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는 내년부터 시행되는 일괄 약가인하 정책과 더불어 올해 안에 제약산업 육성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육성방안의 핵심은 이른바 제약기업의 옥석을 가려내 집중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혁신형 제약기업’ 선정이다.

하지만 까다로운 인증기준으로 인해 일부 상위권 제약사만 혜택을 누리고 ‘혁신형 제약기업’에 포함되지 못한 제약사들은 도태될 것이란 우려도 높다. 또한 정부가 기대하는 신약연구개발의 활성화가 꾀해질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혁신형 제약기업 지원을 둘러싼 제약업계의 반응을 살펴봤다.

<글 싣는 순서>①제약업계, 신약과 복제약 사이에서 길을 잃다②합종연횡 가속화…제약업계는 지금 구조조정 중③혁신형 제약기업 지원책, 과연 약발 있을까?④제약산업 이대론 안된다(전문가 기고)
 

혁신형 제약기업 육성…제약업계 옥석 가려질까

복지부는 내년 3월31일자로 ‘제약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되면 신약연구개발 등에 일정규모 이상을 투자하고 글로벌 진출 역량을 갖춘 제약사 중 ‘혁신형 제약기업’을 인증해 각종 지원 혜택을 제공할 방침이다.

이는 영세한 규모의 제약기업이 난립하고 국내 시장에만 안주해 글로벌 경쟁력이 미흡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국산 신약 개발 실적도 저조해 현재까지 15개의 신약이 개발됐지만, 2010년 기준으로 보험청구액은 전체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327억원에 불과할 정도로 국내 제약업계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혁신형 제약기업 육성의 필요성을 대변한다.

이에 따라 ‘혁신형 제약기업’에 대해서는 ▲제네릭 의약품 약가 우대 ▲신약 및 개량신약 약가 우대 ▲세제지원 ▲국책 R&D 사업 대상 선정 시 가산점 부여 ▲혁신형 제약기업 전용 CBO(채권담보부 증권) 발행 ▲신용보증기금을 통한 특례 보증 ▲설비투자 등 이차보전 사업 ▲제3자 배정증자 지원 등의 대대적인 지원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복지부는 기술개발에 주력하는 제약회사가 성공하는 시장을 형성하고 혁신적 제약기업 중심으로 세계시장에서 통용되는 신약 개발 역량을 제고한다는 전략이다.

앞서 발표된 혁신형 제약기업의 인증요건은 ▲연간 매출액 1,000억원 미만 기업의 경우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10% 이상 ▲연간 매출액 1,000억원 이상 기업의 경우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7% 이상 ▲글로벌 진출역량(cGMP 생산시설 보유여부, FDA 승인 품목 보유여부 등) 보유기업의 경우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5% 이상 등이다.

하지만 제약업계는 혁신형 제약기업 선정업체 평가시 매출액 대비 R&D 비율 이외에 현재 신약을 보유한 회사나 개발 중인 회사 등을 포함하는 등 다양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완제품을 생산하는 국내제약사 265개 가운데 2009년 생산규모가 1,000억원 이상인 업체는 35개에 불과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올해 안에 매출액 대비 R&D 비율 이외에 중장기 R&D 투자계획, 국제연구개발협력, 신약허가 품목 보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요건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정부 방침에 제약업계는 “제약산업을 어떻게 육성할 것이며, 무엇으로 글로벌화를 꾀하라는 것인가”라며 반문하고 있다.

한국제약협회는 “R&D 경쟁력이 글로벌화의 필수 잣대일 수밖에 없는 혁신형 제약기업들에게 일괄 약가인하로 600억~1,000억원에 이르는 매출타격이 가해지는 데 어떻게 글로벌화의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냉소적인 반응이다.

약가인하 정책으로 영업 이익률이 바닥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실패율이 현저히 높은 신약개발에 누가 과감히 뛰어들 수 있겠냐는 지적이다.

신약개발의 주체인 제약기업의 R&D투자 원천이 사라지면 정부의 어떠한 정책지원도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강력한 약가인하 정책으로 제약업체들이 투자 여력을 상실해 혁신형 제약기업으로 유지해 나가기 어렵고, 결국 국산 신약개발 경쟁력이 초토화될 것임은 명약관화하다는 것이 제약업계의 시각이다.

