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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소리] 유럽의 그리스도교 미술사유럽의 그리스도교 미술사 / 김재원, 김정락, 윤인복 지음 / 한국학술정보 펴냄, 2014년

[라포르시안]  바르셀로나에서 시작한 스페인여행의 초반이 그라나다와 코르도바를 거쳐 모로코까지 이베리아반도를 오랫동안 지배한 이슬람문화의 흔적을 따라가는 길이었다면, 모로코에서 돌아와 세비야, 톨레도 그리고 마드리드에 이르기는 여행 후반은 주로 가톨릭문화의 영향을 살펴보는 길이었던 것 같습니다. 성당을 중심으로 한 건축과 그 성당이 소장하고 있는 엄청난 규모의 회화와 조각 작품들을 그저 주마간산(走馬看山)식으로 훑어볼 수밖에 없는 일정과 안목이 아쉬웠습니다. 특히 그저 두어 시간 머물렀던 마드리드의 프라도미술관이 가장 아쉬웠던 곳입니다. 심리학자 폴 퀸네트는 “우리는 자식들에게 속독(速讀)을 가르친다. 아이들이 셰익스피어 작품을 한나절에 다 읽기를 바란다. 대문호의 작품을 그렇게 읽는 것은 스미소니언박물관에서 조깅하는 것이나 루브르 박물관 안을 롤러브레이드를 타고 달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폴 퀸네트 지음,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낚시를 해야 할 때가 온다. 320쪽, 바다출판사, 2014년)”라면서 속독법의 문제를 지적하였지만, 오히려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을 보는 우리의 태도를 나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기회 있을 때마다 미술에 관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만난 수많은 교회들에서 스치듯 만난 작품들을 다시 새겨볼 수 있을까 싶어 고른 책이 <유럽의 그리스도교 미술사>입니다. 인천 가톨릭대학교 조형예술대학 부설 그리스도미술연구소가 기획한 ‘초기 그리스도교 시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그리스도교 미술사를 관통하여 조망할 수 있도록 만든’ 책입니다. 유럽의 문화가 그리스-로마로 이어지는 헬레니즘문명과 이어진 그리스도교문명을 따라 형성되어 왔기 때문에 유럽의 미술사를 이해하는데 있어 그리스도교 미술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배경에 깔려 있습니다.

김재원, 윤인복 교수(전, 현 연구소장)와 김정락 교수가 필진으로 참여한 <유럽의 그리스도교 미술사>는 초기-로마제국-비잔틴-중세-로마네스크-고딕-초기 르네상스-전성기 르네상스(-북유럽 르네상스)-매너리즘-바로크-19세기 전반-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으로 이어지는 연대기적(年代記的) 구조를 기본 뼈대로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두 번째 특징은 그저 그리스도교 미술의 흐름만을 뒤쫓은 것이 아니라 미술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두루 살피고 있다는 점입니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 교회사적 배경, 철학적 배경 그리고 미술사적 현상을 기본으로 하여 그리스도교미술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의 유일신을 신봉하고 그의 외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Messiah)로 믿는 종교입니다. 유대인 사회에서는 구약을 통하여 구세주의 재림이 예고되어왔는데, 그리스도교는 신약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그 예언을 이룬 존재라고 믿게 된 것이다. 하지만 유대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역시 세레자 요한 등과 같이 여전히 예언자의 하나이며 구세주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고 믿는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기원 원년에 당시 로마제국의 총독령이었던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습니다.(하지만 역사적 연구에서는 기원전 3년경으로 보고 있다고 합니다) 30세가 되던 해에 요단강에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대중 설교를 시작하였고, 33세가 되던 해에 유대교의 제사장들로부터 고발을 당하여 십자가형에 처해졌습니다. 하지만 3일 만에 부활하여 제자들에게 현현했다고 하며, 선교의 의무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후 그의 제자 12명과 예수 사후에 그리스도교의 포교에 참여한 바오로는 로마제국와 그 변방에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하면서 신앙공동체를 형성해나갔습니다. 특히 베드로와 바오로는 로마제국의 수도를 선교의 핵심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그리스도교는 제국의 중심으로부터 확산되었습니다. 로마제국은 흡수한 다양한 민족들을 포용하기 위하여 그들의 종교를 관용하는 입장을 견지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역시 선교초기에는 자유롭게 세력을 확산시킬 수 있었지만, 로마제국이 혼란기에 들어서면서 정치적 탄압을 받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리스도교는 로마 당국의 엄중한 감시 속에서 비밀결사조직처럼 종교활동을 유지하고 선교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초기 선교활동은 신분이 낮은 계층을 중심으로 하다가 점차 상류층으로 확산되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황제(재위 284~308년)가 재위하던 시절 그리스도교의 탄압이 절정에 달했지만, 이어진 콘스탄티누스황제(재위 306~3376년) 시절에는 이미 제국이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신자가 많아졌습니다. 제국의 안에서 여러 세력들과 권력을 나누어 야 했던 콘스탄티누스황제는 그리스도교 세력을 끌어들일 필요가 생겼고, 결국은 밀라노칙령(313년)을 선포하게 됩니다. 이후 그리스도교는 국가에서 장려하는 종교가 되었고, 황제가 임명하는 주교가 관할하는 교회를 중심으로 종교활동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교 미술은 2세기에 들어 등장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유대교의 성상금지의 영향을 받았고,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공식적인 승인을 받지 못하고 밀교(密敎)의 형태를 유지했으며, 무엇보다도 미술을 실천할 경제적인 근거가 그다지 마련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16쪽)”이라고 저자들은 설명합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미술은 당시 공존했던 고대 종교들이 사실적 혹은 자연주의적 표현에 주력하던 것에 반하여 보다 상징적으로 표현적인 조형성을 선호하고, 장식적 요소가 부각된 형상을 보였다고 합니다. 건축은 가정교회와 카타콤의 형태로 남아있고, 초기 카타콤에는 단순한 형태의 포도나무나 올리브나무 혹은 비둘기나 물고기와 같은 상징물을 그려 넣었다가 점차 프레스코형식의 벽화를 남겼습니다. 양팔을 벌려 기도하는 사람들이나 선한 목자와 같은 인간형상을 재현하다가 3세기 말경에는 최후의 만찬이나 제자들 앞에서 설교하는 예수와 같은 역사적 소재를 그렸다고 합니다.

