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환자 발생하면 원격의료는 무용지물…응급환자 이송체계 더 절실”

[라포르시안] 지난 13일 저녁 전남 신안 가거도 인근 해상에서 해양경비안전본부(해경) 헬기가 조종사 등 4명을 태운 채 바다로 추락했다.

당시 해경헬기는 급성 충수염(맹장염)으로 긴급 이송이 필요한 소아 환자가 발생했다는 가거도 보건지소의 요청을 받고 출동했다가 짙은 해무 등 악천후로 인해 사고를 당했다.

국토 최서남단에 위치한 흑산면 가거도는 목포에서 해상 220km 거리로, 배로 4시간 30분 거리에 위치한다.

현재 가거도에는 보건지소가 설치돼 있으며, 공중보건의사가 상주하며 근무한다.

2012년 이전까지는 보건진료소만 있었지만 이곳에 관광객이 늘면서 공보의를 배치하고 보건지소를 설치했다. 

그러나 이번 사고로도 알 수 있듯이 응급수술을 필요로 하는 환자가 발생할 경우 검사장비와 수술인력을 갖추지 못한 보건지소 입장에서는 육지의 큰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할 수밖에 없다.

가거도 보건지소에서 해경헬기 출동을 요청한 것은 급성 충수염 증상을 보이는 7세 소아환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소아의 급성충수염은 외과적 수술 치료를 필요로 하는 가장 흔한 복부 질환으로, 제때 수술을 받지 못할 경우 곪은 충수관이 터지고 복막염, 복강 내 농양 등의 여러 가지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도 있기 때문에 시급을 요하는 상황이었다.

가거도 보건지소 측은 최대한 빠른 시간에 환자를 이송해 검사를 한 후 필요한 치료를 받게끔 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고,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는 해경은 악화된 기상 여건에도 불구하고 헬기 출동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만일 가거도에 의사-환자간 원격의료가 도입됐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원격의료를 이용했더라면 이번과 같은 안타까운 사고가 생기지 않았을까.

의사-환자간 원격의료가 도입됐더라도 상황은 그대로였을 것 같다.

정부는 지난해 10월부터 농어촌과 섬지역 등 의료취약지 주민들의 의료접근성 향상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의사-환자간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실시하고 있는 원격의료 시범사업은 고혈압·당뇨 등의 만성질환을 앓는 환자 중 재진환자를 대상으로 혈압과 혈당 등을 자가 측정해 주기적으로 의료기관에 전송하고, 의사가 이를 원격으로 모니터링하면서 PC나 스마트폰을 통해 원격 상담을 하는 방식이다.

의사-환자간 원격의료 서비스의 대상자를 재진환자로 제한하는 이유는 안전성과 유효성이 명확하게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경우 의사-환자간 원격의료는 사실상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다.

이번처럼 급성충수염이 의심되는 환자가 발생했을 때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섬 지역에서 공보의로 근무했던 한 의사는 "섬지역 보건소나 보건지소에 공보의가 근무하고 있지만 수술이 필요한 위급한 환자가 생겼을 때 육지의 큰 병원으로 신속하게 옮길 수 있는 환자이송 체계가 정말로 중요하다"며 "성인은 물론 영유아 응급환자 발생시 해경의 협조도 구하고 응급헬기가 뜨기는 하지만 배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헬기는 기상 조건에 따라 출동에 많은 제한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도서지역에 정말로 필요한 건 원격의료 시스템이 아니라 응급환자 이송체계를 갖추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섬 지역 주민 중 만성질환자의 건강관리를 위해서라면 굳이 원격의료가 아니라 전화상담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지적도 있다.

원격화상진료시스템을 운영하고 경남 통영의 한 섬에서 근무하고 있는 의사는 "원격의료를 이용하는 주민들은 대부분 만성질환자로 의사가 원격화상진료 후 처방하는 의약품은 늘 비슷하고 제한적"이라며 "문제는 환자의 증상이 조금만 다르거나 하면 결국 육지의 병원으로 나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어차피 대면진료를 하고 검사를 해야 정확한 환자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며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원격의료를 통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응급환자에 대한 원격의료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4월부터 취약지 병원 응급실과 대도시 거점병원 응급실간 원격협진 네트워크 사업을 실시할 예정이다.

군장병과 원양선박 선원을 위한 원격의료 서비스를 확대 실시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그러나 이런 원격의료 서비스 모델보다는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곧바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응급의료 시설과 인력 확충이 더 절실하다는 지적이 높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정부는 의료취약지에 ‘응급실 원격협진’을 실시하고 도서벽지, 군부대에 시범사업을 확대·적용하겠다고 하지만 의료취약지와 도서벽지에 필요한 것은 응급 상황을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응급의료 시설과 인력"이라며 "정부는 원격의료를 통해 기업에 퍼 줄 돈으로 군부대와 의료취약지에 공공의료를 확충해 국민들을 보호하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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