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관한 의학역사관에 ‘미군포로 생체시험 사건’ 자료 전시…“과거의 잘못 상징하는 부(負)의 유산 공표”

[라포르시안]  일본 규슈대 의과대학이 지난 4일 개관한 의학역사관의 전시품에 1945년 발생한 '미군포로 생체해부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는 패널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그동안 규슈대 의대가 70년 전 저질렀던 부끄러운 과오를 숨기고 이를 언급하는 것 자체를 터부시해왔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자신들의 '부(負)의 유산'을 공개함으로써 잘못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똑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해서는 안된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교토통신 보도에 따르면 지난 4일 문을 연 일본 규슈대 의학부 의학역사관에는 2차대전 막바지 무렵 이 대학 의학부가 조직적으로 관여해 발생한 미군포로 생체해부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는 패널 등 2점이 전시된다.

1945년 5월 미군 B29기가 추락하면서 12명이 포로로 잡히고 그 중 8명이 재판 없이 사형선고를 받는다. 규슈대 의학부에서는 미군 포로들을 생체해부 대상으로 요청하고 일본군은 이를 받아들인다.

이후 사형선고를 받은 8명을 대상으로 규슈대 의학부 의료진은 묽게 한 바닷물을 혈관에 주입하거나 폐를 절제하는 등의 끔찍한 생체시험을 했다, 생체시험 대상이 됐던 8명의 미군포로는 모두 사망했다.

2차대전이 끝난 후 미군포로를 대상으로 한 생체시험을 집도한 교수는 자살했고, 대학 관계자 14명은 교수형과 종신형 등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종전 후 연합군의 군사법정에서 이 사건에 규슈대가 조직적으로 관여한 혐의가 인정되지 않았고, 규슈대 역시 지금까지 이 사건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터부시 해왔다.

▲ 일본 규슈대학교의 의학역사관 개관 관련 보도자료 중에서.

교토통신에 따르면 지난 3월 규슈대 의학부 교수회의에서 "의학역사관 개관을 계기로 과거의 잘못을 상징하는 부(負)의 유산을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와 전시를 결정했고, 향후 관련 자료를 늘리는 방안도 검토키로 했다.

의학역사관 개관식에서 스미모토 히데키(住本英樹) 의학부장은 "의학의 역사에서 규슈대 의학부가 해온 역할과 공적, 반성해야 할 과거를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하는 장으로 삼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규슈대 의학부가 저지른 미군포로 생체시험 사건은 1957년 일본의 작가 엔도오 슈우사꾸(遠藤周作)에 의해 '바다와 독약'이란는 제목의 소설로 쓰였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의사인 스구로와 토다, 간호사인 우에다 등 3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그들이 어떻게 생체해부에 가담하게 되는지를 서술하면서 인간 내면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이 소설은 전쟁과 같은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의 이성이나 윤리, 합리적 사고가 얼마나 힘없이 무너질 수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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