로마제국의 공인을 받은 뒤에는 교회를 중심으로 그리스도교의 활동이 이루어졌는데, 2세기경에 등장한 교부-사도들에 이은 교회의 지도자-들은 8세기 무렵까지 그리스도교의 이론을 세우고 이단과의 논쟁을 통하여 교회를 수호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공인된 그리스도교는 긴 신랑을 가진 장방형의 평면구조를 가진 바실리카형식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교회는 ‘노아의 방주에서 유래된 배’라는 개념으로, 신국 혹은 하늘의 예루살렘을 보여주는 대리적 장소이자 전시장이며, 신앙의 능력이 발생하는 장소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초기 교회에는 회화보다는 벽이나 바닥을 장식하는 모자이크가 주류를 이루었는데, 그리스도의 현현과 사도파견과 같은 주제들을 황제의 의전적인 모습으로 나타냈고, 사도나 성인들은 로마의 원로원 복장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기원 400년경 콘스탄티누스황제가 수도를 로마에서 비잔티움으로 천도함에 따라 로마제국은 동서로 나뉘었습니다. 476년 서로마제국이 이방민족의 침입과 내부의 정치적 갈등으로 소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동로마제국은 그리스의 고전주의와 인본주의 문화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그리스도교 문화를 접목하여 발전시켰고, 1453년 오스만투르크에 의하여 멸망할 때까지 천년이 넘도록 이어졌습니다. 헬레니즘 미술을 계승한 비잔틴미술은 동방적 요소인 소아시아와 페르시아 그리고 북아프리카의 미술전통이 융합되어 만들어졌습니다. 이스탄불의 하기아 소피아 성당으로 대표되는 비잔틴건축은 로마교회의 장방형의 내부와 중앙집중형 건축의 특성을 결합하고, 중앙에 거대한 돔을 얹었습니다. 돔의 아래로는 40여개의 창문을 띠처럼 둘러서 빛의 고리를 만들었고, 둥근 원반으로 보이는 돔의 내부천장이 ‘하늘에서 내려온 황금의 띠에 의해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이는 효과’를 나타냈다고 합니다. 수평적 위계를 드러낸 바실리카교회와는 달리 수직적 위계를 강조한 것이며, 그리스도교 건축이 추구한 상징적이며 초월적 분위기를 드러내려한 것이라고 합니다.

