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죽음의 역사 , 멜라니 킹 지음, 이민정 옮김(사람의 무늬 펴냄)]


한스 요나스 교수님의 <기술 의학 윤리>를 리뷰하면서 미루었던 죽음과 관련된 부분입니다. 교수님은 뇌사와 장기은행과 관련하여 죽음의 실용적 재정의에 대하여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망의 정의가 심장사(心腸死)에서 뇌사(腦死)로 이행하게 된 배경에 대한 비판입니다.

<뇌사의 정의에 대한 하버드 의대 위원회 보고서>는 ‘회복 불가능한 혼수상태를 죽음에 대한 새로운 정의로서’ 인정하자는 입장에 손을 들어준 바 있습니다. 그것은 한정없이 계속되는 혼수상태가 환자와 환자가족 및 의료자원에 지우고 있는 부담을 줄이고, 이식수술용 장기의 획득을 둘러싼 논쟁을 피할 수 있다는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요나스 교수는 죽음에 대한 새로운 정의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겠는가 의문을 표하였습니다. 우리가 아직 삶과 죽음 사이의 정확한 경계선을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죽음에 대하여 가장 엄격한 정의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영역에서 행해지는 죽음의 대한 규정은 더욱 엄격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 무슨 일이 있어도 환자는 의사가 그의 사형집행인이 되거나 그의 죽음을 정의할 수 있도록 전권을 위임해서는 안된다.(215쪽)”고 주장하였습니다.

환자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는 의사로서 때로는 환자의 생명을 위임받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그의 죽음에 대하여도 많은 생각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멜라니 킹이 쓴 <거의 모든 죽음의 역사>를 살펴보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죽는다는 것은 참으로 지루하고도 쓸쓸한 일이다.’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책은 ‘무덤에서 나는 소리’라는 으스스한 제목으로 첫 장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즉 의사의 사망선고가 잘 못되어 당신이 생매장될 수도 있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는데, 1985년에 나온 하트만의 저서 <나는 생매장 당했다>에서 700건 이상의 생매장 사례를 서술하고 있다는 것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꽁꽁 묵인 채로 캄캄하고 좁은 관 속에 갇혀있는 상황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이 끔찍할 것 같습니다. 그런 이유로 망자를 위한 비상소통장치를 무덤에 설치하는 등의 아이디어가 팔리기도 하고, 사망을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한 지침도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쯤에서는 우리 선조들의 놀랄만한 지혜를 자랑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장례법도에서는 망자(亡者)가 숨을 거둔 시점을 기산하여 3일장, 5일장, 7일장 등으로 장례절차를 진행하게 되는데, 혹시 망자가 회생할 가능성을 고려했던 것은 아닐까요?

저자는 이어서 유럽을 중심으로 중세이후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도굴이 성행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의사들은 죽은 자에게 크게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새겨야할 것입니다. 근세에 이르러 빠르게 진보하고 있는 학문으로서의 의학분야에서는 사인을 규명하거나 혹은 의학교육과정에 많은 사체를 해부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중세에는 해부가 금지되어 있었고 근세에 이르러서도 극히 제한된 경우에만 해부가 가능했기 때문에 사체가 필요한 자와 갓 사망한 시체를 도굴하는 공급자 사이에 은밀한 거래가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의학교육에 사체를 이용한 것 외에도 심지어 중세에는 송장약제가 질병치료에 탁월하다는 근거없는 주장에 따라 환자에게 사람의 피를 마시게 하거나 두개골을 빻은 가루를 먹게 하는 등의 식인에 가까운 풍습이 성행했다는 것입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중국제 인육캡슐이 수입되어 최고의 자양강장제라고 비밀리에 팔리고 있다 해서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준 바 있습니다. 중국산 인육캡슐에는 죽은 아이의 사체를 말리고 갈아서 얻은 분말을 담았다고 합니다. 심각한 것은 “태아를 인간으로써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태아캡슐이 효과가 있다면!, 태아캡슐을 상품으로써 인정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수요가 있으니 몰래 라도 들여왔을 것 같습니다.

