고 합니다. 이 시기의 릴케의 시에서 삶과 죽음을 동시에 긍정하는 찬가라는 느낌을 얻게 됩니다. 『릴케 후기 시집』을 옮긴 송영택 교수는 “10편의 「두이노의 비가」는 참다운 결실을 위해 끊임없이 변신해 죽음 속까지 정화되는 사람만이 참으로 인생을 영위하는 것이라 하고, 인생에서 진실한 것이라 믿어지는 사랑이 실은 고독하고 괴로운 것이며 서로가 일체될 수 없는 개별적인 것이라 노래한다.(228쪽)”라고 설명합니다. 그의 『새시집』에서만 해도「붓다」 라는 제목의 시가 두 편이나 되고 「붓다의 영광」을 노래한 것을 보면 그리스도교가 그의 삶에서 유일한 목표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 너는 느낀다, 이제는 너에게 매달리는 것이 없음을. / 너의 외피는 무한 속에 있고, / 거기에는 진한 과즙이 충만하다. / 바깥에서 한 줄기 빛이 그것을 거들고 있다.(…)”라는 시어에서 불교의 심원한 원리를 느끼게 됩니다. 릴케의 주옥같은 후기 작품들을 통하여 우리의 참다운 삶을 정의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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