동로마제국이 비잔틴미술을 발전시킨 것과는 대조적으로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의 유럽은 크고 작은 국가들이 난립하느라 문명이 쇠퇴하는 시기였습니다. 그리하여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를 중세 암흑기라고 합니다. 로마제국의 국교였던 그리스도교는 유럽으로 이주해온 이방 민족에게도 전파되었기 때문에 세속의 권력이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동안에도 교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6세기경부터 세속과 분리되어 영성을 쌓는 장소로 세워지기 시작한 수도원은 중세문화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8세기 경 메로빙거왕조를 폐한 카롤링거왕조의 카를대제에 이르러 유럽이 다시 통합되었고, 800년에는 교황에 의하여 카를대제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봉해졌습니다. 카를대제는 혼란기를 거치는 동안 피폐해진 유럽의 문화를 재건하였습니다. 전통적인 문화를 계승하기보다는 민속적이며 사실성과 묘사력이 결여된 당시의 민속미술행태를 지양하고, 고대 미술과의 접목을 시도하였기 때문에 ‘카를 대제의 르네상스’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고대 예술품을 모사하던 수준을 넘어 본격적인 미술사조라고 할 로마네스크양식이 등장한 것은 936년 오토왕조가 성립되면서입니다. 무거운 반원통형의 아치와 표현주의적이며 고졸한 형태의 조각 그리고 비잔틴 미술의 영향을 받은 회화와 스테인드글라스 혹은 필사본 삽화를 로마네스크 미술의 특징으로 요약된다고 합니다.

스페인의 교육도시 살라망카에서 만난 성당은 고딕양식의 신성당과 로마네스크양식의 구성당이 같이 있어, 한 장소에서 고딕양식과 로마네스크양식을 비교해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건물을 높이 쌓기 위하여 창문이 아주 적고 벽이 두꺼운 것이 로마네스크양식의 특징이라면, 건축술의 발달로 벽이 얇아지고 창문이 많아지며 창문에 스테인드글라스장식이 들어가 있으면 고딕양식이라고 보면 된다는 것이 가이드의 설명이었습니다. 16세기 조르조 바사리가 쓴 <예술가 열전>에서 중세를 비하하는 의미를 담은 용어로 사용한 것으로 시작된 고딕, 즉 고트족의 미술과 문화는 야만적이고, 무지하고, 고전적인 미감이 결여된 낙후된 미술로 자리매김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풍을 따르려 했던 로마네스크와는 달리 고딕예술은 독창적으로 창조된 자생적 예술이라는데 의의가 있다고 합니다. 고딕예술은 물질을 통해 신의 섭리와 원리를 체감하고 신의 존재를 실감하려 했는데, 특히 빛을 통해 신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발전된 건축기술은 닫혀있던 벽을 열어 더 많은 자연광을 건물 내부로 끌어들일 수 있게 되었고, 벽이 있던 공간을 채운 스테인드글라스는 신비함을 더하여 전성기의 비잔틴 회화에 버금가는 다채로운 색감을 되찾아내었던 것입니다.

오랜 기간 유럽사회의 근간이 되었던 봉건제도는 상공업과 무역이 발달함에 따라 도시국가들이 등장하면서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중앙으로 집중되었던 권력이 지방으로 흩어지면서 교회 역시 쇠퇴의 기미를 보였는데, 14세기 전반에 걸쳐 로마에 있던 교황청이 프랑스의 아비뇽으로 옮겨가면서 교황이 프랑스 국왕의 통제를 받는 상황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한편 철학적으로도  고대 그리스시대와는 달리 인간과 자연을 부정하며 신을 중심으로 한 철학이 주류를 이루던 중세사회에서 인간 중심의 철학이 태동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의 미술은 자연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인체와 생태에 대한 이성적이고 과학적 탐구를 바탕으로 회화, 건축, 조각 분야에서 새로운 변화가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미술에는 원근법이 등장하게 되었고, 중세미술의 주류를 이루던 종교미술 외에도 고대 신화와 역사를 신플라톤적 관점으로 해석하는 사조가 등장했다고 합니다. 저자들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예로 들었습니다. “미의 여신 비너스는 신 플라톤적 관점에 따라 세속적인 것을 탈피하고, <천상의 비너스>로서 이 세상에 오기 전 인간의 영혼과 육신이 얼마나 아름다웠는가를 보여주는 존재가 된다.(155쪽)”

르네상스시기에 인본주의적 해석으로 절정을 이룬 그리스도교 미술은 이후 쇠퇴하기 시작하여 근대에 이르러 등장하는 새로운 예술사조에서는 중심에서 점차 밀려나는 경향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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