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성모병원 집단괴롭힘 사건 피해자 극심한 고통…“의료윤리와 생명윤리 팽개치는 행위”

[라포르시안]  #. 그는 내년이면 간호사로 일을 한 지 30년 째다. 대학병원 간호과장을 맡을 경력이지만 현재 통합검사예약 창구에서 환자를 상대로 검사 내용을 설명하고 진료예약을 확인하는 업무를 한다. 최근 며칠 간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일이 그에겐 지옥같았다. 아침 9시와 낮 12시, 오후 5시 무렵이면 신경이 곤두섰다. 이번에는 또 누가 찾아와서 자신을 괴롭힐까 하는 불안감 때문에 가슴이 뛰고 숨이 막힐 것 같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병원내 중간관리자급 직원이 찾아와 추궁하듯 캐묻는 일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얘기 좀 하자” “언론보도에 대한 입장 표명을 왜 하지 않느냐?” “밖에서 기다리겠다” “당신이 병원을 대표하는 노조 지부장이에요?” “인증 준비는 제대로 하세요?” “직원들은 이렇게 밤낮으로 뺑이치고 있는데…” “그렇게 불평만 많고 원망하고 이런 마음만 가득 차 있으면 지옥 가는 지름길이야, 너!”

4월 6일부터 10일까지 10여 차례에 걸쳐 그런 말을 들었다. 환자가 보는 앞에서 그런 일을 겪을 때마다 너무 괴로웠다. 출근을 준비할 때마다 오늘은 또 누가 찾아와서 자신을 괴롭힐까 두려움이 몰려오면 정신이 아득해졌다. 급기야 지난 13일 출근을 하던 도중 병원 앞에서 쓰러졌다.  병원 앞을 지나가던 행인과 병원 보안요원이 쓰러진 그를 급히 응급실로 옮겼다. 응급실에서 최고혈압이 한때 170까지 치솟았다. 그는 지금 병원에 입원해 있다. 자신이 다니던 병원이 아니라 다른 병원에. 3개월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노조 H지부장이 지난 며칠 간 겪은 일이다.

전국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지난 3월 가톨릭관동대학교 국제성모병원에서 직원들의 가족과 친척, 지인 등을 가짜환자로 등록해 건강보험 진료비를 부당청구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직후 같은 천주교 인천교구가 운영하는 인천성모병원에서 노조 지부장인 H씨에게 언론사 제보 여부를 추궁하며 집단괴롭힘을 가한 사건이 발생했다.

H지부장이 자신은 국제성모병원 건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여러 차례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병원내 중간관리자들이 지속적으로 찾아와 집단괴롭힘을 가한 것이다.

대학병원 노조 지부장인데 어떻게 일방적으로 집단괴롭힘을 당했을까 싶다. 하지만 인천성모병원 노조는 조합원 수가 고작 11명에 불과하다.

한때는 조합원 수가 200여명을 넘었지만 2005년 천주교 인천교구가 경영권을 인수한 이후 노조 탄압이 시작되면서 4년여 만인 2009년에는 40명으로 줄었고 지금은 11명 뿐이다.

전국보건의료노조 위원장까지 지낸 그였지만 조합원 수가 11명뿐인 노조 지부장의 위치에서 병원의 부당한 처우에 적극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보다 못한 보건의료노조가 나섰다.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17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인천성모병원에서 이뤄진 집단괴롭힘 사태에 관한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학노 인천성모병원장과 집단괴롭힘을 가한 16명의 직원을 피진정인으로 해 ▲인천성모병원의 집단괴롭힘을 헌법에서 보장한 인격권 침해행위로 인정할 것 ▲피해자를 피진정인으로부터 격리하고 정신적 질병을 회복하고 안정가료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긴급구제할 것 ▲인권침해 재발방지 약속, 집단괴롭힘을 가한 당사자 징계,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에 따른 손해배상을 인천성모병원에 권고할 것 등을 인권위에 진정했다.

지난 23일에는 인권위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인천성모병원에서 벌어진 집단괴롭힘의 실태를 공개하고, 인권위에 현장실사를 바탕으로 진상조사를 실시할 것과 긴급구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유지현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30년 동안 간호사로 일하며 현장에서 환자를 돌봐온 노조 지부장에게 부서장들이 집단 괴롭힘을 가했다"며 "피해 당사자는 적응장애 진단으로 항불안제 처방을 받아 약물을 복용하고, 연일 계속되는 집단 괴롭힘에 결국 출근길 병원 앞에서 실신해 입원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것이 환자를 진료하는 병원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라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병원이 H지부장을 해고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박민숙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은 "시간을 정해 놓고 남자직원들이 찾아와 환자가 보는 앞에서 H지부장의 인격을 모독하고 집단괴롭힘을 가했다"며 "보건노조 차원에서 집단괴롭힘을 중단할 것을 요청하는 호소공문도 보냈지만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집단괴롭힘으로 심신이 지친 H지부장이 조퇴를 요청했지만 거부 당했다"고 말했다.

박 부위원장은 "병원은 H지부장을 해고하기 위해 3개월 단위로 부서이동 계획을 세운 것으로 드러났다. 그 일환으로 H지부장이 5월 1일자로 다른 부서로 인사이동이 예정돼 있었다"며 "그 부서는 인천성모병원 내에서 조합원을 가장 심하게 대하는 곳으로 알려졌다"고 주장했다.

인천성모병원 측은 집단괴롭힘 사건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 병원 관계자는 "집단괴롭힘 사건과 관련해 보고받은 적이 없다. 현재로서는 보건의료노조의 주장에 대해 밝힐 수 있는 입장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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