최근 들어 사체매매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소문입니다. 콩팥, 심장 등과 같은 큰 장기 뿐 아니라, 각막, 피부, 인대, 뼈와 같은 조직들을 사용한 생체이식이 많아져 연간 1백만명 이상의 환자가 이식수술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시술은 기증조직을 이용하여 충분히 안전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조직이나 장기가 암거래되는 경우도 있고, 안전성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아 이식받은 환자가 피해를 입는 사례도 있다고 합니다. 저자는 중국에서 시행되는 많은 장기이식수술이 사형수의 사체에서 적출된 장기로 이루어지고 있고, 이들 사형수는 정치적 이유로 탄압받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열렸던 것으로 기억됩니다만, 군터 폰 하겐스의 <인체의 신비전>도 기증받은(?) 사체로 제작되는 표본을 전시하는 것이라고 하고, 그 기증받는 절차의 투명성에 의혹이 제기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저자는 전통적인 장례의식으로부터 최근에는 금지되었다는 인도 흰두교의 사티제도 - 과부가 된 여성이 남편에 대한 사랑을 입증하는 의미로 장례 당일 죽은 남편과 함께 화장되는 풍습 -같은 잔인한 애도풍습, 그리고 최근 주목을 끌고 있는 우주장 등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것으로 믿고 있는 족내 혹은 족외 식인풍습과 관련하여 도살된 고깃점과 접촉하면서 스크래피(양 바이러스성 전염병) 등의 병원균에 감염되었을 경우, 이는 곧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으로 발전한다고 적은 부분은 저자의 착각인 듯 합니다. 우리에게는 2008년 촛불시위로 너무나도 잘 알려진 내용으로 스크래피는 바이러스 전염병이 아니라 프리온이라고 하는 단백질에 문제가 생겨 발생하는 것이고, 스크래피에 걸린 양과 접촉하거나 먹어서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이 발생했다는 증거는 아직 없습니다.

망자가 인류에 공헌한 점 가운데 빠트릴 수 없는 분야가 과학수사 분야일 것입니다. 사체를 이용하여 인체의 사후변화를 연구한 결과를 수사에 접목한 것이 법의학입니다. 테네시주 녹스빌 변두리에 있는 야외에서 다양한 형태로 버려져 있는 사체를 볼 수 있는데, 테네시대학병원이 운영하는 법인류학 시설, 즉 사체농장이라는 것입니다. 이곳에서 나온 연구성과는 변사체의 사망시간을 추정 등 과학수사의 근거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죽음의 역사>의 마지막 이슈는 바로 죽음을 다시 정의하는 일입니다. 앞서 한스 요나스교수님이 죽음을 실용적 재정의에 대한 철학적 접근을 소개해드렸습니다만, 멜라니 킹 역시 뇌사판정에 따라 적출된 장기로 이식수술을 행하는 과정에 과연 문제는 없겠는가? 하는 단도직입적인 의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저자가 이 책을 생매장에 대한 공포로부터 시작한 이유가 여기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즉 생매장에 대한 현대판 공포가 일게 될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만일 환자가 뇌사상태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각종 검사가 정확하지 않다면? 뇌사로 판정받은 환자가 의식이 살아있지만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상태라면? 대표적인 사례로 뇌교(腦橋)라고 하는 부위에 뇌경색이 발생한 환자는 ‘잠김증후군’에 빠지게 되는데 말도 못하고 사지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를 혹시 뇌사상태로 판정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영화 <잠수종과 나비>를 보시면 잘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정리를 하겠습니다. 멜라니 킹의 <거의 모든 죽음의 역사>를 읽으면서 현대의학은 모든 죽음에 대하여 빚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포함한 의학을 공부한 모든 사람들은 이제는 기억에서도 가물거릴 누군가에게 빚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빚은 환자의 생명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물론 그 빚은 질병으로 지금 고통을 받고 있는 환자들에게 돌아가야 하겠지요.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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