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윤희(영화감독, 산업의학 전문의)

기억에 남는 관객의 질문이 있다. 의사들은 얼마나 벌어야 만족하나? 라는 다소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질문이었다. 스무 차례의 <하얀 정글> 관객과의 대화 시간 중에서 당황스러웠던 순간 중 하나였다. 한참을 머뭇거리다, 그냥 떠오르는 데로 “월척이 아닐까 싶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일반 대중들의 놀라움, 혹은 반감을 무마시키기 위해 단어를 조작했음)

무척 조심스럽게 “잘은 모르겠지만.. 사람마다, 과마다 다르겠지만..”이라고 방어적으로 시작하면서 무사히도, 의료계를 문제 삼는 같은 공격수로서, 또 본업으로 먹고 사는 수비자인 의사로서, 도를 넘지 않은 수준의 답변을 했던 것 같다. 돈을 얼마나 버냐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한 사람의 총체적인 존재감을 포착하는데 결정적인 평가 항목인 듯하다. 그러기에 무척 예민하고 금기시된다. 그 누구도 친구들이나 동창들과의 이야기 중에 난 월 얼마 벌어, 너는 얼마 버니? 라고 편하게 이 항목을 까놓지는 못할 것이다. 중요하면서 금기시되는 돈벌이 항목, 이것은 그만큼 지나치면 지탄의 대상이 된다. 의사들이 이 사회의 지탄을 받는 이유 중 큰 몫을 차지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실은 수입 자체로 지탄 받을 대상이야 의료직 외에도 수두룩할 것이지만, 유독 사람을 대상으로 의술을 펴는 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의술과 함께 청빈하고 올곧은 탈물질적 사상을 바라는 것 같다.   

이 물질에 대한 욕구는 타고난 성정이기에 사람마다 다양한 욕망을 표출한다. 그것은 생물학적, 정치적, 종교적, 기타 모든 취향의 다양성이 보장되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경제적 다양성이 보장되어야만 하는 이 사회 체계의 근간이 된다. 물욕의 다양성, 예를 들어보자.  018 휴대폰을 여태 쓰고 있지만 스마트 폰에 대한 욕망이 전혀 없는 나 같은 사람부터, 할부 지급이 끝나는 족족 업그레이드된 스마트폰을 또 구입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욕망의 신세대가 있을 것이다. 자연스러운 외모를 그대로 수수하게 로션 하나로 꾸미는 사람들부터, 나 같이 철사로 조금이라도 교정하고자 하는 미에 대한 욕구를 가진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과연 어느 수준에서 이 물욕이 과하다고 욕을 얻어먹기 시작하는 것일까? 스마트폰 한 대 정도는 괜찮지만, 아이패드, 갤럭

시 삼종 세트를 같이 소유할 때? 교정 정도는 괜찮지만, 눈, 코, 입, 턱 패키지 성형을 받을 때?

참으로 애매하다. 그러나 어느 정도 선이 그어지기는 한다. 얼마 전 <나꼼수>에서 무릎을 치게 만드는 “욕먹는 물욕”에 대한 적절한 표현을 들었다. “한없는 돈에 대한 욕정”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기득권을 총체적으로 가족력, 학력, 약력에 모범 답안지처럼 기재해놓은 후보가 서울시장 선거에서 탈락했다. 그 이유야 여럿이지만, 한없는 돈(과 명예)에 대한 욕정이 언뜻언뜻 그와 그 가족의 역사에서 엿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위장전입 정도야 이 사회에서 부동산 상담을 받는 많은 국민들이 허용하는 편법이기에 십분 양보했었지만, 임기 중 아들의 재산을 불리는 국가 수장의 부성애는 역시 선을 넘어선 욕정일 뿐이다. 막상 부러움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혐오의 대상인 물욕과 물질은, 오십년 삶이 전 세계인으로부터 무비판적으로 추앙받는 고 스티브 잡스조차도 자선 사업에는 무관심했었다고 폄하의 건덕지를 주는 결정적인 평가 항목이 되는 것이다.

1%가 소유한 벤츠를 99% 중 한 노숙자가 부숴버렸다는 인터넷 간이 기사에 통쾌하다. 그런데 똑같은 현상이 마티즈에 일어났다면? 분노할 것이다. 애매하지만 어딘가에는 선이 그어지는 물욕의 상한선이 있는 것이다. 한편, 혹여 그 벤츠가 어렵게 구한 나의 중고 벤츠였다면? 역시나 분노할 것이다. 날선 잣대를 들이대면, 나부터 베이기 십상이다. 99% 중 누군가에게 1%의 월척은 부러움의 대상이자 혐오의 대상일 수도 있다. 한번 되물어보자. 얼마나 벌어야 만족할 것인가?

송윤희는?

2001년 독립영화워크숍 34기 수료2004년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학사2008년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석사2009년 산업의학과 전문의2011년 다큐멘터리 하얀 정글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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