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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소리] 역사의 퇴적층 속에 묻힌 ‘신이 살다가 버린 도시’앙코르와트 / 비토리오 로베다 지음 / 윤길순 옮김 / 문학동네 펴냄, 2006년

[라포르시안] 작년 이맘때쯤 앙코르와트 사원에서 보았던 신비한 미소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 느낌을 간단하게 정리해 두긴 했습니다만, 크메르인들이 정글 속 깊숙이 감추어 두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지 공부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침 연재하고 있는 스페인 여행기에 이어, 앙코르와트 여행기를 다시 정리해보기로 하고 자료를 찾고 있습니다. 비토리오 로베다의 <앙코르와트>를 읽다보니 앙코르와트 유적을 잘 정리하고 있어서 [북소리] 독자 여러분에게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앙코르와트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는 비토리오 로베다는 지질학과 층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90년부터 1995년까지 싱가포르에서 아시아 예술사를 가르쳤습니다. 1999년에는 런던대학 ‘동양과 아프리카’ 연구소에서 크메르 부조의 이야기 기법에 관한 논문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박사학위 하나를 받는 것도 대단한 일인데, 서로 다른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둘씩이나 받은 것을 보면 참 대단한 분입니다. 1998년에는 오늘 소개하려는 <앙코르와트> - 원제목은 ‘Khmer Mythology: Secrets Of Angkor Wat’(크메르 신화; 앙코르와트의 신비) -를 출간했고, 2007년에는 국내에 아직 소개되지 않은 ‘Sacred Angkor: The Carved Reliefs of Angkor Wat’(앙코르 성지: 앙코르와트에 새겨진 구원)를 출간하였습니다. 그리고 2009년에는  ‘Images of the Gods: Khmer Mythology in Cambodia, Laos & Thailand’(신의 이미지: 캄보디아, 라오스 그리고 타일랜드에서의 크메르 신화)를 출간한 것을 보면 크메르의 신화를 해석하는 일에 정열을 바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크메르 하면 캄보디아만 떠올리기 쉽습니다만, 앙코르 유적을 지을 무렵에 크메르제국은 지금의 태국과 라오스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씨엠립에 남아 있는 앙코르 유적만으로는 크메르 문명을 제대로 이해한다고 할 수 없는 노릇이겠습니다.

인접한 문화는 많은 영향을 서로 주고받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이웃 인도에서 들여온 힌두문화와 불교문화가 크메르 문명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그래서 로베다는 크메르 문명을 이해하기 위하여 힌두교와 불교의 신화와 전설에도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고 합니다. <신의 이미지>에는 2,400개가 넘는 천연색 사진들을 인용하고 있어 읽는 즐거움에 보는 즐거움을 더하고 있다고 하니 우리나라에도 번역 소개가 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흔히 앙코르와트 유적이 남아 있는 앙코르(Angkor)는 옛 크메르 제국의 수도로, 지금은 캄보디아의 북서부, 똔레삽 호수 북쪽지역에 해당됩니다. 크메르 제국의 앙코르시대는 크메르의 힌두교도 황제 자야바르만 2세가 스스로를 “만국의 군주”라고 선언한 802년부터, 지금의 타일랜드 지역을 다스리던 시암왕국의 침입으로 수도 앙코르를 비우고 프놈펜의 남쪽으로 이주를 한 1431년 까지를 말합니다.

630여 년 동안 앙코르왕조는 28명의 왕이 이어서 통치를 했는데, 1150년 수르야바르만의 죽음으로 내전 중이던 1177년, 메콩 강과 똔레삽 호수를 타고 수로로 침공한 참족(Champa)에게 정복당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야바르만 7세가 중심이 되어 이를 격퇴하였다는 것입니다. 앙코르 왕조는 힌두신앙을 배경으로 하였지만, 참족의 침략을 물리치고 왕으로 등극한 자야바르만 7세가 불교신자가 되면서 앙코르왕국의 종교가 힌두교에서 불교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흰두교 사원에 부처를 모시게 되었는데, 외적의 침입으로 왕조가 위기에 몰리게 되면 민심을 달래기 위하여 종교를 바꾸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흰두의 신이 나라를 제대로 지켜주지 않아 환란이 생긴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부처에게 의지해야 한다고 내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야바르만 7세가 죽은 다음에 힌두교가 다시 부활하게 되면서 불상을 훼손하는 반달리즘이 횡행했다고 합니다.

