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상당히 즐겨보는 편이다. 스토리가 정교하고 캐릭터가 살아있는 드라마는 시계추처럼 반복적인 일상에 활력소가 되곤 한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면서 가끔 짜증날 때가 있다. 진부한 스토리에 뻔한 반전이 예상되는 드라마를 보면 그렇다. 특히 ‘불치병에 걸린 주인공’이 등장하는 드라마는 가급적 피하고 싶다.

‘대체 드라마 작가들은 불치병이 없었으면 어떻게 먹고 살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나마 다행인건 불치병의 종류가 조금씩 변화한다(?)는 것이다. 예전엔 십중팔구 백혈병이나 뇌종양이 단골소재로 쓰였지만 90년 대 이후부터 불치병의 양상이 다양해지더니 요즘은 주로 악성종양(암)이 가장 많이 등장한다.

어느 날 갑자기 몸에 이상증세를 느끼는 주인공. 곧이어 장면이 전환돼 진료실에서 의사가 MRI, 혹은 CT 영상을 들여다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질책하듯 말한다. “이렇게 될 때까지 대체 뭐하셨나요?”하고.

주인공은 대부분은 암 말기다. 왜? 죽어야 하니까. 주인공이 죽어야 드라마가 끝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악성종양 클리셰’(cliche, 진부한 문구나 생각, 표현)가 참 못마땅하다.

이야기를 조금 돌려보자. 작년에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08년 국가암등록통계'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이 80세까지 산다고 가정할 때 암에 걸릴 확률은 무려 34%에 달한다고 한다.

주위를 둘러봐도 가족이나 친지 가운데 암 진단을 받은 이들이 한 두 명은 꼭 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질병을 발견해 내는 진단기술과 치료법의 발전 때문이 아닐까 싶다.

조기에 발견하면 5년 생존률이 90%가 넘는 암도 많고, 최근에는 말기라도 생존율이 꽤 높다고 한다. 물론 암은 한 번 발생하면 재발할 위험성이 높고, 완치가 힘들다는 점에서 여전히 무서운 질병임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요즘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암에 걸렸다고 불치병 운운하며 삶을 정리해야 할 만큼 그렇게 절망적이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속 불치병 설정은 여전히 진부하다. 암 진단을 받은 주인공이 삶을 포기하고, 극도의 절망에 빠지는 설정엔 큰 변화가 없다. 의료계에선 요즘 암을 ‘만성질환’으로 표현한다. 그만큼 진단기술과 치료법의 발달로 잘만 관리하면 평균수명을 누리는 데 크게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부탁하건데 제발 드라마에서 극적인 전환, 혹은 반전을 위해 ‘암 = 불치병’이란 식으로 표현하는 것을 자제해줬으면 좋겠다. 해마다 10만 명 이상의 신규 암환자가 발생하고 있고, 연간 50~60만 명이 병원을 찾아 암 치료를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드라마를 통해 암 진단을 받고 절망하는 주인공을 보는 암환자나 그 가족들의 심정을 어떨까 한번쯤 헤아렸으면 한다.

부디 진부한 ‘불치병 클리셰’는 이제 그만. 암을 진단받아도 삶은 계속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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