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안산병원, 작년 4월 16일 이후 생존자 진료 과정 상세하게 기록…“재난의료 지침서로 활용”

[라포르시안]  '4.16 세월호 침몰사고 백서'

지난해 세월호 참사 발생 직후 단원고등학교 2학년 생존 학생과 유가족 등을 진료하는 재난거점병원 역할을 맡았던 고려대학교 안산병원이 사고 1주기를 앞두고 그동안의 의료지원 활동을 상세하게 기록한 백서를 펴냈다.

고대안산병원은 지난 9일 오후 '단원재난의학센터&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 4·16 세월호 사고 1주기 공동 학술 심포지엄'을 열고 이 백서를 공개했다.

총 231페이지 분량에 달하는 이 백서에는 ▲세월호 피해자에 대한 진료 ▲고대 안산병원의 활동 ▲재난 사고 발생시 의료지원에 대한 제언 ▲단원재난의학센터·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 관련 자료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백서 곳곳에는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생존자와 유가족, 지역주민 등이 겪은 정신적·신체적 고통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2014년 4월 16일 오후 3시10분부터…이 백서에는 지난해 4월 16일 오전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하고, 그날 오후 3시 구조된 생존자를 고대안산병원으로 이송키로 결정한 직후 이 병원이 어떻게 생존자 진료를 준비하고 어떤 식으로 의료지원을 펼쳤는지 상세히 기록돼 있다. 백서를 보면 고대안산병원은 생존자 이송이 결정된 지 10분 후 진료부원장을 팀장으로 '세월호 피해자 치료를 위한 재난 TFT'를 구성했다.

그리고 2시간 뒤인 오후 5시경 진료와 간호, 행정 등 각 파트별로 인력구성을 완료했다. 이후 피해자들이 입원할 병상을 확보하고 필요한 물품을 배치하는 등의 준비과정을 거쳐 밤 10시부터 병원에 도착한 세월호 사고 생존자들을 맞았다.

백서에는 4월 16일 오후 3시부터 밤 10시까지 30분 혹은 1시간 단위로 생존자들이 병원이 도착할 때까지 어떤 준비를 했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진료준비 현황표가 수록돼 있다.  

생존자들이 도착했을 때 병원이 가장 먼저 한 것은 중증도에 따른 환자분류였다. 병원은 응급의료진 2명, 간호사 5명을 투입해 환자의 개별 중증도에 따라 노란색(긴급), 초록색(비응급)으로 환자 분류를 한 후 치료를 시작했다.

백서는 생존자들이 도착한 직후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생존자들은 당시 과도한 언론의 취재, 사고로 인한 정신적 충격에 의한 2차적인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었으며 자녀의 생사를 정확하게 모른 채 오로지 뉴스나 현장에 있는 다른 유가족의 연락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유가족들 또한 극도로 불안한 상태였다. 사망자 명단, 구조된 생존자들을 통한 자녀의 사망소식에 유가족들은 충격으로 인해 실신했고, 실종자의 유가족 또한 다른 보호자들의 반응에 따라 더 우울하고 예민하게 반응했다." 

백서에는 지난해 4월 16일부터 같은 달 30일까지 날짜별로 생존 학생과 가족 등에게 어떤 진료를 했고, 병원이 의료지원 활동을 위해 실시한 작업이나 의료진 구성과 역할 등에 대해서 상세하게 기록해 놓았다.

사고 발생 사흘째인 4월 19일에 대한 기록을 보면 "희생자 수습이 본격화 되면서 안산에서 이루어지는 생존자 치료 및 사망자 장례절차에 관한 문제가 대두되었다. 대부분의 생존자에 대한 치료를 담당한 안산병원에서는 치료과정에 대한 일말의 의혹을 없애기 위해 재해자 가족, 정부와 신속한 의료협려체계를 마련했으며, 유가족에 의해 제기되는 치료 관련 문제에 대해서는 보건복지부, 교육청 및 단원구 보건소 등 유관기관과의 협조 하에 해결해 나갔다"고 풀어놓았다.

이어 5월~12월까지 매달 생존자 진료 내용과 치료경과는 물론 언론대응 방법, 외부 지원기관과의 연계활동 등에 대해서도 기록했다.

백서에는 병원이 환자안전관리를 위해 취한 조치 사항과 언론 브리핑을 통해 발표한 주요 내용도 담았다.  

특히 고대 안산병원은 유가족과 환자들의 심리적 불안 상태를 최소화 하기 위해 환자와 접촉 가능한 모든 동선 및 절차에 관한 원칙을 정리한 <세월호 침몰사고 생존자 관련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활용했다. 이 매뉴얼을 통해 ▲검사를 실시하는 절차 ▲환자의 개인정보보호 ▲허용하는 면회객 범위 ▲언론과 관공서 등의 접촉 제한 ▲세월호 피해자 관련 행정지원 전용 창구 운영 등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생존자의 치료과정 및 경과 상황도 상세하게 적혀 있다.

4월부터 시작해 올해 2월까지 피해자의 입원 및 외래진료 현황을 직접피해자와 간접피해자로 구분해 통계를 만들었다.

백서에 따르면 세월호 사고의 직접피해자는 단원고 학생 74명, 일반인 생존자 10명 등 84명이며, 간접피해자는 피해자 가족, 단원고 교사 등 200여명에 달했다.

지난해 4월 16일부터 올해 2월 말까지 세월호 직·간접 피해자의 외래진료 횟수는 총 1,669회에 달했다.

진료과별로 피해자들의 진료현황을 보면 심리치료를 위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가 1,147회로 가장 많았다. (직접피해자 811회·간접피해자336회)로 가장 많아 심리치료를 위한 정신과 진료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왜 백서인가?

상상하기조차 싫은 일이지만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형 재난 사고는 앞으로 또 발생할 수 있다.

만일 그런 상황에 직면했을 때 이러한 백서는 보다 신속하게 의료지원을 활동을 펼치고 소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확보할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한다.

그동안 국내에서 발생한 대형 재난·재해사고를 다룬 백서를 보면 의료적인 대응체계를 상세하게 기록해 놓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발생한 대형 재난·재해사고를 기록한 백서를 발간할 때 의료 부문의 대응체계를 상세하게 담아야 한다고 지적한다.부산대병원 응급의학과 조석주 교수는 “백서에는 사고의 사실, 대처 시 문제점, 문제점에 대한 대응방안 등을 상세히 담아야 하는 게 원칙”이라며 “재난·재해사고가 일어났을 경우 의료인이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백서를 만들어야 한다. 백서를 의료인과 공유해 재난·재해 시 대응할 수 있는 매뉴얼을 구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대안산병원이 세월호 참사 생존자와 피해자에 관한 진료 내용을 상세하게 기록해 백서로 만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병원은 "생존자들에 대한 효율적인 치료를 위해 진료 및 검사자료 등 모든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수집·분석하고 있으며, 향후 세월호 침몰사고 생존자 및 피해자에 대한 치료 자료로 활용하는 것은 물론 또 다른 재난 발생시 환자의 적극적인 치료방안을 제시해줄 귀중한 자료로 사용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차상훈 고대안산병원장은 "4.16 세월호 침몰사고 백서는 고려대 안산병원이 세월호 사고 현장에서 경험한 모든 의료활동을 생생하게 기록한 것으로, 향후 예기치 못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빠른 응급의료체계 및 재난 대응시스템 구축을 돕는 '재난의료 지침서'로 활용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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