크메르 제국이 오늘날에도 신비에 싸여 있는 이유는 왕국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서입니다. 오직 사원 벽에 산스크리트 어로 새겨져 남은 적은 기록만으로 미루어 짐작하고 있을 뿐입니다. 다만 1296년 중국 원나라의 사신으로 앙코르를 방문한 주달관(周達觀)(1266년-1346년)이 남긴 진랍풍토기(眞臘風土記)가 유일한 기록물이라고 합니다. 주달관은 1년 정도 머물면서 앙코르의 종교나, 법제도, 왕위, 농경, 노예제도, 새, 식물, 목욕, 의식주, 도구, 동물, 상거래 등을 관찰하고 40장 분량의 기록을 남겼는데, 개인기록인 탓에 주관적인 점을 걸러내고 본다면 당시 앙코르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기억에 묻혀 있던 앙코르와트 유적은 19세기 들어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는데, 1860년대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던 프랑스의 탐험가 앙리 무오가 앙코르유적지를 발견하고, 여행기에 앙코르유적의 신비한 모습을 담았던 것이 유럽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면서라고 합니다. 하지만 캄보디아 사람들 사이에는 앙코르 유적의 존재가 구전되어 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캄보디아 사람들이 앙코르 유적의 존재를 공론화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외세의 침략에 시달린 앙코르의 지배자들은 앙코르지역은 더 이상 신의 가호를 받을 수 없는 저주의 땅이 되었다고 선언하고 이곳에 살던 사람들을 모두 소개(疏槪)하는 전략을 구사했다는 것입니다. 저주받은 땅을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불행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크메르인들의 뇌리에 각인되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떠난 자리는 금방 자연이 돌아와 사람의 흔적을 지우기 마련입니다. 게다가 앙코르 유적은 만물이 왕성한 열대몬순지역에 속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떠난 뒤에 금방 밀림으로 뒤덮였을 것입니다. 목재 건축물들이었다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을 터이나 돌로 만든 앙코르유적은 역설적으로 자연의 힘으로 천년이 넘게 보존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건축물 위에 떨어진 나무열매가 싹을 틔워 내린 뿌리가 사람들이 쌓은 돌더미를 움켜쥐는 효과를 나타냈기 때문에 붕괴를 막는 역설적인 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한계가 있어서 최근에는 거대하게 자란 나무들의 힘으로 건축물의 균형이 깨어지고 있어 보존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한계상황이 되었다고 합니다.

앙코르 유적은 이 지역을 식민통치하게 된 프랑스정부가 발굴에 관심을 보일 때까지도 밀림에 묻혀 있다가 프랑스 극동학원이 탐사와 발굴하는 작업을 주도하여 숲을 제거하고, 제단을 수리하고, 배수로를 설치하여 붕괴를 막았습니다. 하지만 폴포트가 주도한 캄보디아 내전으로 중단되었다가 1993년 이후에 재개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제는 유네스코를 중심으로 프랑스와 일본이 합작한 국제위원회를 만들어 보존에 힘쓰고 있습니다. 제가 앙코르와트를 방문했을 때도 일본 동경대학팀이 실측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비토리오 로베다는 <앙코르와트> 서문에서 “8세기부터 13세기까지 이름 모를 예술가들이 조각한 크메르 부조를 처음 본 순간부터 나는 그 복잡함이 빚어내는 예술성에 압도되어 그것을 더 연구해보기로 했다. 이 책은 그러한 부조들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밝히려는 시도이며, 크메르 부조로 되살아난 신화와 전설을 개괄하고 있는 첫 책이기도 하다.(5쪽)”라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특히 인도 문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크메르적 독창성’, 즉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 언어를 창조해냈음에 주목하였습니다. 바푸온 사원의 이야기 부조가 보여주는 익살과 해학, 앙코르와트의 ‘우유바다 휘젓기’와 ‘역사 속 행렬’의 추상적 명징성, 랑카 전투의 화려한 역동성을 따라올 만한 부조는 같은 시대의 인도나 중동, 유럽의 부조가 따라올 수 없는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공식기록으로 남아 있는 크메르 제국의 역사가 희소하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크메르 제국의 정체를 어떻게 그려낸 것인가를 설명하는데 40여 쪽에 가까운 분량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유적에 남겨진 부조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크메르의 신화와 전설을 소개합니다. 크메르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 신화와 전설로는 라마의 전설, 크리슈나 신화, 시바 신화, 인드라 신화를 비롯한 흰두 신화들이 있고, 여기에 불교 신화가 더해져야 합니다. 이어서 저자가 주목하고 있는 부조들에 담긴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앙코르와트를 포함하여 모두 열여덟 곳의 유적에 남아 있는 부조들을 설명합니다. 대표적인 유적들은 발굴이 완료되어 관광객들에게 공개되고 있지만, 여행일정 때문에 돌아볼 수 없는 곳도 많아서 타 프롬, 바욘, 코끼리 테라스와 문둥이왕 테라스, 바푸온, 그리고 앙코르와트 등 다섯 곳의 부조만을 볼 수 있었을 따름입니다.

