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의료정책연구소 수련환경 실태조사…자살충동 경험률 20%·우울증 경험 30~40% 달해

[라포르시안] 수련병원에서 근무하는 전공의 중 약 20%가 자살충동을 경험했다는 충격적인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또한 전공의 10명 중 3명은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슬프거나 절망감 등을 느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사실은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최근 펴낸 '2014년 전공의 수련 및 근로환경 실태조사'를 통해 확인됐다.

의료정책연구소는 지난해 대한전공의협의회에 등록된 회원 9,000여 명을 대상으로 전자메일을 통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조사에 응답한 전공의는 1,700명이었다. 

설문조사 결과, 자살충동 경험자는 남자 전공의(17.4%)보다 여자 전공의(26.9%)가 더 높았다.

수련과정 중 임신과 출산 등으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가 자살 충동을 느끼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수련 연차별로 자살충동 경험율은 레지던트 2년차가 28.4%로 가장 높았고, 4년차가 16.7%로 가장 낮았다.

수련병원 유형별로는 민간설립병원이 21.1%로 높았고 대학병원 외 국공립병원이 18.2%로 낮았다. 규모별로는 단과전문병원(25%)이 가장 높았다.

수련과목별로는 마취통증의학과와 방사선종양학과 등의 지원계열이 23.3%로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 내과계열(21.2%), 외과계열(20.5%) 등의 순이었다. 

의료정책연구소의 이같은 조사 결과는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보건정책관리학부 김승섭 교수팀이 진행하고 있는 '전공의 건강상태와 환자 안전의 상관관계' 연구 결과보다 더 심각한 결과이다.

최근 국회에서 열린 '전공의 특별법' 입법 공청회에서 대전협 송명제 회장이 공개한 일부 내용을 보면, 남자 전공의 34.2%(1160명 중 397명)가 최근 일주일간 우울증상을 겪었고, 8.8%(1192명 중 105명)는 지난 1년 간 자살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여자 전공의는 더 심각했다.

응답자 가운데 41.4%(500명 중 207명)가 우울증상을 겪었고, 13.7%(525명 중 72명)가 자살을 생각해 봤다고 응답했다.

두 개의 조사 결과는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우리나라 국민의 자살충동 경험률보다 훨씬 높은 것이다.

통계청의 '2014 사회조사'에 따르면 국민 중 6.8%가 자살충동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전공의들의 자살충동 경험이 높은 것은 과도한 업무와 그에 따른 스트레스가 원인으로 추정된다.

의료정책연구소의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정부와 의료계의 수련환경 개선 노력에도 전공의들의 근무환경은 2013년에 비해 달라진 것이 없거나 오히려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주당 100시간 이상 근무한다는 전공의가 30.8%로 1년 전과 비교해 오히려 2.8%p 증가했다. 

하루평균 수면 시간은 5.7시간으로 조사됐는데, 2시간도 안되는 극도의 저수면 상태에 처해있는 전공의도 14.5%에 달했다. 

의료정책연구소는 "이번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근무 및 수련환경평가의 독립화와 근로강도 개선을 위한 의사인력 충원 및 정부재정 지원, 수련 중 폭언·폭행 예방 및 금지방안 등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2013년에 한해에만 2건의 전공의 자살 사건이 언론을 통해 기사화 된 바 있다. 

서울과 대전에서 각각 내과, 이비인후과 수련을 받던 전공의들이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주120시간 업무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그러나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사례까지 감안하면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전협 송명제 회장은 지난 18일 '환자 안전을 위한 전공의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지금까지 많은 전공의들이 자살과 과로사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저의 동료 전공의들은 심지어 유서도 남기지 않고 건물에서 뛰어내리곤 했다"면서 "누군가의 일방적 희생으로 지탱되는 사회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말하며 수련환경 개선을 위한 관련법 제정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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