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적 간호사 부족은 환자 안전 위협하는 시한폭탄…“최우선 과제는 인력 확충”

[라포르시안]  국내 의료기관에서 고질적인 간호사 적정인력 부족, 비정규직 간호사 확대, 그리고 간호사 이직률 증가에 따른 숙련된 간호인력 부족 등으로 인해 환자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병원의 상업화를 규제하고, 적정 간호인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책을 마련하는 동시에 간호사의 노동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한 복합적인 노력이 절실하다.

사회공공연구원 이상윤 객원연구위원(건강과대안 연구위원)은 최근 '병원 인력 확충: 환자 안전 증진을 위한 최우선 과제'라는 제목의 워킹페이퍼 형식 보고서를 통해 환자 안전을 강화하기 위한 병원의 간호인력 확충 방안을 제시했다.

이 연구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한국 의료와 병원은 양적 팽창에 걸맞는 질적 발전 속도가 더디다. 병원은 커지고 많아지며 시설은 좋아지고 있지만 그 안에서 ‘의료사고’는 빈발하고 근본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며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의료사고 스캔들은 이러한 한국 의료 시스템 실패에 대한 ‘적신호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구조적 문제가 해소되지 못하는 이유는 '고 신해철 사망사건'처럼 매년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의료사고가 발생해도 호들갑스러운 논란만 일뿐 한국 의료의 시스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 방안을 찾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점을 들었다.

보고서는 "의료사고가 생길 때마다 의료인 개인이나 특정 의료기관 문제로 치부될 뿐, 그와 같은 사고가 반복적으로 재발하는 근본 이유에 대한 성찰과 그에 따른 시스템 개혁 논의는 부족했다"고 분석했다.

미국 학술원 의학분과인 'Institute of Medicine' 산하 의료질위원회가 1999년 의료 질 개선을 위한 사업 중 하나로 의료사고에 관한 실태 보고서를 펴내 환자 안전을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의 개선 필요성을 공론화시킨 것처럼 우리나라에도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1999년 미국 의학학술원이 매년 4만4,000명에서 9만8,000명의 환자가 의료 과실로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한 보고서를 발간해 미국에서 이와 관련된 사회적 논의에 불을 붙였다"며 "이 규모는 미국에서 유방암이나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는 사람보다 많은 것이다. 보고서가 나온 이후 미국에서는 환자 안전에 대한 사회적 토론이 이뤄졌고 현실 개선을 위한 다양한 접근이 이루어졌다"고 소개했다.

환자 안전을 강화하기 위한 최우선 선결요건으로 병원 인력의 수와 질에 주목했다.

병원에 충분한 수의 인력이 있어야 안전해지고, 충분히 숙련되고 훈련된 인력이 병원에 근무해야 의료사고의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미국 의학학술원의 보고서에서도 일반적인 사고의 원인 중 60~80%가 ‘인적 요인’에 의한 것임을 언급하면서 의료 영역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 추정했다"며 "간호사 인력 수준이 높을수록 재원일수 감소, 요로감염률 감소, 상부 위장관 출혈 감소, 수술 환자의 폐렴 이환율 감소, 수술 환자의 혈전증 감소, 수술 환자의 합병증으로 인한 사망률 감소 등이 보고되었다. 한국에서도 중환자실에서 간호사가 담당하는 환자수가 많아지면 환자 사망률이 높아지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고 강조했다.

안타깝게도 국내 병원의 간호사 인력 수준은 OECD 국가 평균의 1/3 수준에 불과하다. OECD 헬스데이터 2013년 통계에 따르면 병원에서 간호사 1인이 담당하는 환자수가 일본은 7명, 미국은 5명인데 비해 한국은 15∼20명에 달했다.

특히 급성기 병상 1개당 간호사 수는 0.28명에 불과해 OECD 평균인 1.13명의 1/4에도 미치지 못한다.

간호사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근무강도는 높아지고, 이로 인해 이직률도 높아지면서 인력 부족이란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한채 오히려 상황만 더 나빠지고 있다.<관련 기사 :  2년제 간호인력 양성·시간제 간호사 논란…나이팅게일이 운다>

최근 들어서는 시간제 간호인력 등 비정규 간호사 충원이 늘면서 미숙련 인력이 늘어나 의료서비스 질 하락 우려마저 제기된다.

보고서는 "간호사 인력이 부족할 경우 단순한 간호 행위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환자의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평가하며 환자를 교육하는 등의 행위를 포함하는 총체적, 포괄적 간호를 제공할 수 없다"며 "교육 등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할 경우 현재와 같이 재원기간 단축 경향이 가속화되는 조건에서는 환자들이 퇴원해서 가정에서 취해야 할 적절한 조치를 하지 못함으로 인해 또다시 병원을 방문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많다"고 우려했다.

또한 "간호사에게 과중한 업무가 부가됨에 따라 간호 오류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도 심각한 문제"라며 "약이 바뀌거나 투약 시간이 늦어지는 등의 투약 오류, 병원 감염의 위험 증가 등이 대표적인 간호 오류의 예"라고 소개했다.

비정규직 간호사가 점점 늘어가는 것도 환자 안전에 악영향을 끼친다.

보고서는 "2009년 병원경영연구원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사 대상 병원 간호사의 11.4%가 비정규직 간호사인 것으로 나타났다"며 "병원에 비정규직이 많아지면 인력 교체가 잦아지면서 업무 숙련도도 저하되고 의료팀내 혹은 의료팀간 의사소통 장애가 발생해 의료 사고의 가능성이 증가한다"고 분석했다.

병원경영자 측에서는 간호인력 부족 문제를 단순히 공급 확대로 해소하려고 하고 있지만 이런 방법으로는 현재의 상황을 개선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한국 병원에서 간호사가 부족한 이유는 단순히 간호사 인력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병원간 경쟁의 격화, 병원의 수익률 압박, 간호사 노동조건의 하락, 여성고용 일반의 문제, 간호사의 전문직으로서의 정체성 위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며 "이러한 복합적 원인을 총체적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인력 공급 확대 정책만으로 해결하려 하면 저임금, 고강도 노동, 위험한 일자리만 늘리는 꼴이 될 뿐 환자 안전 수준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병원의 간호사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해 의료 질을 높이고 환자 안전 수준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측면에서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병원의 최소 간호 인력 수준을 법제화하고 이를 어기는 병원에 대한 강력한 지도와 감독, 처벌이 집행돼야 한다"며 "또한 병원이 자발적으로 간호 인력 수준 향상을 위한 동기 부여가 되도록 간호관리료등급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간호사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간호사의 근무 및 휴식시간에 대한 규제, 병원 특성에 맞는 노동안전보건 규제 등이 신설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