크메르의 부조가 가지는 의미는 ‘건축의 미학적 가치를 높여주는 장식적 요소’에 더하여, ‘앙코르의 종교와 신화, 역사, 윤리, 도덕에 관한 중요한 개념들이 들어 있는 일종의 암호문’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따라서 부조는 오늘날처럼 사원을 찾는 방문객을 교육하고 계몽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왕실 구성원과 종교의 권력자들을 위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일종의 의식절차를 기록해두기 위한 목적이었다면 세부사항까지도 정확하고 분명해야 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문화유산 가운데 의식절차를 기록한 의궤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크메르의 부조에 담긴 이야기들은 대개는 인도신화나 불교설화에서 뽑은 사건이나 크메르의 역사에 있었던 사실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앙코르와트에서는 ‘우유의 바다 휘젓기’라는 흰두 신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됩니다. 저자가 정리한 신화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이 전설은 세계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데바와 아수라가 불로장생의 영약 암리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천 년 동안 치열하게 싸우면서 시작된다. 얼마 후 지친데다 목표를 달성할 수 없었던 그들이 비슈누에게 도움을 청하자, 비슈누가 나타나 서로 싸우지 말고 협력하라고 한다. (…) 그들은 만다라 산을 축으로 삼아 우유의 바다를 휘젓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만다라 산이 가라앉기 시작하자 비슈누가 자라 쿠르마로 변해 자신의 딱딱한 등딱지로 산을 떠받친다. (…) 그들이 그렇게 고대하던 영약은 우유의 바다를 천 년이나 휘저은 다음에야 얻을 수 있었는데, 이때 이와 더불어 여신 락슈미(스리 데비)와 코끼리 아이라바타, 말 우차이슈라바,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 압사라들이 나왔다.(88쪽)” ‘우유의 바다 휘젓기’ 이야기는 앙코르와트 동쪽 회랑의 남쪽 날개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비토리오 로베다의 <앙코르와트>는 부조의 해석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부조가 많은 곳, 예를 들면 반티아이 스레이, 바푸온, 앙코르와트, 반티아이 삼레, 바욘 등 부조가 많은 유적에서 특히 부조의 내용에 대한 설명이 길게 이어지고 있지만, 부조 이외의 것들은 간략한 설명으로 지나가고 있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앙코르와트를 예로 들면, 사방의 회랑벽을 장식하고 있는 부조는 물론 각각의 문 위나 모퉁이에 있는 작은 방의 부조까지도 설명을 하면서도 65m에 이르는 중앙탑이 흰두교에서 말하는 우주의 중심축인 ‘메루산’이라고도 부르고, 중앙탑을 중심으로 하여 네 귀퉁이에 있는 10m 정도 낮은 탑들은 메루산 주변의 봉우리를 의미한다거나, 중앙사당에는 수르야바르만2세의 유골이 안치되었다는 등의 설명은 빠져 있기도 합니다.

또한 앙코르와트의 2층에 안치된 불상에 관해서도 따로 설명이 없습니다. 20세기 초에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금강산에 있는 절을 찾았던 장 드 팡주가 “이내 독송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상하게도 그 소리를 들으면 달빛 가득한 앙코르 사원의 거대한 층계 꼭대기에 웅크린 승려들의 독경 소리가 떠오른다.(장 드 팡주와 콘스탄스 테일러 지음, 프랑스 역사학자와 스코틀랜드 여성 화가가 본 20세기 초 한국, 52쪽, 살림출판사 펴냄)”라고 소략하지만 강렬한 느낌을 남긴 것과 비교하면 아주 건조하다는 생각이 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앙코르유적에서 만나는 수많은 부조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조만간 앙코르와트 여행기에서 자세하게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라포르시안  webmaster@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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