국내 대형 A제약사 관계자는 “약가인하로 인해 수익 부분에 직격탄을 맞게 됐다”며 “신약개발과 해외임상실험에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는데 정부가 제안한 지원책은 지원예산도 부족할 뿐 아니라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꼬집었다.

모 중소제약사 관계자는 “정부가 혁신형 제약기업을 집중지원을 꾀한다고 해서 신약개발이 이뤄진다고 볼 수 없다”고 단언하며 “일괄 약가인하로 매출이 줄면 당연히 R&D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신약을 개발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또 다른 제약사 관계자는 “정부가 옥석을 가려 중소제약사를 쳐내고 선택과 집중을 꾀하고 있는데 말은 신약개발을 위해서라는 것이지만 어림없다”며 “신약개발을 떠나 모든 지원책이 혁신형 제약기업에 포함되는 상위 제약사에 집중되면 결국 이들이 제약시장을 독식하게 될테고 나머지 제약사들은 침체일로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어둡게 전망했다.제약협회의 시각도 다르지 않다. 제약협회 관계자는 “일괄 약가인하로 제약산업의 존망을 흔들어 놓고 제약산업을 육성한다는 명분 아래 그럴듯하게 껍데기만 포장한 허상이 바로 혁신형 제약기업”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고령화 사회에서 약 사용량이 늘고, 또한 고가약 처방이 증가하는 추세에서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를 꾀하려면 사용량과 고가약 처방을 줄이는 근본적인 방책을 강구해야 하지만 정부의 정책은 제약업계을 말려 죽이자는 것 말고 어떤 의미가 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약업계 판도 크게 흔들릴 것"증권가는 정부의 혁신형 제약기업 정책이 제약업계에 상당한 파장을 몰고 올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정부의 혁신적 제약기업 정책이 시행되면 일부 의약품의 퇴출 및 인력 구조조정, 업체간 인수합병 등의 상황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다.

하이투자증권 이승호 연구원은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제약업계 판도가 크게 흔들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연구원은 “중견 제약사들은 M&A 등으로 몸집을 키워 매출 1,000억원대 그룹에 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것”이라며 “반면 중소 제약사 중에는 아예 문을 닫는 곳도 속출할 것”으로 예측했다.

특히 그는 “자금력에 여유가 있는 제약사는 개발 품목을 늘리기 위한 인수합병에서 자유로울 수 있지만 제품군이 비슷한 중소 제약사들은 자금력은 물론 합병 자체가 큰 의미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 도태되는 양상을 보이게 될 것”으로 분석했다.

반면 규모는 작지만 제네릭 위주가 아닌 특징적 제품군을 보유하고 있는 제약사들에게는 중견 제약사의 러브콜이 이어질 가능성도 시사했다.

우리투자증권  김나연 애널리스트도 “정부의 정책은 신약개발에 집중하고 있는 제약사에게는 긍정적이지만 신약개발 투자가 미흡한 영세 제약사들에게는 시장논리에 따라 알아서 생존하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료계는 혁신형 제약기업 육성 방안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전국의사총연합 노환규 대표는 “정부의 방향에 대해서는 옳다고 보지만 구체적 안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 대표는 “약가인하와 혁신형 제약기업 지원을 함께 시행시키는 것은 제약사로 하여금 매출은 줄이고 투자는 늘리라는 것으로 이는 오히려 제약사의 R&D 투자 의지를 위축시킬 위험이 있다며 정부의 기본적인 목표는 국내 제약산업의 경쟁력 강화인데 정부 발표안은 제약업계 숨통조이기와 다름없다”고 말했다.

그는 “R&D 투자에 대한 절대액수를 정한 후 R&D 투자 비중을 높이는 제약사에 대해서는 각종 지원 및 혜택을 줘야 한다”며 “반면 R&D투자를 하지 않는 제약사에 대해 약가인하 등으로 페널티를 주는 것이 제약산업 발전을 위해 올바른 순서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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