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안 브리핑]

[라포르시안]  8만 명의 어린이들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추적하며 연구하는 야심 찬 프로젝트가 영국에서 막을 올렸다. 미국에서 추진되던 비슷한 연구가 큰 돈을 들이고 실패로 돌아간 지 두 달 만의 일이다. 이번 프로젝트의 목적은 '21세기에 태어난 신세대 아기들을 추적해 인생 초기의 다양한 요인들 중 성인기의 건강과 복지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밝혀내는 것이다. 이번에 출범하는 '평생 코호트 연구'(the Life Study)가 미국의 전국 어린이연구(NCS, the National Children’s Study)와 달리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기를 기대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출생코호트 연구(birth-cohort studies)는 매우 중요하다. 과학자들은 이 연구결과를 이용해 임신 중의 흡연이 어린이의 발육에 미치는 영향,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어린이가 학교생활에서 겪는 어려움 등 일련의 연관성을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들어 과학자들이 새로운 출생코호트 연구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데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오늘날 (최소한 서구사회에서)태어난 어린이들은 과거에 비해 온난화되고 디지털화되고 인종적으로 다양하고 소득불평등이 심화된 세계에서 생활하게 된다. 둘째,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새로운 이슈가 제기되고 정교한 유전자분석 기법 같은 새로운 기술이 탄생하므로 상이한 정보를 수집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미국에서 추진한 NCS는 10만 명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출생 직후부터 21세까지 연구하려 했으나, 2014년 12월 정식 출범 직전에 취소되면서 지난 15년간 들인 12억 달러의 돈을 허공에 날려버리고 말았다. 이 연구에 참여할 부모와 자녀들을 모집하기 시작했지만, 명확한 과학적 방향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느라 참가자들을 등록시키지 못하고 쓸데없는 비용만 눈덩이처럼 불어났다고 한다.

그러는 가운데 대서양 건너 영국의 과학자들은 자체적인 출생코호트 연구를 준비해 왔으며, 마침내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niversity College London) 산하 어린이건강연구소의 Carol Dezateux 박사(소아역학)가 이끄는 연구진이 이번 주 영국 상원에서 수많은 정치인들과 의원들이 모인 가운데 평생연구(the Life Study)를 시작한다고 공식적으로 선포하며 프로젝트의 청사진을 전격 공개했다.

현재 노르웨이와 덴마크는 각각 10만여 명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영국에서도 이미 일련의 출생코호트 연구를 실시한 바 있는데, 최초의 출생코호트 연구는 1946년에 시작됐다. 그러나 평생연구는 특히 인생의 첫단추를 끼우는 시기인 `임신 및 출생 첫해`에 관한 정보를 상세히 수집한다는 점에서 단연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연구진은 다양한 조직샘플(소변, 혈액, 대변, 태반 조각 등)은 물론, 부모의 소득에서부터 휴대폰 사용 등에 관한 정보가 담긴 방대한 데이터, 심지어 부모와 아기가 상호작용하는 장면이 담긴 비디오 자료까지 확보할 예정이다.

영국에서 새로운 출생코호트 연구의 기운이 싹튼 것은 2000년대 중반이지만, 그것이 조직화된 움직임으로 나타나기까지 몇 년의 세월이 흘렀다. 2011년 영국 정부는 2019년까지 3,840만 파운드(미화 6,000만 달러)의 예산을 배정하기로 합의했다. 그 후 연구진은 예비연구를 벌여 오다 지난해 가을부터 연구에 참가할 부모들을 모집하기 시작했는데, 2018년까지 8만 명의 참가자를 전부 모집하는 것이 목표다.

연구진이 이번 프로젝트의 성공을 낙관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중 하나는 영국에는 국민건강서비스(NHS)라는 제도가 있어서 거의 모든 임신부와 아기들에게 혜택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연구 참가자들에 대한 집권화된 모집·추적·자료수집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반면 미국의 경우 보건의료 서비스가 몇 개의 상이한 제공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어서 `짜깁기`라는 조롱을 받을 정도다.

미국 오하이오 주 콜럼버스의 전국어린이병원의 마크 클레바노프 박사(소아역학)는 "대부분의 미국 연구자들은 미국과 유럽(영국 포함)의 차이를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수행하려면 절차가 매우 번거로울 뿐 아니라 엄청난 비용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필립 피조 박사(소아과학)는 "한때 미국의 연구자들은 임신 전의 여성들을 연구에 참여시키기 위해 가가호호 방문을 계획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을 받는 연구자가 문 앞에 나타나 `당신은 임신을 계획하고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는 것은 사회학적으로 그리 매력적인 방법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말했다.(피조 박사는 NCS가 실행 불가능하다고 결론지은 실무그룹의 위원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영국 평생연구의 연구진은 NCS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명확한 연구설계와 적절한 모집전략을 다짐하고 있으며, 국제적인 협동연구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뭐니뭐니해도 평생연구의 핵심은 부모들의 관심과 참여인데, 향후 몇 개월 내에 성패가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연구자들은 NCS의 실패를 비통해하고 있다. 컬럼비아 대학교의 에즈라 서서 교수(역학)는 "우리는 출생코호트 연구의 선봉에 서서 인생의 핵심단계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할 기회를 놓쳤다"고 말했다. 그러나 피조 박사는 "인간을 대상으로 평생 동안 연구를 수행하다 보면, 유럽이든 미국이든 지역에 상관없이 특정한 문제에 봉착하기 마련"이라며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그는 "예컨대 모든 연구에는 끝까지 책임을 지고 수행하는 연구자들이 필요하다. 그런데 평생연구에 참가하는 어린이 중 약 1/3이 100살까지 살 것으로 예상되지만, 연구를 설계한 과학자들은 그때가 되면 세상을 떠난 지 오래일 것이다. 또한 지식 및 지식의 존재형태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 지난 10년간 소셜미디어, 인터넷, 기초생물학 분야에서 일어난 혁명을 떠올려 보라. 겨우 10년이 그러할진데, 지금으로부터 100년 후 지식이 어디에 존재할 것인지는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원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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